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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만드는 인권 미디어

[특집] 마주듣기 [2021.01]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
청년들이 만드는 인권 미디어

글 조은총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미디어눈 대표)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

청년들이 만드는 인권 미디어

 

조은총 미디어눈 대표

조은총 미디어눈 대표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볼 수 있었던 것을 볼 수 없게 되고,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온통 ‘멈춤, 멈춤, 멈춤’의 시대다. 이렇게 살아 낸 세월이 어느덧 1년이 되었다. 방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상의 동선이 축소되고 단순해지는 사이, 우리네 문화 또한 달라져 간다.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기 위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예전처럼 만날 수 없으니 예전같지 않게 만나는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목소리에 가치를’이라는 구호를 세우고 미디어눈을 운영한 지 벌써 4년이 됐다. 구독자가 많지도 않고, 이익을 얻을 수단도 없지만, 꾸준히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가 겪는 사회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 가고있다. 그동안 탈북 청년, 이주 청년, 에코 청년(환경 활동가), 지방 청년, 학교 밖 청소년, 장애 아동, 노인 등 다양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제작하고, 이를 소개하는 현장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작년부터는 눈랩이라는 온라인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인권랩, 청년랩, 환경랩, 젠더랩 등 다양한 주제로 비대면 청년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청년 세대나 청년 미디어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청년 세대의 한 명으로서 그동안 펼쳐 온 우리 활동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이전에는 평화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사회학 박사 과정을 하며 인권을 연구하고 있다. 인종 말살을 겪은 보스니아 민족 갈등, 중국 무국적 아동, 이주/난민 정책 등 인종과 민족에 관련한 연구를 했었고, 국제기구에서 개도국 청년과 이주, 난민을 돕는 일도 했다. 미디어눈은 이러한 과정에서 만난 친구들과 뜻이 맞아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보다는 애초에 왜 내가 평화나 인권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팀의 목표와 지향점을 더 잘 보여 줄 것 같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학년이 바뀌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출석 체크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한 명이기라도 했지, 중학교부터는 10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새 학기마다 출석을 부르며 내 이름을 부르고 난 뒤에 꼭 한마디를 더 붙였다. 내 이름이 ‘은총’이라서 종교와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보는 것은 양호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목사라고 대답하면 선생님 중 한둘은 꼭 그 교회는 어디에 있고, 교인은 몇 명이며, 아버지의 수익은 얼마냐는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첫 학기 첫 시간마다 공개적으로 받아 왔다.

 


인권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

인권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입사 과정에서 내 이름이 주목을 받았다. 한동안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언론사 입사는 서류부터 최종 면접까지 약 5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인터뷰의 첫 고비는 내 이름을 보고 “교회 다녀요? 술 안 마시겠네요?”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가까스로 그 단계를 넘어서면, 그 회사와 ‘색깔’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미션과 면접 과정에서 내가 별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특히 채용 과정 중에 간혹 술을 마시는 면접이 있다. 애초에 지원서에 주량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기도 한다. 한 공중파 방송국 채용 과정에서 가까스로 최종 합숙 면접을 보았는데, 마지막 일정이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면접이었다. 그때 본부장이라는 분이 따라 준 술을 앞에 두고 마시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진땀을 흘려야했다. 참고로 한 신문사 면접에서는 아버지 수입이 얼마냐는 질문을 받으며 중학교 때의 새 학기 출석을 부르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채용 과정에서 나의 소신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제한적인 시간 속에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고작 음주 여부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그 일을 하는 데 중요하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러 번 물어보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어쩌면 그러한 질문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평범한’ 사람인지, 아니면 단체 문화를 따르지 않는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사람인지를 확인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직업이 자랑스럽고 나의 종교적 신념과 소신을 지키는 것이 행복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로 인해 마주해야 했던 상황들은 매우 불편했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이 인권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대에 종교가 사회에 불편을 끼치는 상황이 발생하며, 여러 전문가와 인권 활동가들이 ‘기득권’ 세력인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하는 것은 혐오가 아니라는 글을 읽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나의 경험은 인권의 문제로 보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삶의 어떤 부분에서 내가 종교로 인해 기득권을 누렸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오히려 나는 나의 이름이나 종교로 인해 다른 학생들은 전혀 겪지 않는 부모님의 직업과 수입을 매 학기 친구들 앞에서 밝히며 주목을 받거나 놀림을 당했고, 면접장에서 술을 안 마시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애걸해야만 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기득권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만은 나는 소수자였고, 내 권리는 다른 학생들이나 지원자들과 동등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 나는 종교에 대한 혐오가 녹아서 구조화된 한국 사회와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험난한 일이다. 그래서 나에게 인권이란 이러한 개인, 문화, 사회 구조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지켜 내는 권리이다.

나의 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한 까닭은 우리 팀이 생각하는 인권과 그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 나의 경험처럼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 생활과 채용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나의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 되었다고 여긴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식 자리에서 자유롭게 채식을 선택할 권리가 인권일 수도 있고, 여성으로서 사회의 불안에서 안전할 권리가 인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이 겪었던 것처럼 빈곤에서 자유롭거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노동권이 필요한 청년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장애아동 콘텐츠 제작 현장

장애아동 콘텐츠 제작 현장

 

그래서 미디어눈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개인들의 사적인 내러티브를 다룬다.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당사자의 시점으로 전한다. 가장 처음 제작한 콘텐츠는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그때 만난 한 청년은 가까스로 한국에 와서 대학에 다니는데, 대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이유는 북한에 남겨진 어머니를 모셔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교를 그만두고 몇 년간 일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머니를 모셔 오면, 그 후에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어려움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개개인의 내러티브를 모르는 많은 사람은 여전히 탈북민들에게 한국에 와서 자유도 얻고, 대학도 가고, 지원도 받는데 무슨 불평이 그렇게 많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청년들이 이들과 만날 수 있는 토크콘서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이 이웃들이 겪는 ‘남’의 문제를 한 번이라도 ‘나’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도록,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장소의 맥락 속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전달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전한 이야기 중에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특히 그해 ‘스카이캐슬’이라는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의 인기와 특목고 폐지라는 정책적 이슈가 맞물려 교육에 관한 뉴스가 많았다. 그런데 정작 기본적인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장애 아동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한 어머니는 교육청을 하도 찾아가서 호소하다 보니 자신이 민원 엄마로 찍혔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관계 맺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도 통합 교육을 하는 곳이 거의 없지만,그 이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날 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렇게 평생 한 번도 장애인을 마주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 어머님은 “우리가 삭발까지 하면서 호소하는 이유가 지원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장애 아동, 장애인들도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고, 장애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라고 하셨다.

그동안은 다른 이야기만 전하다가 작년부터 드디어 우리의 이야기도 다루기 시작했다. 당시 팀원 중에는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들이 서울에서 겪는 주거 문제가 관심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왜 지방에 사는 청년들이 다 서울로 올라와서 살아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전국에 청년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야만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지방 청년의 시선으로 전하는 ‘서울공화국’이라는 영상과 기사 시리즈로 만들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인권을 위해 우리 자신이나 혹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내러티브를 전할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다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약이 있다고 해도 먹지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것처럼 인권 문제도 지금 우리 사회에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사회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계기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의 이름인 미디어 ‘눈’은 보는 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말한다. 작은 눈송이들은 금방 녹아 없어지지만, 눈송이들을 뭉치면 쉽게 녹지 않는 눈덩이가 된다. 우리는 사회에서 아픔을 겪고 배제되고 소외된 개인들의 내러티브를 모으며 쌓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힘이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모이다 보면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소시민들과 약자들의 내러티브의 눈을 굴려, 그들의 목소리가 힘 있고 가치 있게 전해지도록 눈덩이를 뭉쳐 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와 ‘우리’의 문제로 여겨지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는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일이 나와 이 사회 모든 사람들의 권리, 소신, 신념, 가치, 자유를 뭉개는 사회 구조와 그런 구조를 당연시하는 문화를 바꿔 내기를 꿈꾼다.

 

장애아동 토크콘서트 포스터

장애아동 토크콘서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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