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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1.09] 죄(인간의 얼굴을 한)와 벌

글 이석배(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죄(인간의 얼굴을 한)와 벌

 

야만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사형제도는 가장 잔혹한 형벌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형벌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고조선의 8조법과 함무라비법전에도 사형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 집행이 흔한 것은 아니었으며 살인을 제외하고는 사형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사형의 집행은 중세 강력한 국가권력이 확립되면서부터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절대왕권의 확립과 유지에 사형만큼 위협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는 없었으며, 18세기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의 사형 집행은 단순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넘어 화형, 거열형, 능지처참형, 팽형, 투석형 등으로 잔혹함을 더해 갔으며, 위하력을 위해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이 지배한 곳에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형을 이용해왔고, 그 곳에는 많은 오용과 남용의 자취가 남아있다.

 

중세 후기까지 형벌의 왕좌를 차지하던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한 논의는 계몽사상과 함께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체사레 벡카리아는 1764년 자신의 책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잔혹한 형벌보다는 확실하고 예외가 없는 처벌이 범죄 예방에 더욱더 효율적이라고 역설하였다. 다른 계몽사상가들 역시 사형제도의 폐지 또는 제한, 가혹한 형벌 대신 관대하지만 확실한 처벌, 잔인한 형 집행보다는 형의 예고를 통한 일반예방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계몽사상은 19세기의 자유주의 정신과 결합하여 인도주의 형사사법의 이념을 탄생시켰다. 이 근대 형사사법의 이념은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레비아탄’의 얼굴을 하고 억압과 증오, 복수로 점철되었던 중세의 형사사법을 인간의 얼굴을 지닌 형사사법으로 변모시켰으며, 오늘날 보편적인 민주적 법치국가의 기본 질서가 되었다.

 

18세기 말 미국, 프랑스, 영국에서 사형제도의 개혁이 시작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공개적인 사형 집행의 폐지라는 명백한 진전이 나타났다.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보편적인 논의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초안 과정에서 시작되었으며, 1966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국제인권 B규약)’에서는 사형폐지가 바람직함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예컨대 전시 범죄 등 ‘가장 중대한 범죄’에 대한 사형의 존치는 열어놓았다.

 

유럽인권협약도 제2조에서 “법원이 법률에 규정된 범죄에 대해 선고한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의로 생명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형식적으로는 사형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는 있었지만, 유럽평의회가 2002년 5월 3일 채택하고 2003년 7월 1일 발효한 제13호 의정서에서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사형 폐지의 정당성과 범죄와 형벌의 악순환

 

우리 헌법도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계몽기 이후 국가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인간의 존엄을 최상위의 법원칙으로 규정한 것은 국가와 법제도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의 존엄이고,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법제도가 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비록 극악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도 그의 존엄과 가치의 생물학적 기초인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 이미 계몽사상의 인도주의적 사고를 토대로 하는 오늘날의 국가와 법제도에서 계몽기 이전의 절대적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신화적인 논리 말고는 사형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사형폐지에 대한 국제조약 또는 국제협약 의 가입을 위한 전제조건인 국내법적 정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실질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를 합헌으로 판단하고는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때에만 인정하는 것이지 광범위하게 “중대범죄에는 사형”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즉 헌법재판소도 사형제도를 필요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필요 ‘악’이라는 생각은 범죄가 강해지면 범죄를 막기 위해 형벌도 가혹해져야 한다는 ‘상식’에 기초한다. 이러한 ‘상식’은 강한 형벌의 범죄 억지력에 대한 오신에 기인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한 형벌, 특히 사형제도의 범죄 억지력은 입증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잔인하고 모욕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어떤 국가도 흉악범죄를 척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혹한 형벌이 더 가혹한 범죄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는 최근에 법정형이 크게 상향 조정되고 실제로 높은 선고형으로 이어지는 성범죄의 경우, 차라리 유일한 증인인 피해자를 살해함으로써 범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동기의 강화를 가져온 사례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범죄 때문에 형벌이 가혹해지고 강화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형벌 때문에 범죄가 강화되기도 한다. 범죄와 형벌이 서로를 강화하고 증가시키는 악순환은 범죄와 형벌에 대한 단순한 ‘상식’에 기초한 형사정책이 지배하는 한, 강화되는 형벌이 범죄와 함께 증식하는 역설을 해결할 수 없다. 형벌 중에 가장 잔혹한 형벌인 사형제도의 유지가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상식’도 마찬가지로 범죄의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죄(인간의 얼굴을 한)와 벌

 

사형제도를 폐지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대체로 절대적 종신형 제도가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로 논의되며, 사형제도 폐지의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등 사형의 대체 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을 채택한 국가들이 있다. 하지만 절대적 종신형제도는 재사회화라는 현대 형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한다. 사형제도나 절대적 종신형제도는 동일하게 “흉악한 범죄자는 우리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라는 슬로건 아래에 있다. 이것이 일반인의 법감정이며, 어쩔 수 없는 필요 ‘악’으로 우리 사회를 흉악범들로부터 지켜주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제도와 비교해 볼 때, 최근 여러 재심재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미 사형이 집행된 무고한 “사법살인과 오심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례성의 원칙 측면에서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을 근거로 사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절대적 종신형을 대체형으로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을 위태화 하는 것은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에서는 2007년 5월, 종신형 수형자 310명이 연대로 서명하여 “장래에 희망이 없는 우리의 삶은 무(無)나 다름없으며 매일 조금씩 목숨을 깎는 형벌이라면 차라리 사형에 처하는 편이 낫다.”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무기징역은 유기징역의 상한을 초과하는 형벌의 부과가 필요한 경우 선고하는 형벌이다. 우리 형법의 입법자는 처음에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 가중 시에 25년으로 하였기 때문에, 범죄자의 행위에 대한 불법과 책임이 15년, 또는 25년보다 높게 평가될 수 있는 범죄유형에는 무기징역을 법정형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무기징역과 자연 수명을 교도소에서 다하는 종신형은 다른 의미였다. 하지만 2010년 개정형법은 모든 범죄의 유기징역 상한선을 30년으로, 가중 시에 50년으로 규정하여, 무기징역의 의미는 사형제도 폐지론이 처음 나올 때와 전혀 달라졌다. 현재는 가중처벌의 경우 50년 이상의 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 무기징역이 선고된다. 소년범의 경우는 감경이 이루어지므로, 성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면 이미 종신형에 해당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유기징역의 상한도 문명국가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장기이고, 그 위에 무기징역형, 그 위에 또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처럼 유기징역의 상한이 가중 시 50년인 나라도 없고, 유기징역이 40년 이상이면서 절대적 종신형을 채택한 나라도 없다. 현재 사형을 폐지하더라도 현행법상 최대 50년의 유기징역만으로도 충분히 종신형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그 위에 무기징역형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무기징역의 경우 가석방 가능 기간도 20년으로 동시에 개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경우 형집행정지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최소 수형 기간은 20년이다. 범죄로 교도소에서 20년 이상 수형생활을 하다가 70세가 넘어서 사회로 나오는 것, 이것으로 부족한가? 만약 무기수에 대한 가석방 가능 수형 기간이 짧다고 판단되면, 이 기간을 늘리고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종신형을 대체할 수는 없는가? 현행법에서 사형제도만을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 없이 무기징역을 법정최고형으로 규정하면 안 되는지도 함께 논의되길 희망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체사레 벡카리아가 250여 년 전 역설한 것처럼 사형제도 폐지, 잔혹한 형벌보다는 확실하고 예외가 없는 처벌이 범죄 예방에 더욱더 효율적이고, 정치인에 의한 사면과 기준없는 가석방이 오히려 범죄억지에 악형향을 미친다는 점을 우리 입법자와 정치인들도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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