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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시범 운영

오늘 이음 [2019.07] 환자의 알권리 개선을 위해
수술실 CCTV 시범 운영

글 정일용

 

#1. 2017년 10월,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교수가 수술하다가 욕을 하고 수술용 도구로 때리는 상황이 TV 뉴스에 방송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질타하는 장면을 보고 국민들은 수술실에서 공공연하게 폭언·폭행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8년 벽두에는 이 교수가 다른 교수를 대신해 대리 수술을 한 것이라 해서 다시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2. 2018년 6월,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던 환자의 핸드폰에 녹취된 파일이 공개됐다. 이 녹음파일에는 직접 들으면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신체에 대한 비하 발언 및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행이 들어 있었다. 피해자는 며칠 동안 불면증 등 고통을 느끼다가 언론에 공개하고 의사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고소했다.

#3. 2018년 5월, 정형외과 병원에서 어깨 수술을 받은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그해 9월 초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 과정에서 수술실 복도에 있던 CCTV를 조사한 결과 수술실에 들어갔던 의사가 금방 다시 나왔다가 한참 뒤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찍혔다. 이는 집도의가 직접 수술하지 않고 무면허 비의료인이 사망 환자를 대리 수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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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불미스러운 사건들

현대 의료의 꽃은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균을 발견하고 항생제를 개발하면서 수술의 합병증인 감염을 예방할 수 있게 됐고, 나아가 20세기 외과적 수술이 상당히 발전하게 됐다. 병은 기본적으로 수술을 하는 곳이고, 당연히 수술을 잘하는 병원이 대접을 받게 된다. 그만큼 수술실은 오염되면 안 되는 곳이며, 수술의 안정적인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의료 인력 외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그리고 수술하는 집도 의사는 그 안에서 왕으로 군림한다. 왕은 보조 인력인 전공의와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는 이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수술에 방해 되는 행동을 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훈계는 불가피하다. 특히 수술에 익숙하지 않은 전공의라는 피교육생은 오랜 기간 폭언과 폭행을 당해왔다. 하지만 인권이 강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선 이를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술실과 관련된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지속적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국민들은 본인도 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이에 국민들은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고 요구하게 됐다.

 

경기도의료원 수술실 CCTV 운영

경기도는 2018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시절 수술실 성희롱 사건을 접했다. 이후 6월 말부터 경기도의료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어 경기도의료원에 수술실 CCTV 설치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이 설 무렵인 9월 초 ‘무면허 대리 수술 사건’이 터졌다. 수술실 CCTV 설치 여론이 올라가자 이재명 도지사는 9월 16일 SNS를 통해 10월부터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2018년 3월 개원한 임대형민자 사업의 신축 건물이라 수술실에 CCTV가 이미 설치돼 있었다. 개인정보보호와 유출에 대한 보완 장치만 마련한다면 바로 시행이 가능했다. 경기도의료원은 운영 규칙과 직원 및 환자에 대한 CCTV 촬영 동의서를 만들었다. 또 경기도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경기도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여론조사 결과 경기도민의 91%가 CCTV 설치에 동의했다.

먼저 병원에서는 접근 권한자, 관리 책임자, 보호 책임자(병원장) 등 3단계로 나눠 책임자를 두고 개인정보 보안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의사나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을 한 뒤 마취 전에 다시 한 번 확인 절차를 갖게 했다. 수술하기 전에 CCTV를 켜고 수술이 끝나면 CCTV를 껐다. 영상 자료는 한 달간 병원에서 보관하고 이후 완전히 지워야 한다. 만일 환자나 법정대리인이 영상 자료 반출을 요구하면 병원장의 허락 하에 암호화해서 반출할 수 있다.

시범 사업 결과 65%가량이 CCTV 촬영 동의율을 보였고, 영상 자료를 요청한 경우는 없었다. 경기도의료원은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6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뒤 같은 절차를 밟았다. 개인정보 관리 책임을 한 단계 더 높여 산하 병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의료원장도 책임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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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무화 추진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이유는 인권적 측면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폭행이나 성희롱, 대리 수술 등을 예방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오해로 인한 의료사고 분쟁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것이라 판단한다.

단지 병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의료사고 분쟁에서 불리한 증거가 나올 수 있어 불안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의료법과 맞는지 살펴봐야 하고, 적은 인력으로 운영하던 병원이라면 인력 충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결국 비용이 더 드는 셈이다. 환자나 보호자는 수술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는 어떨까? 의사도 인권이 있으므로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는 수술을 결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수술실 CCTV 촬영에 동의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감시당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설치 자체가 문제 되진 않는다. 한편 생각을 달리하면 의사의 입장에서 수술실 CCTV가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많은 의사들이 억울하게 고소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 무죄를 입증할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에 대해 찬성하는 의사도 다수 있다.

경기도는 경기도의료원의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이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타 공공병원도 특별한 법률 개정 없이 시행하도록 하고, 궁극에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올해도 성형외과 수술 후 사망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승소와 분만 신생아 사망 은폐 등이 언론을 타면서 수술실 CCTV 설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권대희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은 안면윤곽수술을 받다가 뇌사 상태에 빠져 끝내 사망한 청년 권대희 씨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국민들의 인권 의식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잘못된 특권은 사라지는 추세다. 남자의 특권, 상사나 스승의 특권도 사라지고 있다. 응급실이나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도 직원들의 보호를 위해 CCTV가 설치돼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수술실 또한 마땅히 공개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제 의료계 인력들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다시 생각해주면 좋겠다.

 

정일용 님은 경기도의료원장이며 국립중앙의료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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