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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세상 [2023.04] 우리 아이들은 기후위기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아기 기후 소송 참여한 하온, 나온 남매 가족

 

우리 아이들은 기후위기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봄이 오는 길목이던 3월 초순의 한 낮, 용인시 기흥구의 한 주택가 카페에서 행복한 일상을 채워가는 한 가족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주택가 옆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서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귀여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어린이집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만큼이나 맑은 느낌의 최성희, 박한 부부와 4살 박하온 군, 2살 박나온 양이 이날 인터뷰의 주인공이었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 6월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했다.

 

 

아기 기후 소송 증서를 든 박하온, 박나온 남매
아기 기후 소송 증서를 든 박하온, 박나온 남매

 

아기 기후 소송에 아이들이 당사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아직 어려서 의사를 밝히기 어려웠을 텐데요.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신 건가요?

 

“제가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어요. 미래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많은 피해를 입을 것 같은데 그 전에 부모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것 같아서요.” (박한)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하니 증서가 왔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보면 뿌듯해할 것 같더라고요. 증서를 보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어요.” (최성희)

 

‘아기 기후 소송’은 지난해 6월 중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아기들과 어린이들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한 것을 가리킨다.

 

2021년 말 문재인 정부는 정부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40%로 정했고, 이 내용이 이 법 이 조항에 담겨있다. 그러나 이 목표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것이 소송의 주요 골자였다. 태아 1명을 포함한 5살 이하 아기 40명을 포함해 어린이 62명이 참여했다.

 

 

환경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환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공이 환경공학이라 개발 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는 환경영향평가 일을 하게 됐어요. 일종의 환경컨설팅이에요. 평가서를 직접 작성하는 일이죠. 2년 정도 했는데 제가 하는 일이 결국 나무를 베는 일이더라고요. 환경을 잘 보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 수원환경운동연합에서, 수원의 4개 하천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보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담수생태계에서 가장 큰 위협이 이런 인위적인 하천 구조물인데, 그런 보가 물의 흐름을 막고 있으면 결국 거대한 어항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점이 안타까워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박한)

 

 

전통적 환경 영역의 주제를 전공하셨는데, 기후변화 문제는 좀 다릅니다. 기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남편처럼 직접적으로 환경운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확산이 계기였어요. 하온이를 낳은 뒤 바로 코로나19 펜데믹이 일어나고 집에만 고립돼 있다보니 감염병을 부른 환경 파괴 문제를 포함한 기후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태풍과 홍수, 한파 등 최근 몇 년 동안 이상기후도 환경 문제를 실감하게 했고요.” (최성희) “저에게는 기후 문제가 삶이었죠. 어려서부터 아버지도 제게 환경학자가 되라고 했어요. 자연을 좋아하니까 산도 다니고 집 근처에 하천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점점 개발이 되었고 환경도 바뀌는 것을 많이 봤죠. 아이들은 내가 누린 자연의 모습을 아예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기후문제도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박한)

 

 

기후변화 문제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육아하는 엄마들 중에서도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육아 방식을 택한 분들도 많아요. 예를 들어 물티슈 사용을 줄이고 천기저귀를 쓰는 것 같은 실천이요. 전국의 엄마들과 독서모임(인스타그램 @book.orosy)도 하고 캠핑도 가는데 채식 위주로 먹자고 하고 플라스틱 없는 캠핑을 하자고 제안하면 거부감 없이 동참해요.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아지는 걸 보면서 환경, 기후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최성희)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사람들이 정말 관심이 있는 걸까 의아할 때도 있어요.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지난 해 8개월 동안 2주에 한 번 퇴근 시간 수원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기후정의문화제’를 열었어요. 기후 관련한 영상도 같이 보고 이야기도 하고요. 그런데 힐끗힐끗 안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참여는 많이 안 했어요. 아무래도 바쁘니까 그렇겠죠. 현실적으로 주변 환경단체 재정상황도 악화되고 있고요.”(박한)

 

기후문제는 까먹기 쉽다. 이렇게 포근하고 화창한 봄날이 이어지면 지난 여름의 폭우와 폭염, 겨울의 한파와 폭설이 잊힌다. 또 기후문제는 평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월말이 두려운 사람들은 종말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매월 월세, 전기요금, 가스요금 걱정이 큰 이들에게 지구 종말을 말하는 기후변화 문제가 제대로 전해지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후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건 기후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살기 어려워서일 수 있다. 젊은 부부들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라는 목표에 골인했다고 해도 출산을 하기 겁나는 시대이다. 성인 부부가 쉴 방 한 칸 구하기 어렵다. 경쟁이 심해지는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쓸 자신이 없다. 덜컥 낳는다 해도 아이가 제 앞가림할 때까지 누가 키워줄 것인지 따져보면 조용히 임신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기후문제라는 장기 과제 때문에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출산계획을 포기하는 젊은 부부가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좀처럼 해답을 찾기 어려운 기후 문제까지 더해지니 아예 엄두가 안난다는 이들도 있다. 다만, 이미 아이를 낳은 부부는 아이들이 있어 삶이 더 충만해진 모습이었다.

 

 

미래 기후 문제가 걱정되어서 아기를 낳지 않는 이들도 있던데 이런 지적은 공감하시나요?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는 기후가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기후변화는 결국 적응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차피 한국 인구는 줄고 있으니 우리는 낳아도 되지 않을까요? (웃음)” (최성희)

 

“저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에요. 주변에서 정말 많이 듣고 있거든요. (웃음) 환경운동하는 선배들도 그 이야기를 꼭 하는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위기 속에서 행복을 찾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저는 찾은 거죠. ” (박한)

 

 

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보셨나요?

 

“기후위기 문제가 그냥 삶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 같아요. 비관이나 낙관이라고 바로 판단하기는 어렵고요. 부모인 우리 세대가 대출 문제, 아이들 학원 문제 이런 다양한 사회 문제를 껴안고 사는 것처럼 기후위기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녹아있지 않을까요.” (박한)

 

“저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에요. 기술혁명도 어느 정도 믿는 편이고요. (웃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생각하고 소통한다는 점이잖아요. 사람들은 점점 소통을 원할 것이고 그러면 미래에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을까 기대해요. 결국은 같이 살아야 하니까,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봐요.” (최성희)

 

부부는 아이들이 환경을 친숙하게 느끼고(박한) 주류를 좇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알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최성희) 바란다고 말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편견을 가지지 않고 모든 생명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특히 약자에게 취약한 현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부부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두 아이에게 항상 책임을 느끼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아빠가 사랑한 자연을 아이들도 느끼길 원하는 마음에서 주말마다 동네 뒷산에서 꽃도 보고 맹꽁이를 찾는다. 맹꽁이 보호 지역을 훼손하는 용인시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아빠의 모습도 보여줬기에, 아이들은 행동하는 시민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면 학교와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가족들은 2022년 9월 24일 기후위기 행진에 참가했다.
가족들은 2022년 9월 24일 기후위기 행진에 참가했다.

 

아이들이 받을 환경교육은 어떠하길 바라세요?

 

“환경 교육은 권리의 문제인 것 같아요. 말을 하지 못하는 자연, 지구, 생명의 권리를 대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환경부 공무원이고 환경운동가들이겠죠. 그리고 그교육의 핵심은 이타심을 배우는 것 같아요. 생태 문제를 잘 아는 것, 기후위기 문제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이타심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박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회가,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작은 실천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의 결단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로에너지 건물을 짓는 식의 변화, 사회 시스템과 전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이 바뀌는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면 기후대응이 더 효과적으로 가능할 것 같아요.” (최성희)

 

“저는 지금의 환경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이런 꽃이나 새를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게 되거든요. 특히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안타까워요. 예쁘게 다듬어진 조경시설도 만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식물들은 계속 다듬어줄 식물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직접 자연을 느낄 기회가 적어질텐데 이런 점에 대해사회가 다같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박한)

 

광역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박씨가 동료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쓴 소책자 ‘환경영향평가 대응액션노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읽었다. 환경을 살리는 일을 하는 박씨는 그의 아들과 딸이 미래에도 자신이 그러했듯이 자연과 호흡하기를 원한다. 낙천적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최씨는 아이들도 약자에게 가혹한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주류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멋진 성인이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아기기후 소송에 참여했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평범하지 않거나, 무겁고 복잡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아이들의 평온하고 무탈한 미래를 위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마음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최우리(한겨레 기자)

사진. 임근재(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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