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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음 [2019.01] 유관순, 인권 자주 평화를 꿈꾸다

글 편집실 /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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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대한독립 만세,
유관순 열사(1902~1920)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뜻있는 인연은 인생 항로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주요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한 소녀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작은 물결은 독립운동이라는 커다란 파도로 번져나가 현재에 도달했다. 이로써 인간 유관순에 대한 접근은 새로운 재해석을 위한 시론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화석화·박제화된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유관순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관순과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 남동순은 말했다. “애가 성격이 강해요. 어릴 때 풀을 뜯어다 달래각시를 만들잖아요? 내가 먼저 만들면 그걸 질투를 해. 어떤 때는 내가 천천히 만들어요. 걔가 자꾸 질투를 하니까. 가갸거겨를 배울 때는 나보다 잘했어요. 어릴 때부터 여자인데도 훗날 커서 대장이 되겠다고 그랬어요.”

유관순은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진취적인 어린이였다. 대담한 기질은 도전정신을 북돋우는 에너지원이 됐고, 집안 분위기는 그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배경이었다. 지령리교회에서 접한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근대교육의 수혜로 이어졌다. 교인들의 국채보상운동 참여와 연합운동회 등을 통해 가치관이 변하고 근대교육에 대한 관심은 증대됐다. 유관순에게 사회적 공공성은 사회적 책무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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