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 > 인권 도서관 > 인권 조사관의 캐비닛에서 꺼낸 속 깊은 억울한 이야기

인권 도서관 [2022.08] 인권 조사관의 캐비닛에서 꺼낸 속 깊은 억울한 이야기

글 육성철(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어떤 호소의 말들』

 

『어떤 호소의 말들』 (최은숙 지음 / 창비 펴냄 / 2022)

 

 

이것은 ‘공장’ 이야기다

 

저자가 20년 넘게 일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이야기다. 의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며 망자의 무덤 옆에 텐트를 치고 누운 베테랑부터, 인권위원이 노골적으로 반대한 사건임에도 끈질기게 매달린 순정주의 의리파까지…. 『어떤 호소의 말들』은 ‘인권’을 밥벌이로 살아가는 조사관의 땀과 눈물을 일상의 수다처럼 소소하게 들려준다. 퇴임한 어느 인권위원은 말했다.

 

“다른 국가기관은 ‘권력’을 지향하지만,
인권위 직원들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로 수개월씩 치도곤을 당하는 조사관이라지만, 인권위 결정으로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달라질 때 직업의 소명을 되새긴다. 그렇게 축적된 조사관 DNA는 때로 비장의 무기로 위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불시에 들이닥친 경찰의 가택 압수수색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매의 눈으로 적법절차를 따졌다.

 

 

이것은 ‘인권’ 이야기다

 

저자가 주목한 건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진정인들의 내면적 상처다. 조사관 앞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음독자살을 시도한 진정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층 난간에서 투신하려던 민원인, 저자는 그들의 거친 말과 행동 너머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참치 통조림 2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구속된 진정인에게도, 단지 사건 서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삶의 애환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전례나 관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일단 밀어붙인다. 어찌 보면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돌아가는 스타일인데, 그 길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걸 찾아내는 인권 감수성이 돋보인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전화번호 하나 들고 현지로 달려가는 배포와, 서울지검 피의자 사망사건 당시 대검찰청에서 강골 수사관들과 맞장뜬 기세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어떤 호소의 말들』

 

이것은 ‘사람’ 이야기다

 

저자는 페이스북에 소소한 글을 쓰다가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혼비 작가는 “그동안 추천서에서 써본 적 없는 단어”라며 ‘필독서’ 브랜드를 붙였고, 김중미 작가는 “조금은 슬프고 따뜻한 목소리가 앞으로도 계속 들릴 것 같다.”고 했다.

 

무급 인턴으로 일하는 아들과의 대화 도중, ‘못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위험 노동의 그늘을 비판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먹이를 찾는 비둘기의 붉은 발을 응시하며, 생명체의 휴식권을 소망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산과 책을 좋아한다는 저자의 은퇴 후 구상은 ‘(가칭) 정의구현 행정단’이다. 그게 뭐냐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동할지도 모른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