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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찾아가는 인권위 [2019.06] 5월, 광주에서 전하는 안부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글 김민아 / 사진 봉재석

 

5월, 광주의 가로수와 가로수를 이어주는 현수막에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신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근조가 달린다. 사람은 도시에 살고 도시는 사람을 품는다. 사람을 품은 도시는 어디든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5월의 광주는 더욱 특별하다. 해마다 5월이면 이 도시에는 제(祭)가 준비되고 제사상엔 기억과 기록이 잇따라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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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올해로 39주년

5·18을 감히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느새 나이를 먹어 39세다. 태어나면서부터 피투성이가 된 아이가 모진 세파를 거쳐 이제 곧 중년에 접어든다. 39년 전 그 열흘 동안 거리에서 주먹밥을 만들던 여자는 올해로 70세가 됐다. 대학교 1학년생이던 남자는 그날을 계기로 평생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됐으며, 구속된 남편 생각에 눈물로 날을 새던 심성 약한 아내는 강성의 시민운동가가 됐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가 피투체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처럼 한 사람의 생애는 그렇게 절체절명의 사건을 만나 예기치 못한 현장에 던져지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날의 5·18은 작은 도시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지만 아직도 억압과 폭정에 고통당하며 항거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또 다른 광주가 된다. 그래서 광주는 도시 자체로 특수하지만, 세계 시민으로서는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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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마주하고 바로잡는 시간

광주인권사무소는 광주와 5·18을 우리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시민들과 함께 기념하고 싶었다. 유럽은 홀로코스트라는 인종 학살로 6백만 명을 잃은 비극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부정하려는 세력들의 조롱과 부인에 지속적으로 시달려 왔다. 그래서 우리는 시민과 함께 보는 인권 영화를 기획하고, 첫 영화로 2016년 개봉한 <나는 부정한다>를 선택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법정 실화를 바탕으로 홀로코스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내용이다. 본래 구약성서에 언급된 홀로코스트는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특수한 제사를 뜻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는 행위를 총칭한다. 즉, 영화에서 말하는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군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타락한 역사가는 “나치가 만든 포로수용소에는 독가스를 주입한 구멍이 없고, 그 많은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아서 죽었으며, 생존자의 증언이 엇갈리기 때문에 보상금을 노린 망상일 뿐”이라는 신나치주의자들의 궤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거짓말은 때로 진실을 죽일 정도로 강력해서 언제든 폭력적인 방식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홀로코스트로 죽어간 피해자들의 아픔을 증언하기 위한 역사가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는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할 수 없어 고단한 법정 다툼을 시작한다. 무려 32회의 공판을 거쳐 거짓이 승리하고 진실이 침묵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뭘까.

광주는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타락한 정치가들의 5·18 망언으로 몸살을 앓았다. 역사가 훼손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 느껴졌다. 어떤 역사는 이야기로만 구전되기 때문에 광주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고향의 오래된 아픔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이들은 삶의 현장 어디에서든 광주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 있고,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넓혀준다. ‘광주와 같은’ 사건은 어느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다.

이날 아시아문화의전당 시네마테크 극장3 전석을 메운 광주 시민 대부분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이택광 문화비평가가 들려준 영화 해설을 통해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그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5·18을 ‘폭도’, ‘괴물’, ‘북한군’으로 발언하고, ‘세월호 오뎅’을 운운하며 희생자와 가족에게 폭력을 가하고, 혐오·차별 발언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늘어져만 가는 기억을 두터운 기록으로 만들어 보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록을 읽지 않을 것이다. 되레 왜곡할 것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보는 것을 멈출 순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할 순 있지만, 거짓을 말하고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관성은 사라져야 한다. 영화는 냉정한 법이 지켜낸 역사를 담담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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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지키는 사람들

광주인권사무소에는 현재 총 11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내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상담원 김선례, 인권이 궁금해서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권의 가치를 전파하는 인권테마역사 코디네이터 김회경, 디자이너에 버금가는 홍보 감각과 전문성을 지닌 정현지, 꼼꼼하고 세심한 회계를 처리하는 김광민, 또박또박 명쾌한 설명으로 민원인의 고민을 풀어주고 교도소 곳곳을 누비는 박진우, 묵언을 수행하듯 사건에 임하는 김동호, 그 곁에서 그의 침묵을 깨트리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명조사관 박성훈, 무서운 집중력으로 일하지만 맛있는 식판 앞에선 맥없이 흐트러지는 김도연, 이들을 이끌어나가는 팀장 송병관, 직원 모두를 격려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소장 김철홍, 그리고 필자인 나.

우리는 매일 인권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때문에 인권이 무엇인가에 대해 매일 처음부터 다시 질문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일이 힘들어서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도 직원들은 다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난다. 가벼운 상담이 깊이 있는 조사로 이어져 귀한 인용을 이끌기도 하고, 당장은 결실이 없어 보여도 거듭되는 인권 교육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홀씨처럼 자리 잡기도 한다. 또한 시민 사회단체와의 진심 어린 협력으로 인권이 실현되는 도시로 나아가는 기틀을 다지기도 한다. 광주인권사무소는 앞으로도 역사를 일구고 지켜낸 광주·전남·전북·제주의 이야기를 꾸준히 발굴하고 지역민들과 교감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젠가 광주에 방문한다면 광주인권사무소에 찾아와주면 좋겠다. 이름도 정겨운 그 거리에 당신이 와준다면 우리는 환한 웃음으로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광주인권사무소

•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 57
• 문의: 062-710-9716

 

김민아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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