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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3 <특집> [2019.03] 노르웨이의 혐오표현 대응 정책

글 이성택

 

2018년 12월 초 일주일 일정으로 오슬로를 방문했다. 당시 여러 정부 기관과 민간단체를 만나 노르웨이 정부의 혐오표현 반대 정책 입안 및 실행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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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혐오표현 처벌 사례

2015년 2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페이스북을 방문해 “왜 전쟁이 끝났는데 돌아가지 않고 이 나라에서 영주권을 받았느냐. 너의 뻔뻔함이 불쾌하다. 네 나라로 꺼져라. 이 망할 껌둥이야”라는 댓글을 단 혐의로 30일 구류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로 노르웨이 형법에서 혐오표현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다수(대략 10~20명 이상)의 대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해당 혐오표현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된다. 폐쇄적인 상황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들은 표현은 모욕이나 괴롭힘일 뿐 형법 185조에 의한 혐오표현 범죄가 아니다.

 

혐오표현, 수사 및 처벌 가능

2018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개최되던 12월 10일 오슬로 시청 앞, 매서운 칼바람에 맞서 동료 1명과 시위를 벌이고 있던 한 여성을 만났다. 그는 자신과 같은 콩고 출신으로 평화상 수상자인 무퀘게 박사가 수상 소감에 독재자 대통령에 대한 비난 성명을 포함해야 한다며 피케팅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흑인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표현을 직접 들은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명확히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혐오표현 피해를 직접 당한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혐오표현 피해를 받았을 때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는 말은 흥미롭다. 노르웨이 정부 공무원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은 바로 경찰에 의한 수사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갖는 경각심이 혐오표현 반대를 위한 논의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었다.

오슬로 대학교의 박노자 교수도 이번 인터뷰에서 ‘처벌 가능성’만으로도 형법 조항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처벌 수위도 기껏해야 한 달도 채 안 되는 구류가 고작이지만 혐오표현을 당했을 때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 나아가 특정 표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회적 논의는 풍부해진다”고 했다.

 

여성 혐오표현, 처벌 대상에서 배제

노르웨이 형법에서 특이한 점은 형사처분 대상이 되는 혐오의 사유가 피부색, 국적, 인종, 종교, 신념, 성적 지향 및 장애로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처벌 대상에서 배제된다. 또한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도 처벌 대상으로 포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면담을 진행한 정부 관료들과 변호사는 최소한 형벌 규정만큼은 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이 아예 처벌 대상에서조차 배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 다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으로 소수자가 처벌된 적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 주제는 최근 여성을 포함해 성별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처벌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면담을 진행한 공무원 2명은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한 명은 애초에 열거된 기준을 넘어 새로운 사유를 지속적으로 추가하게 되면 법 조항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별이라는 주제가 새로운 주제가 아닌 이상, 이미 형법 제정 시 거론되지 않았다면 굳이 새로 추가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노르웨이에서 여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록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결국 여성으로서의 구조적 피해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인종 등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과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혐오표현을 소수자 대상으로 한정해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든 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든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초래한다는 점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 중요하거나 나아가 하나만 처벌하고 다른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질적으로 구분돼야 한다.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은 실제 물리적 위해로 나타난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소수자에게는 현실의 공포를 초래할 수 있는 반면, 다수자에게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그치기 쉽다. 여성으로부터 혐오표현을 당한 남성들이 ‘여성으로부터 묻지마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실제로 느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노르웨이 형법의 경우 조문상으로는 다수자 대상 혐오표현도 형사처분 대상으로 포함하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처벌 사례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봐서 실제로는 둘을 서로 다르게 취급한다고 봐야 한다. 사회에 대한 위해의 정도가 질적·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판단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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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표현의 자유를 보장

노르웨이 정부는 총리실 주관하에 2015년 11월 아동평등부가 실무 책임을 맡고 문화부, 법무부, 노동사회부, 교육부, 지방자치단체부, 이주정책부, 외교부 등 모두 7개 부처 합동으로 <혐오표현 반대 전략 계획(2016~2020)>을 발표했다. 총 23개 실행 계획으로 구성돼 있고, 이제 막 중간 지점을 통과한 중장기 계획으로 그 성과를 판단하기에 아직 이르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된 <혐오표현 반대 정책 선언(Political Declaration against Hate Speech)>은 눈여겨볼 만하다. 3개 문단의 개요와 4개의 목적으로만 구성된 짧은 내용이지만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원칙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와 ‘소수자 보호’ 사이의 대립 구도로 보지 않고, ‘소수자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혐오표현 관련 논의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기존 대립 구도에서는 ‘혐오표현 가해자의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보장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지만 <정책 선언> 관점에서 이 질문은 바로 폐기된다. 소수자 보호가 우선이고, 모든 기준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 등 인권에 위해가 되느냐 여부가 된다. 노르웨이 형법이 형사처분 대상에 다수자 대상 혐오표현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 처벌 사례가 없는 이유도 이런 관점에 기인할 것이다.

‘혐오표현(Hate Speech)’은 어느 수준 이상은 형사처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보다 낮은 수준, 즉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정책적 반대 대상이라는 점은 노르웨이 사례가 잘 보여준다.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수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이 또한 노르웨이 경험을 보건대 명확하다. 바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수자에 대한 혐오와 구분해서 별도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성택 님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근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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