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 > 찾아가는 인권위 > 인권의 땅, 대구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찾아가는 인권위 [2019.08] 인권의 땅, 대구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글 박민경

 

대구인권사무소가 지난 7월 12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2007년에 5명으로 시작한 대구인권사무소는 이제 2배가 훌쩍 넘는 직원으로 채워졌다. 사람도 불어났으니 올해 5월에는 공간을 더 넓혀 이사도 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서 방울토마토 한 그루 정도는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이 갖춰졌다.

 

1

 

인권의 역사 길을 만든 대구

누군가는 “대구가 인권 업무를 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심하게는 인권의 불모지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지역의 색채가 보수적인 것과 인권적이지 않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실 대구는 한국 전쟁을 전후해서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진보적인 도시였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의 발상지로, 그만큼 야성이 강한 도시라 독재자가 두려워했다. 서슬 퍼런 군부정권 아래에서 삼성 최초의 노조, 제일모직의 여성노동자 조합이 가장 먼저 태동했던 곳이자 전교조의 시초가 된 경북교원노조가 1960년대에 최초로 결성된 도시이기도 하다. 전태일의 고향이었고,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서 봄을 부르짖으며 농민·노동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저항의 도시였던 대구는 어느 순간 ‘보수’라는 이름의 옷을 입게 됐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곤란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 중에 ‘골로 간다’라는 표현이 있다. ‘좌익, 보도연맹,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역사가 있어서다. 마을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골짜기(골)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다. 대구에 인접한 경산시 코발트 광산은 단일 면적당 희생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살 터이기도 하다. 그날 이후 지역민들에게 좌익과 빨갱이는 입에 담아서는 결코 안 되는 금기어였다. 그 트라우마가 지금 이 지역의 보수적 색채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더욱 철저하게 반공·반좌여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슬픈 기억이 존재하는 도시가 됐다.

 

2

 

☞ 시민인권아카데미

슬픈 역사 속에서 보수의 도시로 이름을 얻긴 했으나, 시민들 내면에 잠재된 열정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5월경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8주간의 ‘시민인권아카데미’를 개최했다. 9살 어린이부터 팔순을 곧 바라본다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이들이 인권을 만나러 왔다.

폐쇄적인 도시에 사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대구인권교육센터에 찾아와서 장애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이야기, 스포츠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공감했다. 현장 학습으로 찾아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는 이념을 이유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분노하고 아파했다. 몸으로 체험한 인권은 깊이 각인될 것이다.

 

3

 

☞ 지방의회 의원 대상 인권 교육

필요성을 인식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인 곳이기도 하다. 올 초 경북 국외연수에서 발생한 예천군 의원의 폭력 사건과 인권 의식 부재로 인한 발언 등은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요구했다. 대구인권사무소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마음으로 바로 각 대구경북 광역, 기초 의회 33곳에 인권감수성 교육 개설을 안내하고 신청을 받았다. 현재까지 경북은 3곳, 대구는 8개구 모두 인권감수성 교육을 이수했다.

교육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랐다. 교육 과정에서 정당을 불문하고 “의원님의 정당이 집권하게 되면 사람이 존엄하게 사는 것에 반대합니까?” 라는 대답에 그 누구도 “아니오”라고 하지 않았다. 의회에서 인권 교육이 의무화되기를 원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런 교육을 상시적으로 운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도적 미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나눴다.

 

4

 

☞ 뉴미디어 홍보 운영

대구인권사무소는 홍보 수단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라디오 광고 등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구 KBS 제1라디오에서 매주 5분간 활용할 수 있는 코너를 내줬다. 위원회 주요 결정례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현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기회가 자리를 잡아가자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다. 인권 현안이 이제 지역 사회 공론의 장으로 던져졌고, 이에 대해 대구인권사무소의 역할은 커져 가고 있다.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인권의 영역, 답답해하는 인권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다가갈 예정이다. 그 방안의 일환으로 뉴미디어의 영역도 개척 중이다. 팟캐스트를 통한 세계인권선언문과 주요 결정례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 제작된 콘텐츠는 유튜브의 자료 화면을 삽입해 활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을 더 열심히 이끌면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대구의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인권 특강을 하러 대구에 오는 분들의 공통된 반응 역시 ‘뜨겁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구의 인권감수성은 조금씩 성장 중이다.

 

 

박민경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