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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2.08] 이제, 당신이 은혜 씨를 믿어주세요

글 주윤정(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다큐멘터리 <니 얼굴>

 

이제, 당신이 은혜 씨를 믿어주세요

 

장애인들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장애인을 뽑으면, 장애인과 함께 일하면, 무언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실 다른 특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속도에 맞추기도 해야 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도 해야 한다. 빨리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분명 어떤 불편함,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어떤 변화, 어떤 불확실성은 분명히 대처가 가능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장애인은 자신을 표현하거나 일할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장애차별금지법」, 「장애인고용촉진법」 등이 교육과 직업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해소하고,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통해 교육과 직업 등의 격차를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당신이 은혜 씨를 믿어주세요

 

은혜 씨, 우리 아이 캐리커쳐 그려 줄래요?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숙련의 시간을 필요하며, 타인의 신뢰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다. 다큐멘터리 <니 얼굴>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혜 씨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4천 장의 캐리커처를 그린 것은 단순히 예술 활동만을 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를 획득해간 과정이었다. 은혜 씨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은혜 씨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도, 엄마나 가족의 도움 없이 은혜 씨 혼자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그림까지 팔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손님들 또한 처음에는 장애인 작가가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믿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마켓을 비운 사이, 은혜 씨는 캐리커처를 그리기 위해 손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손님에게 잔돈을 거슬러주었다. 이처럼 은혜 씨는 작품을 완성하고 포장하는 과정을 모두 혼자 해낼 수 있었다. 또한, 장애인 작가와 함께 마켓을 여는 것을 리버마켓의 셀러들은 꺼리지 않았고, 은혜 씨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다. 그사이 4천 장이 넘는 캐리커처를 그렸고, 전시회도 열었고,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은혜 씨가 나온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작비만 수백 억 원이 들어간 작품이다.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간 거대 프로젝트에 장애인 배우가 출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장애인이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로는 등장해도,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출연해 장애인을 연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산업화한 드라마 현장에서 발달장애인은 낯선 존재이자, 불확실성 그리고 리스크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 를 쓴 노희경 작가나 혹은 책임 있는 누군가가 은혜 씨를 믿어주었다.

 

 

함께 믿고 기다릴 수 있나요?

 

최근 화제가 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 졸업한 천재이자, 자폐 스펙트럼의 변호사로 설정되어 있다.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이지만, 모든 로펌 채용에서 떨어졌다. 우영우를 받아준 곳은 그를 정치적 계략에 이용하고자 하는 한 로펌뿐이었다. 드라마는 법에 대해서 천재일지라도 장애인은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렵게 로펌에 입사했지만, 그는 또다른 장벽과 맞닥드린다. 검사의 노골적인 불신에서부터 클라이언트들의 불신 등 지속적으로 제도와 사회의 불신에 맞서, 자신을 입증해야 하고 때로는 크게 좌절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윤을 최우선시하기 위해 불확실성과 리스크로 여겨지는 장애인을 뽑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기보다 고용부담금을 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68혁명 당시, 장애인의 탈시설 운동이 중요한 사회운동의 영역이었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격리를 전 세계에서 최초로 폐지한 나라이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경제 영역 안에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협동조합이 발달해 있다. 볼로냐의 장애인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카페 유스타 레스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난민, 재소자 등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카페 대표인 프란체스코는 ‘배제된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단순히 일할 수 있는 능력, 숙련된 기술 등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라고 했다. 단순히 경험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관계망에서 고립되어 있는 이들에 대해서 누구도 신원 보증을 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가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상, 직업훈련을 받았더라고 그들은 일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 유스타 레스는 사회가 믿지 않았던 이들이 일의 경험을 쌓고 훈련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연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거쳐 비로소 얻게 된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들은 볼로냐의 호텔, 카페 등에서 일하게 된다.

 

볼로냐 지역의 나자레노 협동조합에서 중증장애인들은 예술, 공예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한 펠트 공예 작업장에서는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한 중증발달장애인이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속도로 아주 천천히 종이를 찢고 있었다. 이렇게 찢어진 종이를 모아 펠트지를 만든다고 했다. 그곳은 모든 중증장애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숙련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가 되어 있었고, 이들이 느릿느릿 일하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일에 사람을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일을 맞추어 누구나 노동이라는 인간의 신성한 활동에서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이들의 느린 노동을 제도와 사회가 믿어주고 기다려주었다.

 

 

이제, 당신이 은혜 씨를 믿어주세요

 

은혜 씨의 매력, 이제 당신이 찾아보세요!

 

장애의 유형과 정도는 무척 다양하기에, 장애인의 능력과 이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의 지원이 어디까지 필요한지는 케이스마다 무척 다르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장애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로 여겨지고, 제도와 시장은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빨리빨리’의 사회에서 느린 노동을 하는 이들의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은혜 씨를 믿어준 가족, 리버마켓의 손님들, 리버마켓의 동료 셀러들, 그리고 노희경 작가가 있었기에, 은혜 씨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고 우리 사회는 더 다채로운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은혜 씨는 한때 사람들의 시선이 괴로워서 조현병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잔인했던 사회의 시선들은 어느 순간 은혜 씨에 대한 경이와 열광으로 바뀌었다. 20여 년 가까이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하여 고민해온 사회학자인 나 역시 최근 이런 사회의 시선 변화가 낯설어 이 변화의 원인에 대해 계속 고민해보고 있다. 아마도 한 가지 답은, 아마 은혜 씨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관계망이 점차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 동료, 손님, 그리고 노희경 작가. 이런 신뢰의 동심원이 확장되면서 은혜 씨의 장애가 위험하다고 혹은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 ‘매력’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여름, 은혜 씨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다양한 이들, 특히 발달장애인들에게 신뢰의 동심원이 확장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인권, 장애, 다종간 정의(Multispecies Justice)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보이지 않은 역사-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저항과 연대』(2020)가 있으며, 논문 『탈시설 운동과 사람중심 노동: 이탈리아의 바자리아법과 장애인 협동조합운동』(담론 201 22(2), 2019)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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