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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 사회학자 전상진

줌인1 <특집> [2019.09] 시대 차이를 이해하고, 세대 화합으로
가는 길 - 사회학자 전상진

글 김희정 / 사진 봉재석

 

사회학자들은 그때그때의 사회 현상을 연구한다. 그리고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학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일들은 거의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곧 국민들이 혼란스럽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지럽다. 혼돈의 카오스다. 소용돌이 안에 있지만, 정작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회전 중인지, 소용돌이를 보며 어지러운 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직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대체 왜 혼란스러운지, 어떻게 복잡한 건지, 해결은 될는지. 세대 연구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세대 문제를 진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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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이야기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상진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한국문화사회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항상 수업과 집필, 연구의 방향을 모두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단독 저서로는 『음모론의 시대』, 『세대 게임』 등이 있습니다.

 

인권 ‘세대’를 연구하게 된 계기 및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전상진 제 박사학위 논문은 교육 불평등과 관련한 것입니다. 제가 유학한 독일 교육사회학의 특성은 교육을 세대의 문제와 연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연스레 세대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세대는 두 가지 모순적 현상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전통의 보존과 혁신 및 변화의 계기입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옛 것을 보전해서 후세에게 전하는 것(세대 계승)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발(세대 단절)을 동시에 행해야 하죠.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교육과 세대의 성격이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인권 ‘세대’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구분 짓나요?

전상진 앞서 말한 바처럼 ‘세대’라는 단어에는 ‘전통 계승’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내포돼 있습니다. 세대(generation)에서 '세(世)'는 1세·2세와 같이 시간적 흐름인 계승을 의미하고, ‘대(代)’는 이전 세(世)와 구별되는 바로 그 시대를 뜻합니다. 결국 전통적인 것의 계승과 그에 엇나가는 혁신을 동시에 담고 있죠. 세대의 개념 또한 굉장히 다양합니다. 먼저 흔히 알고 있는 연령집단 세대라 함은 청년·장년·중년·노년층을 말합니다. 동년배·정체성 세대란 86 세대와 산업화 세대 등으로 서로 다른 우리 의식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으며, 그밖에 역할 세대와 시대를 구분하는 세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세대의 개념을 하나로 생각하죠. 누구는 연령을 중심으로, 누구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얘기합니다. 그래서 세대와 관련한 토론이 ‘이견을 주고받아 서로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저마다의 독백을 함께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 많은 사람이 ‘세대갈등’에 대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한 마찰 또는 의견 차이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대갈등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전상진 보통 세대 문제의 발생 단계는 ‘차이-갈등-전쟁’ 순입니다. 이중 세대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며, 세대전쟁은 전쟁이니까 적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극단적인 단계를 의미하는데 실제론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죽이는 일이 있긴 하지만, 사회적인 수준에서 부모들과 자녀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은 없다는 거죠. 물론 언제나 있는 세대차이가 때론 세대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다툼이므로 세대갈등은 서로 다른 세대들이 희소한 자원을 두고 서로 싸운다는 의미죠.
또한 세대갈등은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세대들이 다툼을 벌이는 대상에 따라 세대갈등의 유형을 구분해야 합니다. 돈이나 가치, 규범 또는 정치적 문제에 따라 갈등의 양상이 나름의 모습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조직 내에서 선후배가 승급이나 회식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일 때 갈등의 유형을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할 순 없겠죠. 그 안엔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다양한 문제들이 각각 내포돼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쉽게 말하는 세대갈등은 실상 아주 섬세하고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문제라는 거죠.

 

인권 그렇다면 한국은 왜 현시점에서 ‘세대’를 관심 있게 다루는 것일까요? 또 한국의 세대갈등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전상진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세대갈등에 더 민감합니다. 빠른 변화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연령질서의 장악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싸움이 났을 때 “너 몇 살이야?” 하며 나이를 따져 묻는 풍경을 쉽게 접하곤 합니다.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나이를 묻는 건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찾는 방법 중 하나죠. 정리하면, 한국에서 세대가 이슈인 이유는 한국의 고유한 연령질서와 빠른 변화 때문입니다.

 

인권 다양한 분야에서 세대갈등이 나타나는데요. 특히 중요한 사안이 있다면 짚어주세요.

전상진 저는 갈등보다 소외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청년층의 소외’를 중시하죠.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노년층의 소외’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관심이 청년층에 집중된 탓에 노년층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모자란 상황이에요. 국내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2위와의 차이가 2배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국력이 11위인 나라에서 그렇게 높은 노인 자살의 원인이 빈곤입니다. 노인들은 우리와 한 사회 안에 있지만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낍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인을 ‘사라져가는 사람’, ‘내일이면 없어질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청년층에 관심을 둬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외된 노인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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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교수님께서는 『세대 게임』에서 정치와 세대갈등의 연관성을 말씀하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요약 설명 부탁드려요.

전상진 두 개념으로 요약하죠. ‘세대 게임’ 또는 ‘세대 프레임’이라 지칭하는 말은 정치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개념입니다. 국민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는 정치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국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기보다는 더 큰 정치권력과 더 많은 재화 획득을 목적으로 정치가 전개됩니다. 그럴 때 세대를 활용하는 거죠. 세대와 별 관련 없는 사회 문제를 세대 문제로 번역해서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사회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들끼리 싸우도록 부추긴다는 겁니다. 이게 ‘세대 게임’ 또는 ‘세대 프레임’의 핵심입니다. 세대 프레임의 악영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 둘째, 국민들을 선동해 세대끼리 싸우게 만든다는 것. 셋째, 국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는 정치 계급이 계속 번창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인권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세대갈등은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전상진 오늘날 우리는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전에는 나름 강고한 연령질서(연령 세대)나 역할질서(역할 세대, 예컨대 부모-자녀, 선배-후배, 교사-학생)가 중심을 잡아줬어요. 그런데 이게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의 방식으로 부모나 선배나 교사가 자녀나 후배나 학생을 대하면 ‘꼰대’라고 비난합니다. 반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자녀, 후배, 학생이 부모, 선배, 교사를 대하면 ‘싸가지’라고 비난합니다. 예전의 질서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질서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바로 이것이 현 상태를 표현한다고 봐요. 또 사람들은 혼란을 쉽게 갈등이라 말합니다. 사실 혼란과 갈등은 구별되는 사안인데 말이죠. 요약하면 일상에서 체감하는 혼란을 그냥 세대갈등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복합적인 곳(세대·젠더·성적 지향·계층)에서 비롯한 혼란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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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우리 사회의 세대갈등이 심각한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전상진 대한민국은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바뀐 우리의 변화를 생각해보세요. 과거 어느 연예인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혔을 때와 비교해 지금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이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나이나 세대에 따라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가 다르죠. 그런데 그걸 무조건 세대갈등이라고 하면 안 돼요. 갈등이 차이에서 비롯하지만, 모든 차이가 갈등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언론과 방송은 그런 당연한 차이를 갈등으로 극화하는 데 전념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까요. 우리는 미디어의 과장에 놀아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세대갈등을 무조건 나쁘다고 여기는 자세부터 옳은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인권 그럼, 세대갈등을 나쁘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전상진 세대갈등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갈등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차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 차이가 없다면 사회가 변화를 만들 수 없겠죠. 그러니까 변화는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으로 완성된다는 겁니다. 만약 부모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자녀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건 곧 부모 세대의 감각으로 키워진 자녀 세대가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지는 겁니다. 조직에서 선배 세대가 생각하는 대로 후배 세대가 만들어진다면 또 어떨지요.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교사 세대가 원하는 대로 학생 세대가 성장한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정말 평화로울 거예요. 도대체 서로 싸울 일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덕성이나 품성을 새로운 세대들이 지닐 수 없으니까요. 사회 전체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겁니다. 모든 아이가 애늙은이로, 모든 후배가 노회한 직장인으로, 모든 학생이 호기심 없는 시험 기계로 자라난다는 거죠. 그렇지만 부모가 요구하는 바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자녀, 선배를 무조건 무시하는 후배, 교사를 조롱하는 학생들, 이것도 문제죠. 다시금 세대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세대는 계승과 혁신을 동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갈등은 구세대의 염원과 신세대의 요구가 조정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서로 간에 조정이 잘 돼야 가족, 조직,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죠. 요컨대 세대갈등은 나쁘거나 좋은 게 아니라 잘 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권 세대갈등을 줄이고 세대통합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더불어 세대갈등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정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상진 저는 ‘갈등을 줄이고 통합해야 한다’는 표준화된 질문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런 표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있습니다. ‘세대가 서로 관계를 맺는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각 방법이 일상용어와 다르게 쓰이므로 따옴표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동화’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합은 거의 동화에 가깝습니다. 후배 세대가 선배 세대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것이죠. 둘째, ‘통합’입니다. 누가 주가 될지 서로 갈등을 벌입니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할 건 타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셋째, ‘분리’입니다. 홍대 거리에는 청년들이 있고, 탑골공원에는 노인들이 있어요.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다는 관점이죠. 마지막은 냉소입니다. 이 부분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예요. 겉모습은 동화된 것 같으나 속내는 분리된 모습이죠. 바로 냉소주의이자 내적 망명이에요. 학교나 조직 생활 모두 마찬가지예요. 학교에 가서 잠을 자는 학생들이나 매일 아침 출근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 직장인 모두 냉소적인 타협점을 찾은 거죠.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세대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라 ‘적절한 세대 관계를 고려하는 자세’로 수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냉소주의’는 무조건 피하는 게 좋습니다. 나머지 방법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화’는 갈등이 없지만 혁신이나 변화가 억제되고, ‘통합’은 혁신을 가져오지만 갈등을 키울 수 있습니다. ‘분리’는 평화롭지만 단절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단점을 고려하면서 나름의 상황에 어울리는 세대 관계를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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