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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3.03] #2 노인의 눈높이에 맞는 ‘노인의 언어’가 필요하다

 

노인의 눈높이에 맞는 ‘노인의 언어’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25년에는 1,000만 명으로 증가하여 바야흐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고령화 현상과 더불어 디지털 기술 혁명에 따른 급진적인 발전은 우리 사회를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 고도화된 디지털 발전과 기술적 환경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나, 그 이면에는 사회적 격차로 인한 불평등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취약계층으로 여겨지는 노인들은 디지털 이용 능력이 생존조건이 된 현실에서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디지털 소외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을 살펴보고 노인인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들이 직접 밝힌 디지털 격차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디지털 소외를 겪는 노인들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1) 능력은 필수적이다. 디지털 사회는 디지털 기기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양식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노인들이 디지털 사회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 디지털 소외에 시달리는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 문해력이 낮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 문해력은 단순히 디지털을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1)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또는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말한다.

 

노인들의 인지적·신체적 기능 저하는 디지털 문명을 학습하고 적응하는 데 큰 장벽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기기가 없거나 혹은 있어도 사용이 미숙한 노인들은 디지털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고, 일상생활에서 높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결국 디지털 소외(Digital exclusion)를 겪는 노인들은 다양한 일상적 불편과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다.

 

디지털 활용 격차의 측면에서 보면, 노인들은 ‘소극적 활용형’과 ‘적극적 활용형’으로 구분된다. 소극적 활용형의 노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별로 사용하지 않고, 디지털 기기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적극적 활용 노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이미 사용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사회활동이나 경제 활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노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디지털 활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노인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 정책의 부재

 

농촌 노인들의 디지털 활용 수준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도시 노인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다. 농촌의 디지털 환경과 수준도 매우 열악하다. 대다수의 농촌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으나,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그저 통화용 전화기일 뿐이다.

 

농촌 지역 노인들은 ‘디지털 하층민(digital underclass)’의 모습을 보인다. 농촌 디지털 하층민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사용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농촌 노인들은 일상 속 단순한 디지털 서비스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정보화된 사회에서 더욱 소외되고 고립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농촌 노인들은 디지털 격차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많은 농촌 노인들은 스스로를 디지털 사회에서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한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답답함을 넘어 좌절과 회피 그리고 포기의 감정으로 연결된다. 도시 노인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디지털 교육을 접해보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많은 농촌 노인들은 ‘그거 배워서 소용도 없고 쓸모도 없는데’라는 포기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노인들의 인터뷰 과정에서 많이 등장한 것 중 하나가 노인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 정책이다. 흔히들 노인을 위한 것이라 하면 디지털 기기에서 글자 키우는 것을 생각하지만, 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클릭’이나 ‘터치’ 같은 말조차 노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키오스크 혹은 스마트폰이라는 말도 노인들에게는 어려운 용어일 수 있다. 요컨대 노인 친화 디자인은 단순히 노인을 위한 큰 글자 서비스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노인의 디지털 격차는 노인 인권의 문제

 

새로운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인들의 두려움은 기회 부족 탓이다. 노인의 디지털 격차에서 노인의 진입을 막는 1차적인 장벽은 노인의 생애에서 디지털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2차적인 장벽은 새로운 것을 회피하는노인의 특성이다. 사회 활동은 디지털 공간으로 무한 확대되고 있는데 오프라인 활동조차 디지털 영역이 많아 근접조차 못하고 있다. 이들의 디지털 빈곤은 심각한 권리 침해로 볼 수 있다. ‘디지털 문맹’ 노인들은 디지털 격차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된다고 느끼게 되며, 결국에는 자존감이 떨어져 우울과 고립감에 빠지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디지털 양극화를 더욱 가중시켰다. 디지털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노인들은 디지털 기술로 인하여 더 큰 스트레스와 소외를 겪고 있다. 디지털 격차 심화에 따른 노인들의 불편과 사회적 소외는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사회에서 노인들의 디지털 접근(Digital access)은 그들의 보편적 권리이고 인권이다.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사회의 초입에서 노인의 정보 소외 현상은 보다 심화되었고, 노인들 간의 디지털 격차 역시 확대되었다.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노인들은 소외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노인들은 당황하고 분노하고 자책하면서 우울과 고립감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의 디지털 격차는 존엄한 삶의 권리 상실과 직결된다. 이제 우리는 노인의 디지털 격차 문제 해소를 단순한 보호와 시혜의 차원이 아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글. 장안식(케이스탯컨설팅 공공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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