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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022.08]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보된 인권과 ‘한일관계’

글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1945년 해방 뒤 83년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의 가해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그날 법정에서 판결을 직접 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는 승소의 기쁨을 기대하며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쁨이 아니라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고 답하셨다. 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1997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한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 그리고 2005년 한국에서 자신과 함께 소송에 합류한 김규수 할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으면 엄청 기쁠 텐데 나 혼자 나와서 눈물이 나오네.” 할아버지는 법정에서 함께 싸우다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10대에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청년 이춘식은 일본제철 가마이시(釜石) 제철소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다가 일본군으로 다시 끌려가 고베(神?) 포로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모든 조선의 청년들이 서둘러 고향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그는 할 일이 있었다. 쇳물을 다루는 위험한 제철소에서 겪은 고통스러웠던 배고픔, 다반사로 일어났던 사고… 전쟁 말기 미군의 극심한 공습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그는 자신의 강제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야 했다. 효고(兵庫)현 고베에서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까지 1,000㎞가 넘는 머나먼 길, 전쟁의 폐허로 교통수단도 제대로 없었을 그 길에서 이춘식 청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식민지 조선의 청년 이춘식에게 그 길은 짓밟힌 인권과 존엄을 다시 찾기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제 강제동원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쟁취한 대법원 판결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며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는 과거에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벌인 식민지 지배가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역사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세계사적인 판결이며,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개인의 인권 중심의 국제법으로 발전해 온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한국과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정치적 타협으로 과거사 청산을 외면한 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에 대해 피해자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벌인 20여 년의 법정투쟁을 통해 이른바 ‘65년 체제’를 극복한 역사적인 판결이다. 나아가 이 판결은 1987년 한국의 민주화와 1991년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공개증언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전후보상 소송 투쟁이 맺은 결실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온 한국과 재일동포, 일본의 시민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벌여온 끈질긴 연대투쟁이 이루어 낸 역사적 승리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정부 및 전범기업 강제동원 사죄와 배상 촉구 기자회견 _ 2021. 10. 28.(제공:강제동원 공동행동)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정부 및 전범기업 강제동원 사죄와 배상 촉구 기자회견 _ 2021. 10. 28.(제공:강제동원 공동행동)

 

가해 기업의 사과와 배상 이행 필요

 

2018년 11월 28일, 신일본제철 소송의 대법원 판결에 이어 10대의 어린 나이에 근로정신대로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이 최종 승소했고, 후지코시를 상대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소송의 2심 판결에서도 피해자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의 사법 주권을 무시하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한편, 신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가해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을 통해 판결을 이행하기는커녕 일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판결 이후에는 피해자 측과 일체의 대화마저 거부하고 있다. 한국의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세 차례 일본 도쿄에 있는 가해 기업 본사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통한 판결의 이행을 촉구했지만, 가해 기업은 문전박대하였다. 신일본제철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 2005년이다. 20여 년 동안 재판의 당사자로 법정에서 상대방으로 다투어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이른바 신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가해 기업들은 일본 정부의 뒤에 숨어서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로 다시 한번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가해 기업이 판결의 이행을 위한 직접 대화에 응하지 않자 정당한 권리행사로서 판결의 집행 절차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법원 판결의 집행 절차가 진행되자 일본 정부는 재판 서류의 송달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재판 서류를 되돌려 보내는 등 판결의 이행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모욕해 왔고, 최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현금화 절차의 최종 판결이 다가오자 만약 현금화가 집행되면 ‘한일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며 ‘협박’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사법부, 피고 기업 대리인 김앤장까지 가담한 불법적인 사법 농단으로 최종 판결이 5년이나 늦어졌다. 1심, 2심 패소 판결 이후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피해자들이 역전 승소하고 2013년 파기환송심 선고 이후 사법 농단이 있었고, 2013년 파기환송심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 확정 때까지 네 분의 피해자 원고 가운데 세 분이 돌아가셨다.

 

한편 한국 정부는 ‘한일관계 파탄’이라는 일본 정부의 협박에 굴복하기라도 한 듯 대법원 판결의 집행을 막기 위해 지난 7월 26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여 피해자들의 권리행사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한국 정부가 사법 농단에 가담하여 피해자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외교적 성과에 급급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2015 한일합의와 같은 외교 참사를 재현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정한 해결은 무엇인가?

 

먼저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위해 저지른 강제동원·강제노동에 대한 사실인정과 사죄, 그리고 배상을 통해 법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기념사업과 역사교육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여 피해자 중심 접근을 바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이며, 노무 동원 피해자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희생된 군인·군속 피해자를 포함한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8일 윤덕민 주일대사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이행절차로서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에 수백조 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10대의 나이에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끌려가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에 대한 호소를 돈에 빗대어 발언한 윤 대사에게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다시 묻고 있다. ‘국익’과 ‘한일관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말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일제 강제동원 문제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공저), 『식민 청산과 야스쿠니』(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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