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 > 어떤 날 인권 > 故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강제철거 현장

어떤 날 인권 [2020.03] 故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강제철거 현장

글 조문희 기자(경향신문)

 

사회부 기자에게 종로는 기자회견과 집회의 집결지로 불린다. 온갖 사람이 전국 각지에서 이곳에 모인다. 저마다 한 구역씩 차지하고 억울한 사연을 구호로 외친다. 거리의 외침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다. 민원, 고소고발, 재판 등 공식 절차에서 해소되지 못한 질문들이 거리로 나온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지나며 자신의 얘기를 듣길 원한다. 광화문 광장, 청와대 분수대, 대한문 앞은 최적의 장소다.

 

1

사진 김창길

 

다수를 위해 무너진 소수의 인권

고(故) 문중원 기수의 유족도 종로에 있었다. 그들은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천막을 치고 농성했다. 나는 문 기수 유족의 마크맨이었다. 마크맨은 누군가를 전담해 취재하는 기자를 뜻하는 말이다. 글 쓰며 찾아보니 문 기수, 유족에 대해 작성한 기사가 10건쯤 된다.
하고많은 사연 중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건 그가 남긴 유서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내 자신의 숙소에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가족과 동료에게 남긴 세 장의 유서에서 기수 시절 부정 경마를 주문받았다고 했다. 견디지 못해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부당한 이유로 4년 동안 마방을 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노조를 통해 알아본 결과 해당 경마장의 자살 사망자는 문 기수 포함 7명이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유족은 장례를 미루고 시신을 서울로 운구했다. 더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알길 바랐다. 종로에 추모분향소와 천막을 치고 두 달 이상 버티며 겨울을 났다.
한파가 몰아친 날 과천 마사회 본사에서 청와대까지 20km 길을 기어서 왔다. 청와대 앞에선 108배를 했다. 매일 고인의 관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었다. 기자회견 하며 몸을 떨었지만 날이 풀릴까 외려 걱정했다. 가족을 살릴 수도, 장례를 치를 수도 없어 좌불안석했다. 천막만이 몸을 누일 유일한 공간이었다.
지난 2월 27일, 그런 천막이 무너졌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할 때다. 종로구청과 서울시가 천막을 강제철거했다. 오전 7시 20분쯤 천막 앞에 공무원 100명, 용역업체 직원 200명 규모의 철거반이 모였다. 9시 40분쯤 철거가 끝났다. 이유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였다. 철거 당일 구청 관계자는 “야외천막은 위생관리가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천막 바닥이 박살 나 철거반의 손에 옮겨졌다. 일부 잔해가 아내 오은주 씨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오 씨는 천막 폐허 옆 운구차로 갔다. 여전히 남편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그는 본네트와 유리를 어루만지며 소리 내 울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하다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장에 대기하던 의료진은 인도 위 오 씨에게 최근 해외여행 이력을 묻고 발열 검사를 했다.
현장 기자 입장에서 납득이 잘 안 가는 철거였다. 형평에 어긋나 보였다. 불과 이틀 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200여 명의 신도가 모인 예배행사와 대비됐다. 천막이 마련된 곳은 정부서울청사 인근 공터였다. 인도와 차도에서 외따로 떨어졌다. 세종대로와 중앙지하차도가 테두리를 이뤘다. 도심의 섬이었다.
철거 과정은 폭력적이기도 했다. 철거 당일 새벽 유족과 대책위가 천막 주변에 둘러앉았다. 기다란 흰 천으로 서로의 몸을 단단히 이었다. 철거반의 진입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나 철거반은 숫자로 밀어붙이고 연결이 느슨해지면 잡아 뜯었다. 활동가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빈 공간을 파고들어 천막 골조를 해체했다. 활동가가 달려들면 이따금 욕설했다. 천막 안 유족이 “안에 사람이 있다”고 외쳤지만 아랑곳 않았다. 천막 지붕이 무너졌다. 유족은 도망치듯 내쫓겼다.

 

 

2

사진 조문희

 

100일만의 장례식

대책위는 철거 후 성명을 내고 “유족과 대책위는 희망버스 집회를 취소하기도 하며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책에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했다”고 했다. 이들은 혹여 인근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올까 걱정했다. ‘감염병이 유행인데 모여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에 역풍을 맞지 않으려 신경 썼다. 철거 후 유족에게서 “한이 생기고 분통이 터진다”는 말이 나왔다.
유족은 다시 천막을 세웠다가 이틀 만에 자진 철거했다. 지난 3월 6일 한국마사회와 합의에 도달하면서다. 문 기수의 장례식도 다음날 치러졌다. 사망 100일만의 일이었다. 합의서에는 마사회가 사망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부산·경남 경마시스템의 현황 등에 대한 연구용역 사업을 3개월 이내에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 기수 사망 사고의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형사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중징계 한다는 약속도 들어갔다. 뒤집어 말하면 문 기수 사망 원인과 책임을 이제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시작’의 약속만으로도 유족에겐 천막을 치울 용의가 있었다는 의미다.
봄, 정부서울청사 인근 거리에 사람들이 오간다. 천막 자리는 다시 공터가 됐다. 이곳에 문중원이 있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사람이다. 유족은 왜 천막을 지켜야 했나.

 

 

3

사진 이상훈

 

 

조문희 기자는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에서 취재를 하고 글을 씁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