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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나

여기 사람 있어요 [2020.02] 비정규직의 눈물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나

글 김혜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달리 근로 방식, 근로 시간, 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한다. 정규직에 비하여 임금수준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으며 채용과 해고가 쉽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경제적·신체적·정신적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다. 최근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사건을 짚어보며 비정규직 문제의 현실과 본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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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하청노동자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한 업무가 원청으로부터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에게 주어지면서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현상이다.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하고 성과는 최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주화 구조 안에서 하청업체들은 경쟁할 수밖에 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 업체 직원 김 씨가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19세였던 김 씨는 월급 144만 원을 받으며 휴식시간도 없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그가 근무하던 사업소에서는 9시간 동안 6명의 인원으로 49개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해야 했다. 안전 수칙에 따라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는 작업을 사고 당시 김 씨 혼자 작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고가 단순히 개인 과실이 아닌 근본적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에 벌어졌다는 의견이 확산됐다.
2018년 12월 10일에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전소 운전과 정비를 맡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 24세 김용균 씨가 설비를 점검하다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근무자가 기계에 끼이면 다른 동료가 기계를 멈출 수 있도록 2명이 함께 진행해야 하는 업무를 입사한 지 3개월 차였던 김용균 씨가 혼자 수행했던 것이 밝혀지며 다시 한 번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후에 발의됐다가 기업의 반발로 2년 동안 미뤄졌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이 사고 이후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됐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과 수없이 발생하는 사고 앞에서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죽지만 않게 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109명 중 93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안전사고와 산업재해의 책임까지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는 비정규직의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법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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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와 노동 착취 사이

방송사 PD는 수많은 청년들의 꿈이지만 신입 공채를 진행하는 방송사가 적을뿐더러 경쟁자도 많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취업 준비생들이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방송사에 입사한다. 문제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이 제작을 외주화하면서 방송 노동 환경이 악화돼왔다는 것이다.
2016년 10월 26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CJ E&M 측은 고인의 근무 태만과 사회성 부족이 죽음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다가 6개월 후 유가족들과 ‘이한빛대책위’에 의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평소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 이 PD는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미는,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기 어려웠다”며 방송가의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겼다. 이한빛대책위가 파악한 tvN 드라마 업계 노동 실태에서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 평균 휴일은 주 0.9일이었다. 촬영 현장은 철야와 장시간 노동으로 점철됐으나 적절한 휴게시간이나 장소가 제공되지 않았다. 또한 상당수의 노동자가 수직적 질서 문화와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후로 첫 방송 직전 다수의 계약직 스태프가 일방적으로 해고되기도 했다.
CJB(충북청주방송)에서 14년간 정식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프리랜서로 근무했던 이재학 PD는 2018년 방송사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가 별안간 업무에서 배제됐다. 당시 이 PD의 급여는 프로그램 1회당 연출료 40만 원, 월수입은 많아야 160만 원이었다. 해고나 다름없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이 PD는 그 해 방송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소송 비용까지 떠안게 된 이 PD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2020년 2월 4일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방송 및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억압적인 방송 노동 환경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라며 CJB를 비난했다.
드라마·예능 방송 조연출의 월평균 수입은 약 159만 원, 막내 방송작가의 월평균 수입은 120만 원이다. 불합리한 노동 환경을 당연하게 여겨 온 권위적인 방송계의 분위기 또한 문제다.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지급하거나 정규직 채용 없이 비정규직을 소모품처럼 이용해도 업계의 관행이라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아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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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까지, 이한빛 PD부터 이재학 PD까지. 노동의 끄트머리에서 비정규직의 ‘사회적 타살’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하청노동자, 방송국 조연출자 등 비정규직의 위험 부담과 과노동 뒤에는 노동 환경의 본질적인 구조 문제가 존재한다.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지금도 다양한 활동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김용균법이 시행돼 위험한 작업의 도급이 제한되고 안전·보건 조처 의무가 강화됐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무거워졌다. 하지만 노동건강연대 조사에 의하면 2020년 1월부터 2월까지 산재 사고로 노동자 58명이 사망했고, 그중 대부분이 하청노동자였다. 이미 경제 생태계가 된 외주화된 노동의 위험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기업과 본청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와 가이드라인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출범 이후로 방송노동 현장은 조금이나마 변하고 있다. 방송스태프노조가 부당한 노동을 비판하면, 방송사와 제작사는 문제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노조에 따르면 20시간이 넘어가던 하루 노동시간이 16~18시간으로 줄어든 곳이 많았다. 2020년부터는 드라마 제작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고, 표준인건비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기로 노조와 제작사가 공동 합의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작은 변화가 죽음으로 내몰린 한 걸음을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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