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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동(1877~1910)

사람 이음 [2019.09] 박에스더로 불린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1877~1910)

글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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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아카이브

 

여성이 남의사에게 환부를 보이기 어려웠던 시절,
한국 최초의 여의사로서 명성을 알린 김점동.
그는 선교사들이 세운 한국 최초의 여학교 이화학당의 네 번째 입학생이었다.
1887년에 입학하고 1890년에 졸업한 후,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의사 ‘로제타 셔우드’의 통역을 맡아 일하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김점동은 1893년에 청년 박유산과 결혼한 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189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교에 입학해 의사 공부를 이어가던 중
남편과 딸을 잃는 좌절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김점동은 1900년에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자 한국인으로는 서재필에 이어
두 번째 의사가 됐다. 곧장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보구여관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겨울철 당나귀 썰매를 타고 환자를 찾아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김점동.
여성의 사회 진출을 곱지 않게 보던 당시에도 사람들은 그의 실력과 성실함에 감탄했다.
꾸준히 황해도·평안도 지역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으며,
한 해 평균 3천2백 명의 환자를 돌봤다고 전해진다.

 

"유학 생활은 너무 혹독했습니다.
폐렴으로 딸을 잃었고,
남편마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의사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포기하면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 걸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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