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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3.03] #3 장애인도 빅맥이 먹고 싶다

 

지난 해 7월, 시각장애인 40여 명이 맥도날드 서울시청점을 찾았다. 한 시각장애인은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매장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를 찾은 또 다른 시각장애인은 코가 닿을 정도로 화면에 얼굴을 갖다 댔다. 들쭉날쭉 위치가 달라지는 버튼 앞에서 ‘식사 장소를 선택해 주세요’, ‘결제 방법을 선택해주세요’ 같은 말들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거기에는 키오스크 위치를 알려주는 점자블록도, 화면 확대 기능도, 점자 패드와 음성 안내도 없었다.

 

장애인도 빅맥이 먹고 싶다

 

장애인 접근권이 말하는 것

 

비장애인에게 통상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햄버거 주문이 장애인에게 10분 가까이 이어지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키오스크 접근권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된 해, 대학 캠퍼스 모든 건물의 장애인 상황은 비슷했다. 같은 해 5월 캠퍼스 모든 건물의 장애인 접근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휠체어 높낮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설치되어 있었다. 구내식당에 휠체어가 진입할 여유 공간이 없거나, 출입구 바로 옆에 키오스크가 설치된 탓에 알아차리기 어렵거나, 상단에 있는 메뉴까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이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구매할 수도, 학식이라 부르는 학생 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은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그 공간에서 지워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장애인언론 기자가 되고 나서 들여다본 키오스크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장애인의 구체적인 삶을 조명해야 했고, 장애인의 자유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정책을 같이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에는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겪는 문제가 다 모여 있었다.

 

 

키오스크, 장애인의 일상을 가로막는 장벽

 

키오스크, 장애인의 일상을 가로막는 장벽시각장애인에게 키오스크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도 같다.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하려면 먼저 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점자블록과 음성신호가 갖추어져야 한다. 키오스크 조작판과 카드 투입구에는 점자 표시가 있어야 한다. 또 저시력 장애인에게는 화면 확대 기능과 화면 속 정보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기능이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키오스크 대다수가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음성 안내가 처음에 잠깐 나오다 말거나, 직원 호출 버튼이 터치스크린 안에 포함된 경우도 종종 보인다. 키오스크가 있어도 사용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청각장애인도 키오스크 사용에 ‘소리 없는 장벽’을 느낀다. 특히 수어는 한국어와 문법 체계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언어인 만큼, 수어를 모어로 쓰는 농인에게는 한국어 자막 말고도 수어 통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어와 자막이 동시에 제공되는 키오스크는 우리나라에서 좀체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기기가 고장나거나 문의 사항이 있어도 문자 안내 없이 전화번호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청각장애인은 직원이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발달장애인은 키오스크 정보 접근성에서 더욱 취약하다. 혹시 사용법을 별도로 안내하는 키오스크를 이용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설명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림이나 기호보다는 긴 문장과 전문용어로 이루어져 있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지난해 2월 개정된 키오스크 한국산업표준(KS)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은 이용자에게 모양, 크기, 위치 등 명확한 지시사항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세부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장애인도 빅맥이 먹고 싶다

 

 

장애인을 외면하는 법과 제도의 문제

 

이러한 사례들은 필자의 경험칙을 넘어 실태조사에서 수치로 드러난 사실이다.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전국의 공공·민간 부문 키오스크 1,002대를 한 달간 모니터링한 결과, 모든 장애 유형이 접근할 수 있는 기기는 전국에서 단 한 대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금융 관련 단말기를 제외하면 음성 지원 기능을 갖춘 기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키오스크를 설치하거나 운영할 때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규정이 이미 존재한다. 지난 1월 28일부로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개정안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제15조 제3·4항). 그런데도 왜 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은 계속해서 미뤄지고 보류되는 걸까. 문제는 하위법인 시행령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연말 장차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마치면서 업체의 유형과 규모에 따라 2024년 1월(1단계), 2024년 7월(2단계), 2025년 1월(3단계)로 단계를 나눠 시행 날짜를 달리했다. 나아가 상시 지원 인력이 있는 50㎡(약 15평)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편의제공 의무화’ 대상에서 모두 제외했다. 이미 1월 28일 이전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대상으로 3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있는데도, 장애인의 기본적인 일상을 책임지는 법과 제도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인들이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장벽을 허무는) 키오스크를 수년간 요구하고 있는 건, 이제 어디를 가도 키오스크가 없는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음식점, 영화관, 병원, 은행 등을 비롯해 무인 독서실, 무인 세탁소, 무인 사진관 등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공간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의 자리를 키오스크가 대신하게 되면 업주는 인건비를 절감하고 소비자는 간편하게 상품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화의 편리함은 모두에게 동등하지 않다. 키오스크 사용에 물리적으로 취약한 장애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장애인의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이 매년 증가해 2021년에는 일반 국민 대비 81.5%를 기록했지만(2021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정작 현실에서는 앞선 문제들처럼 장애인 접근권이 키오스크 보급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접근권, 키오스크 개선만으로 부족하다

 

장애인 접근권, 키오스크 개선만으로 부족하다키오스크 문제를 디지털 시대에 새로 생겨난 현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장애인 접근권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건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키오스크의 문제점’ 말고도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질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장애 유형과 특성에 따라 키오스크 사용에 어떤 제약이 발생하고 있을까.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더라도 당장 가게에 출입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진 않을까.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려면 접근권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장애인이 집에서 나와 대중교통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우뚝 솟은 턱에 걸리지 않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기기에 접근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안전하고 순조로워야 한다. 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키오스크 없이도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체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이, 청각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이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장애계가 내놓은 요구사항은 이렇다. 권고 수준에 머무르는 키오스크 인증 제도와 현행 규정에 강제력을 부여하라. 사업주 입장만 대변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를 중심에 두고 의무 만큼의 지원을 제공하라. 이것은 장애인이 키오스크 사용법만 익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에게 접근성을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공간이든 장애인이 함께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글. 복건우(비마이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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