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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음 [2019.07] 71주년 제헌절에 생각하는 헌법

글 임지봉

 

헌법은 국가의 기초를 설계한 문서로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은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우리 헌법은 때로는 권력자들에 의해 부정적 방향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1987년의 6월 항쟁 이후부터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 규범이 돼 왔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 헌법을 촛불혁명에서 제기된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국민의 헌법’으로 다듬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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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과 제헌절이 가지는 의미

올해는 제헌절 71주년이다. 1948년 7월 17일에 제헌헌법이 만들어져 공포된 이래 71년의 헌정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민주헌정이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헌법을 지켜낸 이들은 주권을 실현하려는 평범한 국민들이었다. 그래서 제헌절 71주년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이다. 따라서 최고법인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나 국가 권력의 행사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를 거쳐 무효화된다. 헌법은 국민주권의 원리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 원리들과 국가 형태에 관한 ‘총론,’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적 권리에 관한 ‘기본권,’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조직과 권한에 관한 ‘통치 구조’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 헌법은 1948년 7월 12일에 국회를 통과하고, 5일 후인 17일에 공포됐으며, 그 헌법에 따라 약 한 달 후인 8월 15일에 대한민국 초대 정부가 수립·출범했다. 헌법의 공포일인 7월 17일이 ‘헌법이 제정된 날’을 뜻하는 ‘제헌절’이 된 이유다.

헌법은 국가의 기초를 설계한 문서다. 따라서 제헌절은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고 제시한 날이 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제헌절을 맞아 우리 헌법을 생각해본다. 헌법은 역사의 고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때로는 권력자들에 의해 부정적 방향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1987년의 6월 항쟁 이후부터는 국민들이 권력자를 통제하는 근거로서 작용하는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부정적 방향으로 악용됐던 헌법

헌법이 부정적 방향으로 악용됐던 예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독재와 장기집권이 노골화된 소위 ‘유신헌법’을 들 수 있다. 유신헌법은 우선 그 개정 절차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에 남북 대화의 적극적인 전개와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대처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대통령 특별 선언’의 형식으로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10·17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로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활동 등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된다. 당시 헌법은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투표 이전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통한 ‘국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17 비상조치는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들로 구성된 ‘비상 국무회의’가 국회를 대신해 소위 ‘유신헌법 개정안’을 의결하게 했다. 이렇듯 유신헌법은 형식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헌법 개정 절차에서 큰 절차상의 하자를 띤 헌법이었다.

더 큰 문제는 유신헌법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하고, 세계 각국의 헌법에서 헌법상의 기본 원리 중 하나로 채택하고 있는 권력분립 원리를 허물어뜨리는 내용들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첫째, 당시 유신헌법 제47조는 대통령의 중임 및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고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적어도 헌법적으로는 무제한적인 연임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유신헌법 제39조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직선이 그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어용기관인 당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해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의 직접 선거를 통한 민주적 통제 없이 영구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둘째, 권력분립 원리를 허물어뜨리는 헌법 조항들을 통해 국회나 사법부가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없게 했다. 국회의 경우 국회의원 중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명목적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했다. 국회의 구성에서부터 권력분립 원리가 유린된 것이다. 또한 제헌헌법에서부터 국회에 부여된 중요한 국회의 대행 정부 견제 권한이었던 국정감사권을 헌법에서 삭제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를 도저히 견제할 수 없게 무력화시켰다. 사법부와 관련해서는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뿐만 아니라 일반 법관까지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원래 일반 법관에 대한 임명권은 대법원장에게 있었는데, 이것을 빼앗아 대통령이 장악함으로써 말단 법관에 대한 임명도 대통령이 하게 됐다. 법관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이 가지게 되자 유신시대의 사법부도 더 이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없게 됐다. 헌법이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장식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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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방향으로 전개된 헌법

군부독재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자 국민들이 떨쳐 있어났던 ‘6월 항쟁’ 이후에 군사정권이 물러났고 이 땅에 헌법재판소도 세워졌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의 헌법은 권력자에 의한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자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근거로 역할하게 됨으로써 헌법과 헌정이 긍정적 방향으로 전개되는 국면을 맞았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헌법과 국민의 역할도 그러했다.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 탄핵제도를 헌법에 두고 있는 다른 국가에서도 실제로 대통령의 탄핵 파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촛불혁명과 탄핵 결정을 통해 어떤 권력도 헌법 아래에 있음을 증명해냈다. 역사적인 만장일치의 탄핵 인용 결정은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내린 것이 아니다. 촛불을 든 국민이 내린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헌법재판관들은 국민의 뜻으로 대신 대통령을 파면한 ‘국민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국민이 불의의 권력을 몰아낸 근거가 된 것이 다름 아닌 ‘헌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촛불과 대통령 탄핵은 헌법의 ‘권력 제한 규범성’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헌법은 다른 규범들이 가지지 못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그중 하나가 ‘권력 제한 규범성’이다. 즉 국가기관들은 헌법 규정들이 부여한 권한만 행사할 수 있고, 그 이외의 권한 행사를 하려면 헌법에 의해 그 권한 행사가 제한받게 된다. 헌법이 ‘권력 제한 규범’이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도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헌법은 최고 권력자까지도 통제하는 무서운 규범이다. 그러면 왜 헌법이 권력을 제한하는 무시무시한 규범이 돼야 할까?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다. 헌법은 국민 기본권의 보장과 실현은 국가 권력의 통제와 제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진리를 품고 있다.

 

현시점에서 변화해야 하는 헌법 내용

원래 모든 혁명은 헌법의 제정이나 개정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개헌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개헌을 통한 ‘촛불혁명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변화해야 하는 헌법의 내용은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첫째, 국민들은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원한다. 촛불 현장에서 많은 국민들은 일관되게 대통령과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다수 국민의 뜻을 국정 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수 국민의 뜻에 배치되는 국가 의사의 결정들이 곧잘 내려졌음을 질타했다. 그래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이 줄곧 주장됐고 민의를 저버린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 요구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렸다.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원하는 다수 국민의 뜻을 반영해 선출직 공무원들이 큰 실정을 범하면 임기 전에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나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헌법 개정안이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를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 둘째, 국민들은 헌법상의 각종 기본권들의 보장이 더 강화되기를 원한다. 지난 87년 개헌 이후 32년 동안 많은 새로운 기본권이 탄생했지만 헌법의 기본권 규정에 반영되지 못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대두된 새로운 기본권인 알권리나 개인정보통제권과 같은 정보인권, 각종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안전권 등이 신설돼야 한다. 복지국가에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사회권 조항들이 신설되고 구체화돼야 한다. 주거권이나 건강권, 사회보장수급권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셋째, 국가기관 간의 분권도 중요하지만 중앙과 지방간의 분권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못지않게 중요하므로 지방분권에 대한 여러 헌법 조항이 신설되길 국민들은 원한다. 지방분권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지방정부의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이 강화돼 풀뿌리 민주주의가 더 깊어져야 한다.

제헌절 71주년을 맞아 헌법 제1조를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헌법의 주인은 역시 국민이다.

 

 

임지봉 님은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헌법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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