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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2 <특집> [2019.09] 세대차이와 조직 문화

글 김용섭

 

요즘 많은 기업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공부하고, 세대차이와 세대갈등을 민감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조직에는 서로 다른 세대가 늘 함께 일해왔고, 세대차이로 인한 상하관계 문제도 항상 존재했었다. 그런데 왜 요즘 갑자기 세대 이슈를 중요하게 바라보게 됐을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세대차이의 본질에 어떤 배경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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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세대갈등은 왜 이슈가 됐나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보면 과거 X세대도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만큼 과감하고 놀라운 변화 세대였는데, 왜 X세대가 직장에 들어갔을 땐 기성세대와 갈등이 없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직장 내 세대갈등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논점이다. 우리는 세대가 달라서 갈등을 빚는다고 오해를 하는데, 사실 세대보다는 시대가 달라서가 더 맞다. X세대가 직장에 갔던 시대엔 평생직장이 남아있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당연히 여겼던 평생직장을 X세대도 동조하고 영향을 받았다. 평생직장이 유효하던 시대의 조직문화는 후배가 선배에게 져줬고, 선배의 말은 부당하더라도 무조건 따랐다. 오랫동안 계속 봐야 할 선후배 관계다 보니 위계질서가 확실했다. 꼰대를 꼰대라고 부르지 못했고, 꼰대짓이 불편해도 참고 감수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평생직장이 사라졌다. X세대에겐 평생직장 시대의 흔적이 잔상으로 남아있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머릿속엔 평생직장이란 말 자체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들은 여러 직장, 여러 직업을 바꿔가는 게 당연한 시대를 맞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직장에 들어와서 최대한 빨리 많은 것을 배운 후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한다. 여기서 커리어를 쌓았으니 다른 데서 또 커리어를 쌓고, 그렇게 실력을 키워서 스스로의 경쟁력을 계속 만들어가는 걸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 내 위계 구조 중심의 조직 문화와 일방적 상하관계를 받아들이긴 어렵다. 개인주의적 사고가 선배 세대보다 더 강하게 자리 잡은 이들은 과거의 관성이라도 문제 있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저항한다. 선배 입장에선 이를 불편하게 여긴다. 선배들은 과거의 방식이 안 통하니, 후배인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통제하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왜 회식문화를 기피할까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이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회식 문화다. 술 마시면서 단합과 소통을 한다는 게 기성세대가 회식에 대해 가진 생각일지 몰라도, 밀레니얼 세대는 평소 사무실에서도 안 되던 소통을 술자리에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못마땅하다. 거기에 술 취한 상사의 잔소리나 술 마시기 강권 등도 폭력적이라 여긴다. 팀장인 기성세대 직장인은 ‘혼냈으니 술 사주며 풀어줘야지’ 혹은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회식으로 풀어야지’의 태도로 회식을 바라본다. 그에 반해 팀원인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은 ‘혼난 것도 힘든데 회식까지 하면서 더 힘들게 하네’, ‘일하느라 고생했다면서 일찍 퇴근시켜주진 못할망정 술로 괴롭히네’라는 상반된 태도를 갖는다.
분명 기성세대 팀장의 의도는 순수하다. 격려하고 싶고 치하하고 싶은 의도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방법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고기 먹고 술 먹는 회식이 밀레니얼 세대에겐 즐겁지 않다. 모두가 함께 일률적으로 술 마시는 문화도 불편하고, 술을 강권하는 것도 불편하다. 술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내놓고 친해진다는 것도 기성세대 방식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술 없이도 즐겁게 놀 줄 안다. 맨 정신에도 자신의 속마음을 적극 표현한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의사소통에 능하다. 굳이 술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고, 오히려 술 마시고 진심인 양 주정 부리는 걸 싫어하기도 한다. 솔직히 우리의 회식문화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자 군대 문화의 일부다. 상하관계 속에서 술로 질서를 잡는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구시대적이다. 조직의 단합과 소통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걸 술 먹는 회식으로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를 바꿀 순 없을까? 회식비는 회사의 비용이다. 즉 회식의 효과가 없다면 굳이 회식비를 줄 필요가 없다. 회사가 회식비를 없애기 전에 직장인들로선 효과가 있을 단합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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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보다 시대차이가 더 맞다

당신의 여자 후배가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까? 그동안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던가? 외모에 대한 칭찬을 통해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외모에 대한 말은 칭찬이든 비판이든 모두 하면 안 된다. 후배는 당신에게 외모 평가받으려고 출근한 게 아니다. 그러니 후배가 뭘 입었건, 아무 말 안 하는 게 좋다. 입장 바꿔서 당신이 늘 외모를 평가받고 지적당하면 어떻겠는가? 입장 바꿔보면 절대 하면 안 될 일인 걸 안다. 과거엔 이런 게 문제가 안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당하지 않아서 문제가 안 된 게 아니다. 평생직장이란 굴레와 상하관계가 견고하던 한국식 조직 문화 탓에 부당함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과거에도 문제였고 지금도 문제인 건 마찬가지란 말이다.
우린 그동안 부당함에 관성적으로 길들여져서 부당함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는 조직에 들어오면서 선배들의 부당함을 참아주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가 정의로워서도, 버릇없어서도 아니다. 괴롭히는 선배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롭힘 문화 자체가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다. 갑질이나 성차별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엔 지금보다 더한 괴롭힘과 갑질, 성차별이 있었지만 수면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당하는 자의 괴로움으로 고스란히 남았었다. 개인적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 이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다. 결국 세대차이가 아니라 시대의 차이가 더 맞는 것이다.
꼰대는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게 꼰대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으면 변화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과거에 자신이 누리던 것에만 집착하는 태도가 꼰대를 만든다. 결국 직장의 선배들이 얼마든지 꼰대 탈출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 탓이 제일 비겁하다. 우린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지만, 모두가 2019년을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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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혁신이다

우린 퇴근 앞에 ‘칼’을 붙이고 ‘정시’를 붙여서 ‘칼퇴근’, ‘정시 퇴근’ 같은 말을 쓴다. 정시에 하는 퇴근 자체가 힘드니 앞에서 뭘 갖다 붙여서 그 의미를 강조하는 셈인데, 사실 퇴근은 그냥 퇴근일 뿐이다. 출근과 퇴근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자 보장된 계약이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업들은 평균 연차가 2주일 정도 되지만 실제 휴가를 소진하는 건 평균 1주일 정도에 불과하다. 휴가를 반납하고 일하는 걸 미덕으로 여긴 과거의 조직 문화 탓이다. 만성적 야근도 마찬가지다. 노동 시간이 길고 수시로 야근을 반복한다.
산업적 변화를 통해 기업의 비즈니스 구조가 크게 바뀌었고, 모든 기업이 조직 문화 혁신에 사활을 걸었다. 수평화를 통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이건 조직에서 나이 든 직원을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겠다는 의미이자, 나이와 서열이 아니라 능력 위주의 역할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위계 구조와 역할 구조는 서로 다르다. 위계 구조는 직급이 높으면 더 힘이 세고 발언권도 크지만, 역할 구조에선 직급이 낮아도 역할 전문성을 인정하므로 그의 발언권이 존중된다. 예를 들어, 디자인 시안이 디자인팀에서 최종 결정돼 임원에게 보고되는 과정에서 디자인 비전문가인 임원이 자기 취향을 이유로 디자인 시안을 부정적으로 말하면, 위계 구조에선 그 시안은 폐기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역할 구조에선 비전문가인 임원의 의견은 그냥 의견 중 하나로 여길 뿐이다. 이 차이가 일의 결과에선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위계 구조에선 모든 성과가 최고 상층의 책임자들에게 집중돼 실무는 후배가 했어도 공과는 선배가 가지는 경우가 생기지만, 역할 구조에선 각 역할별 성과를 투명하게 평가한다. 워라밸이나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배경도 결국엔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런 변화가 불편한 사람이 바로 과거 한국식 위계 구조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저항이 일종의 세대갈등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과거의 조직 문화에서 지킬 건 지켜야 하지만 버릴 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서로 다른 세대인데 세대차이가 있는 게 당연하다. 다만 그 차이가 갈등이 되어선 안 된다. 조직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 맞붙어 싸우는 대결 구도가 아니다. 모든 조직 구성원이 함께 조직이 가진 문제와 싸우는 것이다. 사람 대 사람 또는 세대 대 세대가 아니라, 관성과 부당함에 대해 저항하고 싸우는 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김용섭 님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이며,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대한민국 세대 분석 보고서』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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