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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생각 [2019.08] 청소년도 배제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글 강민진

 

최근 ‘만 18세 선거권’을 포함한 정치개혁 법안이 국회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됐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완성의 과제였던 ‘18세 선거권’이 반드시 통과돼 더욱 폭넓은 청소년 참정권의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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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가입국 중 높은 선거 연령

2018년 지방선거가 한창인 시기에 한 청소년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선거법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로 규정돼 있는데, 이 청소년이 SNS를 통해 이번 선거에서 누가 뽑혔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온라인상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청소년들 또한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민주주의 사회란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모두가 동등하게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는 사회다. 구성원들 간에 의견이 다를 때는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서 절충점을 찾아낸다. 이런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상태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정치 참여의 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만 18세 이하 청소년들이다. 현재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만 19세로 가장 높은 선거 연령 기준을 두고 있고, 청소년이 정당에서 활동하거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주민 투표나 주민 발의에 대한 권리도 주지 않는다. 많은 나라들이 만 18세 또는 16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청소년의 정당활동이나 선거운동을 제한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선거철 투명 인간 되는 청소년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와 정당들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길거리에서 악수를 하고 명함을 나눠주기도 한다. 그런데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지나가면 악수를 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은 ‘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 과정이나 당선 이후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은 쉽게 무시되곤 한다.

최근의 이슈는 경상남도의회에서 심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스스로 두발·복장을 결정할 수 있고, 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 이미 헌법과 UN아동권리협약 등에서 보장하라고 한 내용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의 인권 침해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따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경남에서는 이미 10년 전인 2009년에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있었지만 무산됐었다. 2012년에도 도민 3만 7천여 명의 서명을 모아 주민 발의로 조례 제정을 추진했지만 도의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로 다시 시도했지만, 지난 5월 교육상임위원회에서 안건 상정을 부결시킨 것이다. 일부 도의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면 “교사의 권리가 침해될 것이다”, “학생들이 성적으로 문란해질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며 반대했다. 이에 대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학생 인권이 보장되면 교권이 침해된다니, 그렇다면 교권은 학생 인권을 침해하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데 왜 성적 문란을 이야기하는가”라며 탄식했다.

사실 학생·청소년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추진되지 못하고 좌절된 역사는 짧지 않다. 경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전국 17개 시·도 중 경기·광주·서울·전북을 제외한 지역들에서는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인 2007년 국회에 ‘학생인권법’이 발의됐지만, 일부 교사 단체와 정당 등의 반대로 인해 초중등교육법이 아주 약간 수정되는 성과만 얻고 실패로 돌아갔다. 청소년보호법, 게임 셧다운제,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설치 강제화 등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나 정책이 도입될 때 당사자인 청소년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작년 기준으로 국가가 아동·청소년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노인을 위해 책정한 예산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여전히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청소년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이 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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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연령 하향 요구는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참정권은 이 사회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재의 인정입니다.”

- 2018년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에 나섰던 청소년 김윤송의 말

 

미래의 주인이 아닌 현재의 주인

2017년은 박근혜 정권을 탄핵한 해였다. 곳곳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정권의 퇴진과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중에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다수의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참여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나 표현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국 청소년 중 과반수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집회 참여나 시국선언 등 다양하게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은 탄핵됐고, 그해 5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촛불 대선’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함께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들은 ‘만 19세’라는 연령의 장벽에 막혀 촛불 대선에 참여하지 못했다. 광장에서는 민주시민으로 대우받았지만 학교로 돌아간 뒤 다시 침묵과 순종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였다. 탄핵 이후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는 법안이 통과될 것인지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도 선거권은 ‘19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청소년은 이미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받다 17세에 죽음을 맞이했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3·1운동과 독립투쟁에 나섰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있었다. 독재자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린 4·19 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것도 고등학생들이었다. 최근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민주주의 문제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발 벗고 나서왔다.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권리가 주어질 때 진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참정권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권리이며, 내가 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권리다. 그동안 인류는 재산, 인종, 성별 등의 참정권 자격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고, 이제 남은 것은 나이 기준이다. 청소년도 머지않아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강민진 님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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