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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발전의 역사입니다

인권위가 말한다 [2020.04] 우리 근현대사는
인권 발전의 역사입니다

글 권혁장(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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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발간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0년간의 인권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발간을 기획했다. 인권을 빼놓고는 역사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격한 논쟁과 사회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건을 현재의 사회에서 이념적 가치관과 정치적 이해에 따라 바라보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4·3, 5·18, 세월호, 촛불항쟁 등이 그러하다. 근현대사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어떨까? 인권 근현대사 기획의 문제의식의 시작이다. 우리의 역사가 인권 발전의 역사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인권은 국가와 사회의 기본 가치이자 실현해야할 가치임을 새롭게 새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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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응전의 기록

아널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고 했다. 역사를 퇴보시키는 도전에 맞서 정당하게 저항하고 의롭게 투쟁하는 응전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인권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근현대사에서 인권이 등장하게 되었던 ‘맥락과 조건’은 무엇인가? 인권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해방 이후 분단된 국가라는 조건, 한국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그것의 영구적 후유증이라는 조건 하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독재에 의한 민주주의의 억압이라는 조건 하에서 인권유린의 실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본격 등장했다. 또한 압축 성장 시기에 발생한 경제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능동적 인권운동에 의해 확장되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강령은 일제의 폭압과 경제적 수탈, 사회적 차별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고양된 정치의식의 반영이었다. 또한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과 인권실현을 위한 민족운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이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임시헌장과 강령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의 수준에 서 있던 화려한 기본권조항들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였고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은 구두선에 머물렀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노력과 희생의 결과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고 기본권은 점차 신장되었다. 우리 헌법의 기본권조항에서는 인권침해의 아픈 역사에 대한 반작용이 발견된다.
1990년대 이후 인권의 의제는 전문화·다변화됐다. 대표적으로 여성인권을 들 수 있다. 여성의 권리를 인권으로 규정하고 국제인권규범의 틀 안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은 1990년대에 정점에 이른 국제적 여성운동의 연대와 노력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젠더 관점에서 인권 개념을 성찰하는 작업은 단지 지금까지 배제되어 온 여성의 특수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권 담론이 바탕하고 있는 보편주의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성찰할 수 있는 매우 유효한 관점을 제공한다. 여성의 시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인권 개념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제기되었는지, 제도 안에서 여성인권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논점과 한계가 무엇인지, 법적 변화만으로 인권은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성찰적 질문을 통해 인권 개념을 더욱 확장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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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나아가야 할 길

우리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다. 저항은 예외적 수단이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다운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일상적 방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은 저항의 유산이고, 그 저항이 인권운동이다. 인권운동은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억압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그 저항의 의제를 사회 전체의 공적 약속으로 만들어 ‘권리화’ 한 후, 드러나지 않는 고통에 이름을 붙여 공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고유한 개인의 ‘자기에 대한 자유’의 가치를 강화하고 인간 존엄성 존중을 궁극적 목적으로 여기는 정치의 추구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인권의 중요한 전환점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지칭되는 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후세 인권 연구가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점을 주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생산 자동화와 지능화에 따른 대량실업 및 노동조건 악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짐으로 발생하는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 자본과 기술에 대한 인간의 종속과 존엄성 위협 등은 4차 산업혁명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 예견된다. 신기술과 인권에 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시급하다.
이상 대한민국 인권 역사의 일부를 몇몇 집필자의 글을 빌려 대략 요약하였다.1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는 인권사상과 제도의 변화, 국가폭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역사,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포용과 연대를 향한 역사, 인권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한 인권운동의 역사 등 총 4부, 59개의 주제로 구성하였다. 주요한 인권의제는 시각 자료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원문 자료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홈페이지(www.library.humanrights.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발간을 하기까지 15명의 발간위원, 66명의 집필자가 수고로움을 다해 주었다. 집필주제를 선정하는 데 130여 명의 인권전문가, 활동가들이 고견을 보태주었다. 다루지 못한 역사적 사건과 의제도 있고,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의제도 있다. 근현대사에 대한 인권적 해석의 첫 시도에 따른 부족함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보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인권 실현을 향한 저항과 운동이 현재 우리 개개인이 누리는 존엄의 근거다. 그 존엄한 가치는 진보해 왔다. 나아진 인권은 더 넓고 깊은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제 조만간 현재가 될 인권의제를 발견하고 대화를 이어가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가 현재보다 나은 인권의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교훈과 힘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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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근식 「한국의 인권 100년」 , 조효제 「한국 인권사의 관점과 전망」 , 김태웅 「인권 사상의 역사적 기반과 전개」 , 송석윤 「헌법의 제정 및 개정 역사를 통해 본 인권」 , 황정미 「젠더와 인권: 인권 개념의 확장과 제도화의 과정」 , 이재승 「민주주의와 저항권」 , 류은숙 「인권운동사 개관」 , 서창록 「에필로그」에서 인용

 

 

권혁장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기획과에서 과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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