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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삶을 말하다 [2019.06] 노동 그리고 삶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글 신민정

 

2018년 한겨레신문 사회부 24시팀 소속 기자 5명이 한 달간 각기 다른 노동 현장으로 투입됐다. 2009년 한겨레21에서 연재된 노동 르포 <노동 OTL>의 후속 <노동 orz> 기획이었다. 공장으로 대표되는 ‘야간 노동’, 콜센터 상담사의 ‘감정·감시 노동’, 프랜차이즈의 ‘초단시간 노동’,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떠오르면서 등장한 ‘플랫폼 노동’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노동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다면

사회부 사건팀 기자에게 ‘노동’은 친숙한 소재다. 안타까운 산업재해 사고, 불법이 만연한 일터,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는 노동자 집회 등이 모두 사건팀 기자가 다루는 노동의 소재다. 하지만 누군가 “노동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은 없다. 기자는 노동과 관련한 법과 통계를 자주 살펴보지만, 실제 현장에는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과 법과 제도로 고쳐지지 않는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살펴본 노동 현장이나 취재원의 증언은 실제 현장의 극히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장에서 직접 일하며 어려움과 모순을 관찰하고 생생하게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8년 한겨레 사회부 사건팀 기자 5명이 약 한 달가량 노동 현장에 뛰어든 이유다.

기획 기사의 이름은 10년 전 한겨레21에서 똑같이 연재됐던 <노동 OTL>기획을 본떠서 ‘더 작아지고 움츠러들었다’는 의미로 <노동 orz>로 정했다. 이후 필자는 ‘감정·감시 노동’을 체험하고자 콜센터 상담원으로 취업했다. 고한솔 기자는 ‘야간 노동’의 현실을 알아보고자 주야 맞교대 노동이 이뤄지는 마스크 공장에 취업했고, 황금비 기자는 ‘초단시간 노동’ 문제를 짚기 위해 빵집, 카페, 샐러드바 등 초단시간 노동 현장에 투입됐다. 장수경 기자는 기술 발전으로 떠오르고 있는 배달대행업체의 배달원으로 일하며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고발했으며, 임재우 기자는 ‘장시간 노동’이 지배하는 게임 회사에 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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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업체의 배달원으로 근무한 장수경 기자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

나는 2018년 2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약 한 달 정도 홈쇼핑 회사의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 소속 상담사로 일했다. 홈쇼핑을 보고 전화한 고객의 주문을 접수하고, 반품 교환 등 주문 외 고객이 모든 요구 사항을 처리하는 CS(Customer Satisfaction) 처리 담당이었다.

대표 서비스 직종인 콜센터 상담사는 고객으로부터 오는 ‘감정 노동’뿐만 아니라 회사로부터 오는 ‘감시 노동’에도 시달린다. 사전에 전·현직 상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은 예상보다 당황스러웠다. 가장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상담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관리자에 의해 감시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일하다가 화장실에 갈 때도 팀장 및 팀원 6~7명이 모여 있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보고를 하고 가야 했다. 화장실에 갈 때는 ‘화출’, 화장실에 도착해 자리에 착석한 뒤에는 ‘화착’이라고 남기는 게 필수였다. 관리자는 “바쁠 때 우르르 화장실에 가면 안 되지 않겠냐”며 보고를 꼭 하라고 강조했다. 메신저에 누군가 화장실을 간다고 써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먼저 간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걸 참아야 했다. 주문 전화가 많이 올 땐 화장실을 가는 것 자체를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상담사의 화장실 왕래를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메신저 보고를 통해 상담사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한 셈이다. 직원들은 물을 최대한 적게 마시며 화장실 가는 걸 참았다. 콜센터의 이 같은 업무 환경은 질병과 연관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부산여성회가 2015년 콜센터 노동자 1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담원의 32.1%는 불면증 및 방광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콜센터의 감정 노동은 어떨까?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일하지 못했지만, 기사에서나 보던 소위 진상 고객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고객이 불러준 카드번호를 상담사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며 “귀가 먹었냐”고 소리 지르던 고객, 건강식품을 구매하면서 “효과가 없으면 죽이겠다”고 윽박지르던 고객이 기억에 남는다.

‘왜 블랙컨슈머에게 당하고만 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사실 감정 노동으로부터 콜센터 상담사를 보호할 법과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콜센터 상담사가 고객의 폭언으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길 위험이 있는 경우 회사에 업무를 일시 중단하거나 전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이 있다. 콜센터에서도 ‘고객이 욕설을 3회 하면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자체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법과 제도, 사규는 무용지물이었다. 상담사가 폭언을 이유로 업무를 중단하거나 고객에게 맞받아칠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객은 ‘갑’, 상담원은 ‘을’로 보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한들 백약이 무효한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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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인권보도상 대상을 수상한 한겨레신문 사회부 24시팀

 

 

노동의 사각지대

마스크팩 공장에서 12시간을 밤새워 일했던 고한솔 기자는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대해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오래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자처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 없이 획일적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빵집이나 카페 등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 현장에서 일했던 황금비 기자는 최저임금 인상 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근무 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쪼개 각종 법 조항을 피해 가려는 현실을 짚었다. 게임 업체에 취직했던 임재우 기자는 공짜 야근을 양산하는 포괄임금제를 지적했다.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로 일했던 장수경 기자도 배달대행업체 기사의 모호한 신분을 강조했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입사 교육을 받고 근태 관리도 받는 라이더는 누가 봐도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배달대행업체로부터 배송 업무를 위탁계약한 개인사업자다. 정해진 임금이 아니라 콜이 들어오는 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사고 위험이 항시 존재하지만 신분상 사업자라는 이유로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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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카페 등 초단시간 노동 현장에서 근무한 황금비 기자

 

 

노동 현장의 변화를 꿈꾸다

해당 보도가 나간 뒤 한겨레신문 사회부 24시팀은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여하는 제8회 인권보도상 대상을 수상했다. 고한솔 기자는 인권보도상 시상식에서 “10년 전에는 <노동 OTL>, 이번에는 <노동 orz>로 좌절하고 웅크려있는 노동자의 모습을 전달했다. 10년 후에는 밝게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제335회 이달의 기자상, 민주언론시민연합의 2018년 6월 이달의 좋은보도상도 수상했다. 노동 현장과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던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독자로부터 이메일도 많이 받았다. “아내가 임신 9개월인데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어 걱정이 많이 된다”, “실업고 교사인데 배달 일하는 제자들이 많아 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취직 전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생생하게 전달해줘 고맙다”는 등의 이메일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팀원들이 겪은 갖가지 사건사고도 기억에 남는다. 공장 노동자 고한솔 기자는 밤샘 노동 중 깜빡 졸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배달 노동자 장수경 기자는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렇게 <노동 orz>에 참여했던 기자들은 노동 현장에서 빠져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해당 업종에서 수년, 수십 년을 일하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현장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고민을 바탕으로 10년 후에는 더 나은 노동 현장을 상상할 수 있길 희망한다.

 

 

신민정 님은 한겨레신문 사회부 24시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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