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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조커〉

문화 이음 [2019.11] 방치와 멸시가 조커를 만든다
영화〈조커〉

글 하재근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가 국내 개봉 2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조커가 희대의 악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조커가 멸시받고 조롱받는 모습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조커>는 존중이 아닌 멸시가 만연한 현대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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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과 흥행 모두 사로잡은 조커 신드롬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한 영화 <조커>. 하지만 전문가들 칭찬 일색인 이 영화는 심지어 관객들에게 호평까지 받고 있다. 이것이 이례적인 것은 <조커>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럽 유명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를 관객들은 기피한다. 한국 영화 해외수상작이라면 자부심 때문에 관객이 모여들겠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해외 영화에 대해 우리 관객은 매우 무관심하다. 재미가 없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영화에 평점을 높게 주는데, 그러면 누리꾼들은 ‘전문가 추천작은 믿고 거른다’며 평점도 낮게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선 놀랍게도 전문가 평점보다 일반인 평점이 더 높게 나타난다.
영화가 오락성이 뛰어나서 호평이 이어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작품은 무겁고 음울한 드라마다. 이렇다 할 액션 장면도 없다. 외계 괴물, 초능력 영웅도 없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개봉 30일도 지나지 않아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조커>는 북미에서만 2억 7793만 달러, 전세계 9억 5203만 달러를 넘어서 이미 제작비의 20배에 가까운 수익을 거뒀다.
영화의 재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어떤 콘텐츠가 오락성 여부와 상관없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사회현상이다. 그 콘텐츠의 어떤 점이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특이한 흥행이 나타난다. <조커> 흥행은 바로 사회적 신드롬인 것이다. 촬영지인 뉴욕 브롱크스 웨스트 167번가의 계단은 연일 관광객들로 붐비며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등 연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으로 <조커>의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컸고, 미국에선 모방 범죄 예측 때문에 ‘조커’ 상영관 인근에 경찰 경계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남부 일부 극장가에선 총기 위협 첩보로 극장이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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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어떻게 조커가 되었나

<조커>는 한 인물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조커는 희대의 악당 캐릭터로 고담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무법자이며 배트맨의 숙적이다. <조커>에서 고담시는 아직 혼란에 빠지지 않았고 배트맨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차 대악당 조커가 될 사람도 아서 플렉이라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아서 플렉이 사회관계 속에서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고담시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병들어간다. 약자를 보살피는 사회안전망이 극히 미비한 터에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있던 복지예산까지 삭감된다. 아서 플렉은 뇌손상 때문에 아무 때나 웃음을 터뜨리는 질환을 앓는다. 그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정신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복지지원을 통해 심리상담과 정신과 약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복지예산 삭감으로 상담소가 폐쇄되고 아서 플렉은 방치되고 만다.
또 고담시에선 약자를 멸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었다. 빈곤층은 안전망 없이 방치되는데 부자는 TV에 나와 부를 과시하며 정치권력까지 잡으려 했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 부를 이룩했다며, 약자가 빈곤해진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라고 조롱했다. 약자의 빈곤이 약자 자신의 탓, 자업자득이므로 그들을 구제할 복지지원 예산 같은 것은 제안하지 않았다. 이렇게 약자를 구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감세와 작은 정부로 이어진다. 작은 정부 체제에서 부자는 사설 경비원이 지키는 부자들만의 특별한 영역 속에서 안전을 누리지만,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공영역은 관리 부재 속에 방치된다. 그리하여 우범지대가 된 지하철에서 아서 플렉은 우연히 첫 번째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아서 플렉은 곳곳에서 멸시당했다. 거리에서 광대 아르바이트를 하다 10대들에게 혐오 폭력을 당하는데, 이렇게 빈곤한 약자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현상은 양극화와 약자에 대한 멸시가 나타나는 사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지하철에서의 첫 번째 범죄도, 곳곳에서 멸시와 배제를 당해 고립된 아서 플렉이 직업까지 잃은 상황에서 금융사 화이트칼라들에게 조롱과 공격을 당하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고담시의 약자들은 금융사 부자가 당했다며 열광한다. 고무된 아서 플렉은 생방송 TV쇼에 출연해 자신을 조롱했던 스타 MC를 살해한다. 이에 자극받아 고담시는 폭동이 터져 무정부상태가 되고 아서 플렉은 마침내 폭동세력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이런 이야기에 폭발적인 호응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아서 플렉의 상황에 감정이입하면서, 그가 조커가 된 것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아서 플렉이 막판에 총을 들고 거칠 것 없이 자신감을 표출하며 자신을 멸시한 사회에 복수하는 모습이, 후련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이렇게 사회부적응자인 아서 플렉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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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뉴욕 같은 느낌이다. 1980년대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던 시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 작은 정부를 주창하며 복지예산을 삭감했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빈부격차가 줄어들었지만, 이때부터 다시 크게 벌어졌다. 주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거나 떨려난 약자들은 게으른 ‘루저’로 인식돼 멸시당하고 방치됐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이식됐다.
사람들 마음속엔 소외감과 분노가 쌓였다. 계속 문제를 키워가던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세계 곳곳에서 양극화 시정을 요구하는 폭동이 터지고 미국에서도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영화 속 폭동은 바로 이 양극화 폭동을 떠올리게 한다. 조커의 첫 번째 범죄 대상이 금융사 직원인 것도 ‘월가를 점령하라’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후 경기가 나아지면서 상황이 안정되긴 했지만 양극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된 건 아니다. 총량적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성장의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소외감을 키워왔다. 특히 젊은이들이 미래 희망을 잃고 ‘소확행’이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특권반칙에 민감하고 공정을 요구한다. 갑이 을에게 보내는 멸시에 분노한다. 그런 속에서 ‘루저’ 정서를 키워왔는데 바로 그것이 ‘조커’ 속 루저 폭발에 공명한 것이다. 영화 <조커>는 양극화와 약자를 배제, 멸시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멸시당한 약자는 폭발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도 멸시당한 반지하 주민이 폭발하는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영화가 잇따라 주목받고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징후다.
인간관이 왜곡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위험해진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방치, 멸시당해선 안 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안전망 위에서, 존엄한 목적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즉 보편적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돈과 권력이 목적이 되어 인간 위에 군림하며 빈자의 인권이 짓밟히고 약자가 방치될 때, 존중이 아닌 멸시가 만연할 때, 약자는 불온해지고 사회는 붕괴 직전에 놓인다. <조커>는 바로 그런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폭동 이후 고담시는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그 와중에 부자 부모를 잃은 상속자는 장차 배트맨이 되어 범죄자 처단에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처단해도 사회 안전성은 회복되지 않는다. 배트맨이 첨단 무기 구축에 힘쓸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같이 존중받고 행복권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범죄는 저절로 물러갔을 것이다. 양극화, 멸시, 방치는 놔두고 범죄와의 전쟁만 수행한 것이 고담시를 폭력도시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조커>가 던지는 물음이다.

 

 

하재근 님은 영화 칼럼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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