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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2.03] 누가 이대남의 ‘여성혐오’를 키웠을까

글 박정훈(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 기자는 2015년부터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면서 젠더 부문 기사를 쓰고 편집하고 있습니다. <게임회사 여성직원> 기획으로 제20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최우수상(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TF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가 있습니다.

 

누가 이대남의 ‘여성혐오’를 키웠을까

 

지난 3년의 ‘실패’

 

2018년 연말, ‘낮은 대통령 지지율’로 인해 20대 남성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 주목받았던 시기로부터 3년이 조금 더 지났다. 그동안 ‘이대남 현상’은 정치권을 비롯해 온 사회를 흔들면서 ‘남성이라서 차별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20대 남성 개개인은 군대를 경험하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힘들고 약자 같다고 느끼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에게 반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국제·국내의 수많은 통계는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과 그러한 차별이 불러일으키는 폭력의 압도적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때문에 남성이 더 약자라는 ‘느낌’에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태도는 우리 사회가 승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지속해서 나왔어야 했다.

 

문제는 20대 남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명목으로 그들의 여성혐오적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혹은 ‘맞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점이다. 여당과 야당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던 주장이었다. 이는 20대 남성들이 스스로를 남성차별을 겪는 억울한 남자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렇게 20대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은 남성의 몫을 위협하고 남성 차별을 만드는 ‘반사회적 사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는 유독 ‘백래시’가 격렬했다. 여초 사이트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오조오억’과 ‘허버허버’라는 말이 소위 ‘남혐 단어’로 몰려서 이 단어를 사용했던 유튜버가 사과문을 올리는가 하면, 카카오가 ‘허버허버’가 들어간 이모티콘 판매를 중지하겠다고 한 일이 발생했다. ‘집게손가락’이 들어간 모든 포스터들은 ‘남혐’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이를 만든 회사들과 정부 부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심지어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오조오억’이라는 말을 쓰고, 숏컷을 했으니 ‘페미니스트’가 아니냐며 공격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사회적 ‘약자’들의 운동 방식을 모방해서 ‘남성혐오’라는 억지를 부린 것이, 그 주장의 합리성과 무관하게 사회에 쉽게 수용이 됐다. 그렇게 ‘승리의 경험’을 쌓은 이들이 개인에게 ‘온라인 학대’를 가하는 것에도 무감각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대남 현상’을 단순히 안티 페미니스트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쪽으로 이해하고 해석했던 것의 해악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됐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미투 운동, n번방 성착취를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여성들은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 대상 범죄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조장하고 방관한 남성들과 ‘남성 문화’에 분노를 표출했다. 그것은 남성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나를 향한 공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정치권과 언론은 여성들과 남성들 간의 다리를 놔야 했다. 여성들의 분노를 ‘다른 삶을 살아온’ 남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각자의 정치적·정파적 이익에 따라 ‘갈라치기’를 했으며, 가장 극단적인 부분만을 조명하며 소위 ‘좌표’를 찍었다. 그렇게 지난 3년은 우리 사회가 혐오를 키우고 승인한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이대남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이대남 현상’의 해결책은 결국 ‘이대남’이라는 기표의 기의를 바꾸는 것에 있다. 20대 남성은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 가장 강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가장 성평등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해서 2019년에 발표한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자료를 살펴보면 20대가 ‘전통적 남성성’ 규범에 대해서 동의하는 비율이 낮음을 알 수 있다. ‘경쟁과 성공’, ‘감정절제’ 등에 대해서 20대의 동의 정도가 유독 낮았고, 성구매 여부를 물어봤을 때 20대는 6.9%(30대 23.7%, 40대 41.7% 50대 44.4%)만이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해서, 다른 세대와 큰 차이를 보였다.

 

또한 20대 남성은 ‘가부장’이 되길 거부한다. ‘남성 우월주의’와는 거리가 가장 멀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5월 진행한 젠더·계층 조사에 따르면 ‘자녀육아 일차적인 책임은 여자가’라는 말에 20대 남성은 18.7%(20대 여성 8.4%)만이 동의하면서 모든 세대 남성 중에 가장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동시에 ‘가족생계 일차적인 책임은 남자가’라는 말에는 25.0%(20대 여성 14.8%)만이 동의를 했다. 인권위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성희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더라도, 성평등 의식은 3.51점(높을수록 성차별적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윗세대 남성들에 비해선 나은 편이 었다. 물론 20대 여성의 2.41점에 비해선 갈 길이 멀긴 하다.

 

군 복무와 불안한 사회적 위치로 인해 20대 남성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안티 페미니즘 집단’이 형성되고 있는 것에만 주목했을 뿐, 실제 그들이 모순적이게도 페미니즘적 가치를 서서히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20대 남성의 ‘탈 가부장’ 성향을 조명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진다면, 20대 남성 안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주류가 된 지금의 분위기를 바꿔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문제 해결의 초점을 20대 남성에만 두어서도 안 된다.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려는 기성세대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남성문화’는 너무나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고, 이를 통해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안티 페미니즘은 흔히 20대라는 한 세대의 문제처럼 국한되기 일쑤인데, 사실은 남성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에서 해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20대 남성에게는 현재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한다. 다시 ‘백래시의 선봉’이 되거나 아니면 ‘가부장제 브레이커(파괴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어느 쪽이 여성의 삶에, 그리고 남성의 삶에도 이로울 것인지는 자명하다. 혐오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전복시키는 것 만이, 성평등에 기반한 여성과 남성 청년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Q. 자녀육아 일차적인 책임은 여자가?, Q. 가족생계 일차적인 책임은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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