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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음 [2019.03] 아이도 한 사람입니다

글 황옥경

 

인간의 권리를 명시한 세계인권선언이 있는데, 국제사회는 왜 아동권리협약을 별도로 규정한 것일까?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보고 이들의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즉, 국제사회는 생애주기 중 발달이 가장 빠른 시기인 아동기에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고 쉽게 학대받거나 방치될 수 있으며, 사회적인 논의에서도 배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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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왜 어른보다 미숙한 존재가 됐나

우리나라는 1991년 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한 이후 최근 10여년 사이에 아동권리에 대한 자각이 크게 성장했다. 법률, 정책, 제도 정비를 통해 아동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계속됐고, 아동 의견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동 의사를 존중할 기반이 되는 제도를 마련했다. 아동을 단지 어른에 예속된 존재로 인식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큰 진전이다.

그러나 아동권리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만큼, 그 이념이 아동의 삶 곳곳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아동권리에 대한 고려가 형식적이고 명목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동권리에 대한 의미와 내용에 걸맞은 정책적 조치와 이행 역시 취약하다. 아동의 존재적 가치가 성인에 비해 소홀하게 여겨지고, 성인 중심의 시각과 의사결정이 여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동을 어른과 비교해 미숙하고 무능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제임스와 프라우트는 아동발달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표준화’인지를 확인하는 발달심리학 연구가 결과적으로 아동을 무능한 존재로 낙인했다고 본다. 이들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특정 역량을 갖게 된다고 보는 발달이론이 아동이 성인에 비해 발달 상태가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고 봤다. 발달이론은 역설적이게도 아동을 성인과 분리하고 아동의 시각과 본성을 도외시하면서 성인이 주도하는 사회를 구성하는 데 활용됐다.

한편 조셉도네이도는 아동이 성인의 요구에 맞게 행동할 때만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동화 속 이야기를 통해 성인이 아동을 예속화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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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모습

우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동은 사회적으로 자주 배제된다. 정책 이행 과정에서 어른의 필요에 따라 아동은 종종 수단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때로는 아동권리 개념이 정치적인 활용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갖지 못하고, 어른의 이익에 따라서 잘못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나 보호자, 아동, 기관 운영자, 정책 입안자들 간의 이익 긴장이 드러나면 아동권리가 무시되거나 포기된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어린애 같은’ 등의 표현은 고유의 발달특성을 갖는다는 아동기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아동의 특성을 바람직하거나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아동을 성인보다 부족한 존재로 이해하게 만든다. 최근 불거진 노키즈존 논란은 아동 보호의 미명 하에 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정당화한 하나의 예다. 이 사안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아동 발달 특성과 부모의 양육 책임, 사회구성원으로서 아동의 존재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노키즈존 논란 과정에서 어른과 동일한 한 사람으로서의 아동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다.

아동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자기규제가 안 되는 존재일 것이라고만 인식됐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가의 아동에 대한 이해와는 사뭇 다른 인식에서 기인한다. 선진국가에서는 어린 영유아기부터 따뜻한 애정과 승인을 통해 자기표현의 합당한 기회를 제공받고, 아동이 된 후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 책임을 인식하는 인권의 기본 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가족 식사에서 아이들끼리 따로 모여 밥을 먹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제로 성인과 아동의 분리를 익숙하게 하고 연령과 배경을 초월해 나의 권리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조화롭게 성취하는 연습 기회를 어른들이 차단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어른들의 요구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린 아이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아동이 다니는 기관의 운영을 잠정적으로 쉬거나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오는 행위, 기관 앞에서 아이를 앞세워 어른의 주장을 담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른의 행동인지 따져 봐야 한다. 어떤 때는 특정 사안과 관련된 어른들이 ‘아동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아동을 볼모로 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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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

저출산으로 인해 한 아동의 건강한 발달이 더욱 중요해진 지금까지도 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사회는 왜 아동을 어른들과 완전하게 동일한 그리고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는 것일까? 아동권리에 대해 왜 둔감할까? 어른이 아동의 지위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편리성의 욕구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투표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나 언론의 반응에 의해서 정책이 결정되고 추진되는 게 일반적인데 아동은 투표권이 없으니 아동권리가 밀려날 수박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극단적인 아동 사건이 발생해야 아동에 대한 관심이 잠시 생겨날 뿐이라고 한다.

아동권리협약은 아동보호주의와 아동권리주의를 조화시켰다. 협약은 아동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데 취약해 이미 정해진 전통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고수하는 아동보호주의의 한계를 극복했다. 동시에 협약은 아동이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도록 아동을 권리의 주체자로 봤다. 이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아동을 대신해서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되며, 어른이 아동에 비해 언제나 더 합리적이고 자율적일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

버크는 1977년 「댁의 아이도 사람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기질과 환경 간 상호작용의 개인적 특성을 설명하고 아동이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19세기 사회개혁가들은 근로 현장에서 아동 보호를 주창했다. 빅토리아 시대인 1837년 찰스디킨슨는 책 「올리버트위스트」를 통해서 아동보호와 권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했다. 1924년의 제네바 선언은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아동 최선의 이익 등 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과 아동권리 유형의 토대가 됐다.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아동이 재앙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취약한지도 깨달았다.

20세기 아동권리협약의 채택으로 아동은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 아동은 단지 차세대 시민이 아니라 미래의 평화로운 국제관계에 기여할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아동기를 거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21세기에 아동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인류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불확실한 정치 상황은 예전보다 더 짧고 불안정한 아동기를 낳고 있다. 선진국들은 아동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의사표현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아동권리 시각을 중시하는 양육과 교육 체계를 마련하는 데 집중한다. 아동은 태어나는 날부터 시민이며, 교육과 양육은 아동에게 필요한 시민적 역량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아동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아동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선한 의지를 키워야 할 것이다.

 

황옥경 님은 한국아동권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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