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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3.03] #4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EU의 법제적 도약과 시사점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EU의 법제적 도약과 시사점

 

UN에 따르면, 디지털 포용이란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디지털 기술, 서비스 및 관련 기회를 사용, 선도 및 설계할 수 있는 공평하고 의미 있으며 안전한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네 가지 개념(이용가능성, 접근성, 적정가격, 참여성)을 포괄하는데 국내법상의 정보격차는 이용가능성 및 접근의 단계까지를 담고 있다. 본래 의미의 디지털 포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적정한 가격으로 디지털 기술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기술 및 사회·문화적 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EU는 디지털 관련 정책들을 전략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회원국 모두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서 디지털 전략을 논의하고 제도화하기 시작하던 2010년 당시부터 그 내용에 디지털 포용을 주요 사항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2010년 〈유럽을 위한 디지털 아젠다〉에서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 디지털 서비스를 강조하면서, 디지털 역량 및 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럽사회기금에서 우선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접근성 평가제도 등 구체적인 정책들을 담고 있었다. 2015년 〈유럽을 위한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에서는 민간 부분에서 디지털 기술 인력의 양적 및 질적 수준 증가가 상향되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투자 및 지원을 추진하였으며, 국가 내 및 국가와 EU 간 전자정부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제고하는 정책 등을 추진하였다.

 

특히 2021년 발표된 〈2030 디지털 나침반: 디지털 10년을 위한 유럽의 여정〉은 디지털 권리와 원칙의 틀을 제안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23년 1월 EU에서는 ‘디지털 10년을 위한 디지털 권리와 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동 선언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포용성을 곳곳에서 담고 있는데, 특히 제2조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공정하고 포용적 사회에 기여하여야 함을 천명하면서, 기술적 솔루션의 설계, 개발, 배치 사용이 기본권을 존중하고 포용성을 촉진하여야 하며,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디지털 전환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등을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EU의 법제적 도약과 시사점

 

 

EU의 디지털접근법 주요 내용 및 의미

 

EU는 디지털 전략에서 제시된 디지털 포용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입법도 병행적으로 진행하였다. 예를 들면, 장애인 등을 위한 철도시스템 접근성 제고를 위한 기술사양 등을 정하는 2014년 규정,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및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하여금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2016년 채택된 소위 웹접근성지침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EU는 디지털 포용 관련하여 2019년에 기념비적인 지침을 새롭게 채택하였는데, 바로 「물품 및 용역에 관한 접근성 요건에 관한 지침」, 소위 “유럽접근성법”이 그것이다. 유럽접근성법은 소정의 물품 및 서비스에 있어서 회원국들의 접근성 요건 관련 법령 및 정책의 간극을 줄임으로써 역내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제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입법 목적 근간에는 디지털 사회에서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통해 디지털 포용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2019년 유럽접근성법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디지털 환경에서 장애인 등의 정보접근성 보장이 공적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 부분에서도 적용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동법의 적용 대상인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는 디지털TV 서비스와 관련된 TV 장치, 컴퓨터 및 운영체계(operating systems), 전화서비스 및 스마트폰은 물론 지불단말기, ATM 등 셀프서비스단말기, 전자책, 전자상거래, 온라인뱅킹 등 매우 폭넓게 아우르고 있어 생활 전반에 걸쳐 디지털 포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특히, 동법은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기술요건들을 매우 상세하게 규범화함으로써 디지털 포용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법제도적 방안을 구체화하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EU의 법제적 도약과 시사점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법제적 과제

 

유럽접근성법은 그 자체로서 회원국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고 회원국으로 하여금 동법에 부합하도록 국내법을 제·개정할 수 있는 기간을 유예하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 벨기에, 덴마크, 독일, 프랑스, 헝가리, 핀란드 등 20개 국가들이 유럽접근성법이 정하고 있는 요건들을 국내법으로 전환하였다. EU회원국들은 빠른 속도로 유럽접근성법을 자국의 입법에 반영하고 있는 추세이며, ‘국경’이라는 장소적 제약에 국한되지 않는 디지털 분야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입법 경향은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들에게까지 파급효과를 야기하기 충분한 상황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유럽접근성법의 경우 회원국에 대하여 접근성 요건을 위한 국내법을 제정할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는 제조업자, 수입업자 및 배급업자에 대한 의무도 별도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동법은 EU에서 제조되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역내에 수입하거나 배포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럽 지역에 정보통신 기기 및 서비스를 수출하고자 하는 EU 회원국 이외의 외국 기업들에게도 우회적으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EU 지역에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들 역시 동법이 정하는 기술요건들을 충족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1990년대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이고 집중적으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여러 법률들을 통해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포용도 다루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디지털 포용을 위한 법제도적 방안들은 여러 법률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규율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체계적인 추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법적 구속력이 미흡하며 전문적이지 못하고 실용적인 수요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디지털 포용은 국제 사회에서 확립된 규범의 일환으로서 국가 간 상호영향력이 지대한 현대사회에서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EU의 유럽접근성법을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EU 회원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동법에서 정하는 요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향후 보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포용의 실현을 위한 입법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포용 실현을 위한 EU의 법제적 도약과 시사점



글. 장민영(한국법제연구원 글로벌법제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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