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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 1937~)

인권챌린지 [2020.02]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배우이자 인권운동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 1937~)

글 김혜윤

 

강렬하고 아름다운 연기로 영화계의 정점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부르짖으며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나갔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그는 배우로, 영화감독으로, 인권운동가로, 정치인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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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두 해 전인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연극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21살의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그는 <욕망(1966)>으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모건(1966)>에서 신비로운 여인을 연기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된 레드그레이브는 1960년대 말부터 뚜렷한 정치관을 드러내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해 미국 정부와 척을 지기도 했다. 주류 영화계에서 배역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비주류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맨발의 이사도라(1968)>에서 여성 해방을 외치며 비극적인 삶을 사는 예술가를 연기했고, 22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줄리아(1977)>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나치의 탄압에 저항하며 반파시스트 운동을 하다가 나치 정권에 의해 살해당하는 유대인 투사를 연기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시오니즘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귀를 기울여(1987)>,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영화화한 <댈러웨이 부인(1997)> 등 자신의 철학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를 선호하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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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법으로 인권운동에 힘쓰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20대 때부터 인권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유니세프 친선대사이자 반전주의자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계의 인권 탄압과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에 많은 관심을 뒀다. 러시아군의 체첸 침공에 대항하는 반군으로 활동했던 연극인 아흐메드 자카예프가 2002년 영국에서 체포되자 보석금을 지불하기도 했다. 2004년 그는 영국 최초의 인권정당인 ‘평화진보당’을 창당했다. 인권 옹호만을 목표로 활동하는 당이 등장한다면 인권운동이 더 큰 힘을 얻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터키의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알란 쿠르디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시리아 난민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씨 소로우(2017)>를 만들었다. 난민 인권운동을 꾸준히 해 온 그였지만, 전쟁에 희생된 어린아이의 사진은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살아가는 데 가치가 될 것들을 깊게 생각해야 한다”며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포용하기를 희망했다. 지금도 그는 83세의 나이로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 옹호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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