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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삶을 말하다 [2018.10] 우아한 삶의 권리를 변론하다 - 변호사 김원영

글 유제이 사진 봉재석

 

김원영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기 좋아한다. 누가 진짜 피해자고 가짜 피해자인지, 누구의 외모가 합격이고 실격인지를 가린다. 성범죄와 미투 운동이 그렇고, 그 흔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그 기준에 의하면 예쁘지 않은 모든 여성부터 장애인,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 저학력자 모두 우리 사회에선 실격이다. 이 실격당한 사람들을 변론하고 싶은 사람, 김원영 변호사를 만났다.

 

노련한 장애인의 이야기

김원영 변호사는 자신의 장애와 질병에 노련한 사람이다. 휠체어 바퀴를 1.8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밀 수 있으며 경사로에서도 한 손에 책이나 커피를 들고서도 절묘하게 방향이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혹 움직이는 중에 요철이나 배수로에 바퀴가 걸려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도 손을 짚어 수평을 유지하며 커피도 쏟지 않고 동행인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는 사람.

“방금 각도 좋았음?”
이 표현은 그가 펴낸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첫 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변호사와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보건시설 조사관으로도 일했으며 지체장애도 있는 사람이다. 최근엔 세 번째(두 번째 책은 공저) 책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 퇴사 후 강의를 하고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좀 정제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첫 번째 책인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가 당사자의 이야기로 서사를 썼다면 이번에는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담론을 쓰고 싶었죠.”

현직 변호사인 터라 학부 전공을 잊기 쉽지만, 그는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체계적인 담론’의 강자들을 생산하는 전공이다. 그렇다고 그의 새 책이 사회학 또는 철학 이론서처럼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가 10대였던 어느 여름날,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이 계곡에 수영하러 간다고 우르르 나갔을 때 한 친구는 나가지 않았다. 혼자 남을 그를 생각해서 남은 것을 알기에 ‘나도 낮잠 자게 너도 나가’라고 했지만 친구는 얼토당토않게 ‘피부 관리해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이 상황을 예로 들어 책의 한 장인 ‘품격과 존엄의 퍼포먼스’를 끌어간다. 이런 일상의 이야기로 ‘실격당한 이들’이 겪는 일들과 사회의 제도를 쉽게 풀어간다.

 

책표지앞으로 발명해야 할 권리

김원영 씨는 골형성부전증 환자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으로 생활했다. 어릴 적엔 버스를 못 타는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했고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고 한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사망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때 시작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이전에는 ‘이동권’이라는 말이 일반인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생소한 용어였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장애인 인권이 국가나 사회가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적 선행이나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신체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에 대한 ‘방어권’의 개념이 된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이다. 권리를 발명한다는 개념, 참 매력적이다.

“앞으로는 아마 ‘돌봄을 받을 권리’가 발명되지 않을까요?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신체적인 도움은 물론 의사 결정도 지원할 수 있는 돌봄이죠. 투표장에 가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발달장애인용 텍스트처럼요.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권리가 발명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책에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대화를 말하고 있지만 중증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은 대화나 서사가 쉽지 않으니까요. 꼭 서사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도요. 앞으로 많이 논의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죠.”

 

1) 사고방식이나 견해가 종래와는 달리 크게 변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

 

김원영장애인 앵커를 만날 수 있는 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장애인으로서의 노련함, 품격과 존엄, 권리의 발명과 아름다울 기회를 이야기한 그. 장애를 사회적·미적 담론으로 풀어낸 그에게 어쩌면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장애는 무엇일까?

“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일부니까요. 예를 들면 한국인 같은 거죠.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인지와 신체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장애가 저라는 사람의 생물학적·사회학적 특성을 만들죠.”

사회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일하는 그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장애.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이동권 투쟁을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가는 시위를 한 적이 있다. 그도 그 시위에 참여했다. 앞에서 기어가는 이의 아름다운 다리 근육을 혼자 봐서 안타까웠노라 말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까?

“장애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방향이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장애인 인권운동이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 편의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장애인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일이 되었으면 해요.”

일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얼마나 된다고 저상버스로 다 바꾸냐?’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될 것 같다. 공공장소나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드라마에 장애인이 나오는 일도 거의 없지만, 나와도 그냥 휠체어에 앉아 있어요. 매우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휠체어만 탔을 뿐이죠. 심지어 장애인 방송에서도 비장애인이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만 나와요. 외국에서는 팔이 없는 사람도, 호흡기를 낀 사람도 장애인 방송을 진행해요. 미디어가 다양한 신체를 보여주는 것과 아닌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이런 미디어 전략을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구나!’ 싶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비장애인도 막상 장애인을 만나면 당황한다. 의도와 달리 상처를 주거나 무례한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도 많다.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을 화면으로 자주 마주치고 익숙해진다면 그런 당황이 조금 더 줄어들지 않을까?

짧지 않은 인터뷰가 끝나고 김원영 씨는 책과 수첩을 가방에 다시 넣고, ‘매력적’인 웃음으로 인사한 뒤 ‘우아’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의 전동 휠체어 성능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실격당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회적 가치를 떠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신을 고민하는 이는 누구나, 언제나 멋진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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