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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3.03] #1 인권위가 디지털에 취약한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

 

인권위가 디지털에 취약한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이 대세다. 이제 디지털과 친해지지 않으면 일상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전환은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분명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국가, 지역, 기업, 계층마다 격차가 크다. 특히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과학의 진보를 향유할 권리, ‘모두’에게 있을까?

 

디지털 전환은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당혹감을 느낀다.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 취약계층 또는 디지털 약자들이다. 디지털 광풍은 전방위적이나 인권의 시선은 협소하다. 준비 없이 디지털 전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이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ICT(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ies)같은 용어를 자주 접한다. 모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신기술 문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사회도 그런 논리에 꾸준히 힘을 보탠다. 유엔은 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규약’이라고 함) 제15조 (1)항 (b)호에 ‘과학의 진보와 응용에 참여하고 그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규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조약감시기구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규약 조문에 담긴 권리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실례로 당사국의 구체적인 의무사항을 제시하는 일반논평 중 제25호인 ‘과학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를 들 수 있다. 여기엔 “과학의 진보와 응용에 참여하고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실현할 의무를 당사국에 부여한다”고 적혀 있다. 물론 이런 논평은 그 자체로 구속력이 있는 국제인권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약감시기구가 그렇게 해석했으므로 매우 공신력 있는 국제적 문서로 평가된다.

 

 

디지털 기술 문명이 차별과 소외를 낳는다면?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제25호(2020년)는 여러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과 활용에 관한 결정은 차별금지, 투명성, 책임성, 인간 존엄성 등 인권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일반논평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기술은 소위 디지털 소외계층을 만들어냈다. 평등이 아닌 차별, 존엄이 아닌 소외가 디지털 기술문명의 민낯이다.

 

코로나19가 엄습하던 2020년 초를 떠올려보자. 노인들은 마스크를 쓰라는 정부의 권고를 알고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지 못했다. 디지털로 구현된 마스크 공급정보 앱에 접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요즘 많은 노인들이 자동화된 매점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성거린다. 상당수 노인들은 무인단말기(이른바 ‘키오스크’라고도 함) 앞에서 구매를 포기하거나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간편한 디지털 기기 앞에서 아날로그 시대보다 못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대표적인 디지털 약자인 노인이다. 디지털 문명은 쌍방향이 아니어서 한번 벌어진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디지털 격차에서 비롯한 노인의 피해의식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답답함, 두려움, 좌절감 등 정서적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다.

 

 

노인의 권리 강화를 위한 제도 시급

 

한국소비자원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거래 경험에서 특히 고령의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비상 상황 속에서, 디지털 소외계층인 노인의 불편은 극에 달했다.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노인들은 식재료 주문조차 할 수 없는 위기에 몰렸다.디지털 격차는 사회적 관계망 축소도 가속화한다. 이 또한 노인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은 처음엔 당혹감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궁극적으로는 자존감을 상실한다. 자존감 약화는 다시 사회적 관계망을 위축시키고 노인들의 자기 결정권을 제어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인권위는 「인권증진 행동전략(2021~2025)」 수립 시 ‘초고령사회 노인의 권리 강화’를 성과 목표의 하나로 제시했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 등을 비롯한 노인 인권 문제에 대해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를 다층적으로 조사·연구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디지털 기기 보유, 유지, 접근성 실태를 파악하고, 디지털 기기로부터 소외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인권위는 2022년 초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도 추진하였다.

 

인권위는 향후 노인 인권상황에 대한 연구자료를 토대로 정책 권고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인권위는 연구용역과 실태조사 과정에서 청취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꼼꼼히 살피어, 정보 접근권, 자기 결정권, 평생교육권, 사회보장권 등의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글. 이동우(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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