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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지킴이 강제윤

삶을 말하다 [2019.10] 섬, 살고 지키고 사랑하다
섬 지킴이 강제윤

글 김혜윤 / 사진제공 강제윤

 

섬환경운동가, 시인이면서 섬을 기록하는 사진가, 섬 연구소 소장 등은 강제윤의 이름 뒤에 따라오는 다양한 직함이다. 섬과 섬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는 그는 지금도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는 자연을 지키고 사라져가는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여러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섬 주민들의 권리를 신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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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일이 많아진 섬사람

강제윤은 전남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살 때 육지로 이주했다가 20년이 지나 우연히 보길도로 돌아온 그는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에 눈을 뜨고 섬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찻집을 운영하고 수필을 쓰며 섬에 머물던 그가 2003년 맞닥뜨린 것은 밀어 붙이기식 댐 증축 공사였다. 물 부족 문제가 이유였다. 보길도 댐은 누수율이 높아 증축을 한다 해도 실질적인 이득이 없었으며, 오히려 섬의 자연과 윤선도 유적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보길도 주민들은 공사를 반대하며 대안을 찾자고 제안했으나 완도군청은 재검토 없이 증축을 추진했다. 자신의 보금자리인 섬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강제윤은 33일간 단식을 벌여 댐 공사를 막았고, 결국 댐의 노후 관로를 교체하는 것으로 보길도의 물 부족 문제는 해결됐다. 그가 처음으로 섬을 지켜낸 순간이었다.
강제윤은 “섬을 알면 알수록 싸울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보길도 외에 수많은 섬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난개발로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소외된 섬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관매도 주민들이 직접 지은 초등학교가 대명그룹에 매각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관매도로 향했다. 진도군청이 폐교를 섬 홍보관으로 활용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다. 콘도가 들어설 경우 대기업이 관광수익을 독식하고 섬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한 강제윤은 주민들과 함께 군청에 항의해 관매도 학교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백령도의 천연기념물 사곶해변을 지키는 데도 앞장섰다. 사곶해변은 전 세계에 단 두 곳뿐인 규조토 백사장이다. 일반적인 해변과는 다르게 부드러우면서도 발이 빠지지 않는 규암 가루로 만들어진 사곶해변은 한때 천연비행장으로 쓰일 정도로 단단했으나 백령도 간척사업으로 인한 오수·폐수 유입으로 물러지고 썩어갔다. 강제윤은 해변을 되돌리기 위해 역간척 캠페인을 추진했다. 이처럼 섬이 지닌 고유한 환경과 토속문화가 개발을 명목으로 유실되는 일이 많았다. 강제윤은 섬에 전승되는 유형·무형의 전통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섬을 살리기 위해 무분별한 토목공사를 강행하기보다 섬 자체가 지닌 문화자원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섬은 더 보탤 것 없이 그 자체로 빼어난 관광자원이에요. 다른 시설들을 섬에 만들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토속음식 하나가 수십억을 들인 시설물보다 섬을 더 잘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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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물도

 

 

섬의 고유한 가치

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강제윤은 섬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섬의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섬을 걷겠다고 다짐하고 전국 방방곡곡 400여 개의 섬을 탐방했다. ‘오갈 데 없는 날에도 섬으로 갔다.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그 수많은 생애의 날에 나는 섬으로 갔다’는 자신의 시에 적힌 대로 그는 매일 다른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섬의 가치와 역사, 섬 주민들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강제윤은 섬과 섬사람에 대해 퍼져 있는 부정적인 인식에 특히 마음 아파했다. 섬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주제로 한 영화, 자극적이고 편향된 사건 보도 등 미디어의 영향으로 ‘섬은 폐쇄적이고 두려운 곳’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섬들이 고립되는 것을 막고 싶었기에 『섬 택리지』, 『섬을 걷다』, 『전라도 섬맛 기행』 등 섬 여행의 견문을 담은 책을 써내 섬의 고유한 문화와 섬사람들의 매력을 알렸다. 지난 8월에는 전시회 <당신에게 섬 展>를 열어 직접 찍은 섬 사진 50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방문했던 섬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섬은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 공간입니다. 제 기록들이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년 전 그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섬을 알리기 위해 인문학습원에서 ‘섬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매월 1회씩, 연간 3,000여 명과 함께 섬에서 먹고 자면서 그 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체험한다. 지속적으로 섬 학교를 진행하자 참여한 사람들의 섬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는 것조차 불안해하던 사람이 섬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바뀌었다. 강제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가서 섬을 체험해야 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변할 거라고 말했다.
“일단 섬에 가봐야 해요. 직접 가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의 부모님, 형제자매 같은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섬을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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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 염소(좌), 소안도(우)

 

 

우리는 모두 섬에 사는 사람들

그는 섬에 대한 고정관념과 무관심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섬들은 삶의 터전이자 국제 해양도시였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공도(空島) 정책’1)으로 섬은 점차 버려진 공간이 됐다. 대한민국에는 약 4,000여 개의 섬이 있지만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70개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교통·교육·의료 등의 인프라가 부족해 청년층은 떠나고 유입인구도 늘지 않아 섬은 점점 고령화됐다. 그러다 보니 섬사람들은 육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누리는 기본권들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국가에서도 섬 실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섬 주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나 전문기관도 부재한다.
강제윤은 국가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섬 문제로 ‘의료시설 부족’과 ‘교통 불편’을 꼽았다. 섬은 의료시설이 낙후돼 있어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렵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라도 제때에 치료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또한 섬의 교통을 위해 정부에서는 민간 선박회사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여객선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 운항 선사들이 경비 절감을 앞세워 배를 띄우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안전이 우려되는 노후선 운영 등 문제가 많은데도 운임은 다른 대중교통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기까지 하다.
“흑산도, 거문도, 백령도, 울릉도 같은 주요 섬들에는 응급 의료센터가 만들어져야 해요. 섬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여객선 공영제’2) 도입이 필요합니다.”
그간의 섬 정책들은 대부분 연륙교, 연도교,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편중된 사업들이었다. 섬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도 거의 없었고, 섬 주민들의 참여 창구도 부재했다. 수많은 예산이 투입됐지만 각 부처들은 서로 중복된 사업을 추진하거나 이미 타 부처에서 실패한 사업을 답습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섬 정책은 섬을 살리지 못했다. 강제윤은 부처 간 사업을 조율하고 장기적인 섬 정책을 설계할 ‘섬 정책 컨트롤타워’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지난해 ‘제1회 한국 지속 가능 섬 포럼’을 개최해 섬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과 지속 가능한 섬 발전을 논의했다. 이 포럼에는 행정안전부 간부들과 국회의원, 여서도·관매도·초도·박지도·소안도·문갑도 등 섬 주민 및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무의미한 토목사업 말고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그는 주로 섬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섬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섬은 잘 모르는 공간,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강제윤은 섬 문제에 거리감을 느끼지 말고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섬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양 위에서 누구는 큰 섬에 살고 누구는 작은 섬에 살 뿐이죠. 오랜 세월 섬을 지켜온 섬 주민들에게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섬은 존재 자체로 훌륭한 문화유산 및 관광자원이며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다. 섬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윤의 염원대로 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실행돼 섬이 겪는 차별과 소외가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1) 조선 태종 때부터 시행된 섬 거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정책
2) 공공성이 강조되는 분야를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제도. 철도와 지하철 등이 이 방식으로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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