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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2023.0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훌쩍 넘겼다.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오는 전쟁이 1년을 넘긴 것도 안타까운데,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에 슬픔이 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도 이 전쟁의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반도의 북쪽은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한반도의 남쪽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해달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또 한국은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고, 북한은 대러 제재를 비난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영향은 ‘지정학적 단층선’이라는 말에서 추출할 수 있다. 이 표현은 단층면이 접하는 선처럼 지정학적으로 강자들이 충돌하는 지점에 있는 약자의 위치를 일컫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가 강하게 충돌한 우크라이나,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경쟁의 ‘핫 스폿’으로 부상하고 있는 대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혹자는 남북한 갈등에 더해 미일동맹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망각한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

 

러-우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도 비슷한 처지에 직면할 수 있다는 데에 맞춰지고 있다. 러시아의 성공은 북한과 중국을 대담하게 만들고, 대담해진 이들 나라가 한반도나 대만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한미동맹은 물론이고 자유·민주 진영과의 연대를 대폭 강화해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강대국이 타국의 주권과 영토를 불법적으로 유린하고도 무사하게 놔두면, 언제든 이런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볼 때 그릇된 선례를 남긴 나라는 바로 미국과 일부 동맹국들이다. 정확히 20년 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영국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후세인이 그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며 침공을 강행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 땅이 아니라 미영동맹의 마음 속에 있었다. 유엔 헌장을 비롯한 국제법을 무시한 명백한 불법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침공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미영동맹을 도왔다. 이후 미국은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해왔고,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러-우 전쟁은 이를 위한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중남미,그리고 중동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담겨 있다.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던 미국과 그 동조국들의 자격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즉, 상당수 비서방 국가들의 눈에는 ‘미국이나 러시아나 오십보백보’다. 서방의 시각에, 또 동맹의 논리에 쉽게 동조해온 한국으로서는 낯설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이라크 전쟁에 미영동맹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의 파병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주장이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를 두둔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이라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를 성찰해봐야 한다는 바람을 담았을 뿐이다. 20년 전에 필자는 ‘동맹국인 미국의 잘못된 선택을 지적할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라고 호소한 바 있지만, 한국의 선택은 대규모 파병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이 전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의 장기화보다는 조속한 종전을 위해 힘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은?

 

20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고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는 우리나라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이유로 거론된다. 동시에 이러한 지배적인 흐름은 러-우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러-우 전쟁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선 한미동맹 강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주도의 동맹 약화가 아니라 강화되는 와중에 일어났다. 미국이 약속을 어기고 나토 동진을 밀어붙인 것이 전쟁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은 역대 최강이라고 하는데, 안보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동맹은 근본적으로 ‘공동의 적’에 기반을 둔 것인데, 공동의 적을 상대로 동맹을 강화할수록 상대방도 군사적 맞대응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가히 한미동맹과 북핵의 적대적 동반성장이라고 할 수 있고, 안보 불안이 고조되는 핵심적인 사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잘못 추출한 부분은 또 있다. 한미동맹은 3월 13일부터 연합훈련에 돌입했는데, 그 규모와 성격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훈련이 세계 최대 규모로 실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격 역시 공세적인 측면이 대폭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군 당국이 훈련에 북한 점령 및 안정화 작전을 포함하고 이를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해 한미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최근에 일어난 전쟁·분쟁 교훈 등 변화하는 위협과 달라진 안보 환경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침략국이 상대방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벌인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교훈을 러시아가 망각한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동맹이 북한을 점령해 무력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것도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좌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저항력도 매우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정책 법제화를 통해 핵무기 사용 조건을 구체화했는데, 그 핵심 조건이 바로 한미동맹의 무력통일 시도를 저지하겠다는 데에 있다. 북한은 이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핵·미사일 고도화”를 향해 폭주를 거듭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달라진 안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은 힘과 의도의 압도적인 과시보다는 자제에 있다. 한미가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한반도 위기 예방 및 관리의 관점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러-우 전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동서 갈등에 있었던 만큼, 한반도 위기관리의 핵심도 남북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 두어야 한다.

 

 

국익을 위한 외교 비전의 필요성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문제가 있다. 러-우 전쟁을 중국을 적대시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서방의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선언한 미국은 국제 질서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집을 호소·압박해왔다. 특히 러-우 전쟁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태평양-대서양 동맹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오늘이 대만의 내일이 될 수 있다’는 화법을 동원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법은 논리적인 비약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러시아와 ‘한통속’으로 보기도 어렵다. 21세기 들어 중러관계가 밀착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러-우 전쟁에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는 중립과 중재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선택과 관련해 매우 중대한 함의를 품고 있다. 우리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봉쇄에 동참할수록 우리의 이익과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험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단층선에 있지만, 결코 약자는 아니다. 하여 우리의 운명을 가름할 핵심적인 변수는 물리적인 힘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익과 보편적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외교 비전을 세우고 미중 양국을 상대로 할 말은 하면서 두 강대국의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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