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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바로미터 [2023.05~06] 소비 주권과 인권경영

 

소비 주권과 인권경영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소비는 자기를 표현하는 삶의 양식, 이른바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의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 산업 영역은 그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견주던 시장 메커니즘 속에서 대량생산과 대중 소비를 연결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의 취향, 가치, 의미가 고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호가치’는 더 이상 대량생산이 아니라 전문화되고 특화된 소규모 생산방식을 추동하고 있다. 더욱이 소비자들은 인터넷 댓글과 상품평, 별점 등을 통해서 생산자와 다양한 방식의 쌍방 소통을 시도하며, 상품과 연관된 서비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봉’이 아니며 기업은 ‘소비주권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 구실에서 본질로

 

안랩의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뛰어들기 전까지) 기업 경영과 사회적 기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그간 공익 광고 협찬 정도로 취급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대기업의 총수들이 구치소를 나설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겠다고 생색을 내는 모습을 사람들은 뉴스로 지켜만 봐왔다.

 

그러나 생산과 가공부터 소비자와의 만남까지 다양한 과정으로 CSR의 가치를 주목해 온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친환경기업인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코니아(Patagonia)는 의류를 판매하면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통해 주목받았다. 원재료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매출의 1%는 ‘자연세’로 환경단체의 시위를 후원하며 기업의 가치를 직접적인 실천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1) 독일은 국가와 정책 차원에서 CSR을 적극 수용, 장려하고 있다. 아스피린을 발명한 독일의 화약·제약기업 바이엘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건강을 지향하는 제조 과정을 지향하고 있다. 이 기업은 CDP(탄소정보공개평가)에서도 지속적으로 최고 등급을 유지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의 모범 사례이다.

 

소비 주권과 인권경영

 

한국에서는 제조나 공정 과정에서의 사회적 책임보다 기업의 후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일례로 오뚜기 기업은 30년간 심장병 어린이 후원 사업이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착한’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 ‘갓뚜기’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소비 주권이 더욱 커졌다. 일본 전범을 지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매운동(보이콧)을 강행하는 국민적 캠페인이 있었고, 사이비 종교 논란을 일으키고 신도들을 착취하는 다큐멘터리에 방영된 S 음반사에 대한 강력한 보이콧도 현재 진행 중이다.

 

2022년 10월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SPC 불매운동’은 생산과 노동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문제제기 사례이기도 하다. SPC계열 제빵공장에서 홀로 노동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사측이 적절한 사고원인 조사와 사후조치를 하지 않자 불매운동이 지속됐다. 이처럼 소비주권자들이 직접 경종을 올리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책무성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덕적 퇴출의 위기에 놓였다.

 

다른 한편, 인터넷 SNS를 통해서 ‘돈쭐을 내주자(돈으로 혼쭐은 낸다는 의미)’는 착한 소비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프랜차이즈 ‘철인7호’ 홍대점의 점주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형제에게 공짜 치킨을 대접했다는 소식이 SNS 등에 공유되자, 소비자들이 주문에 동참하며 점주의 선행을 응원했다. 또한 충북 진천군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 여자 390명을 수용하자, 이에 대한 시민들의 성원이 진천군 특산물 판매 온라인쇼핑몰 주문으로 이어졌다.2) 이 “Buy 진천” 사례는 난민 이슈가 지역사회 내 갈등과 위협이 아니라 사회통합 거버넌스의 새로운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소비주권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동하는 시장에 인간다움의 의미와 인권의 가치를 강력히 지지하는 ‘의미 소비(Meaning Out)’캠페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소비 주권의 시대에 근시안적으로 단기 수익, 돈 만을 바라며 인권을 유린하고 환경오염을 해온 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이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즉 인권과 ESG에 대한 통합적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공표된 이후 지난달 삼표산업이 처음으로 기소되었다. 그간 기업 현장에서 아웃소싱 하청직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평택항에서 300kg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아르바이트생 이선호,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적재 프레스에 몸이 끼어 숨진 제주 고등학교 실습생 이민호….

 

그간 우리 사회는 기업·산업 현장에서의 사고를 단순히 개인의 불찰로 전가하는 ‘위험의 개인화’를 정당화해 왔다. 아무리 외주업체의 파견 노동자라도, 아무리 어리고 숙련되지 못한 현장실습생이라도, 장시간 노동 환경 속에서 사고의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몰상식적이며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소비 주권과 인권경영

 

더 좋은 사회를 함께 꿈꾸는 길

 

우리 사회가 적자생존, 각자도생의 도식을 넘어 보다 인간적으로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적대와 혐오’를 극복하고 ‘공존과 상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개인 밖의 모든 인간이 ‘제로섬 게임’에서 나와 경쟁하는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서로 함께 ‘우리 사회’를 이루는 상호의존적 유기체라는 엄연한 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나의 주권, 표현, 행복이 소중하듯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인권, 표현, 행복이 소중하다는 절대적인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

 

1) [기후+] ‘파타고니아’의 기후위기 대응, 뭐가 다를까? ① https://www.biztribu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348
파타고니아 창업주 일가, 기후위기 대응에 지분 100% 기부… 4조2000억원 규모 https://futurechosun.com/archives/68347
2) 충북-아프간 난민 품은 진천을 향한 응원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941.html

 


글. 오세일(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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