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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말하다 [2023.05~06] #2 ‘돌봄과 인권’ 북토크 현장을 찾아서

 

‘돌봄과 인권’ 북토크 현장을 찾아서

 

봄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친숙해진 지금 우리는 얼마나 돌봄을 이해하고 있을까? 자식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쇠약해진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병원 간병인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이다. 이러한 생각을 인권의 관점에서 해체하고 인권의 언어로 구성한 ‘돌봄과 인권’ 책이 출간되었다. 여성학자인 김영옥 대표(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와 인권연구 활동가인 류은숙 대표(인권연구소 창)가 공동으로 저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돌봄과 인권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보건의료 현장에 접목·확장하기 위해 ‘돌봄과 인권 북토크’를 기획하고, 4월 한 달 동안 총 6회에 걸쳐 전국 6개 도시(원주, 광주, 대전, 부산, 대구, 제주)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북토크는 엄기호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의 사회로 진행하였다. ‘돌봄과 인권’ 저자 강연에 이어, 대담자는 임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 보건의료 분야 인권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이어서 지역별 이슈 전문가의 대담 순으로 진행하였다. 본 「인권」 지에는 광주에서 열린 북토크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지역별 전문가로는 이소아(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변호사가 함께하였다.

 

엄기호(사회자,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건강할 때는 자기 몸이 있다는 걸 잘 인식을 못하고 살거든요. 내가 아프고, 내 주변에 누군가도 아프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내 몸이 아팠을 때, 내 몸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 움직이지 않을 때 또는 내 부모의 몸이 그러할 때 우리는 그 몸을 모욕받지 않는 몸으로 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몸을 존엄한 몸으로 여기고 있는가가 중요해져요. 나이 드신 분들이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죽고 싶다고 얘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모욕과 관련되어 있어요. 인권과 연결되면서 몸의 문제를 존엄의 문제로 보게 됩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취약성에 대해서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내가 나의 몸이 존재하는 상태를 잘 지키고 스스로 존엄하게 살고자 하여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몸을 계속해서 추한 것이다, 내지는 모욕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런 방식으로 처리되는 상태까지 가기도 하잖아요. 과연 나의 결심만으로, 나의 뜻만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인지장애증이 심해져 자기를 통합적으로 지켜내기 어려운 노년기에 접어들면 자기 삶을 존엄하게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의 문제인 거죠. 예를 들어서 용변에 대한 자기 통제 능력없는 어떤 분이 바지 밑으로 뭐가 계속 흘러 나오는데 본인의 표정은 너무 평화롭고, 호의에 가득 차서 요양보호사를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해봐요. 그걸 보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저렇게 웃고 있어’라는 시선으로 그분을 바라본다면, 그 노인의 삶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부서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아,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묘하구나. 특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해도 기운을 낼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몸의 존재는 존엄하겠죠. 그래서 저는 단지 병원에 가서 주렁주렁 선을 달고 그 헐벗은 노출의 상태에서 죽고 싶지 않다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병원이든 집이든 어디에 있든지 나와 나를 돌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공간에서 어떻게 우리가 협력적으로 취약한 몸으로 사는 존재의 존엄을 공통 감각으로 깨달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대표) 인권운동에서 습관적으로 ‘취약한 아동’, ‘취약한 노년’ 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취약함’이에요. 취약함은 그 개인이나 집단한테 부착돼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아동과 노인이 원래 취약한 게 아니라 그분들을 둘러싼 상황이 그 사람에게 어떤 취약함을 강요한다는 걸 우리가 읽어야 해요. 인간의 보편적 취약성에서 출발하자고 강조할 때는 인간은 누구나 지금은 겉으로 당당하고 괜찮아 보이는데 누구나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거기에 응답을 잘하는 게 돌보는 거거든요.

 

이소아(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제가 32살인가 33살 정도에 항암 치료를 받았어요. 항암 치료는 7일 입원을 포함하여 6개월 동안 이어졌는데 낮 병동이라는 데서 서너 시간 주사를 맞고 일주일간 퍼져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병원에서는 의료적으로 해줄 게 없으니 나가라고 하고요. 왔다 갔다 하는 항암 치료를 대여섯 번 받고 방사선 치료를 했죠. 그 때 느낀 점은 병원에서 내가 치료의 대상인 건 맞는데 돌봄을 받지는 못했다는 거예요. 돌봄에 대해서 공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이 많이 편찮으셨을 때에요. 아버지 때는 아빠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의료적인 또는 비의료적인 방법이 있을까, 임종의 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같은 고민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상의할 사람이 없어요. 아버지뿐만 아니라 재활 치료가 필요한 엄마와 관련돼서도 신경외과에서 의견이 다르고, 정형외과에서 의견이 다르고 재활외과에서 의견이 다른 거예요.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이런 상황 속에서 일이 많이 발생하니까 언니도 저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죠. 짜증 안 내려고 돈을 쓰는데 돈을 아무리 써도 짜증이 나는 상황이 생깁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과정에서 중요한 모든 결정은 저희가 해야 해요. 다른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의는 했으면 좋겠다, 계속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엄기호(사회자,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지금 의료의 문제에서 분절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생각해보면,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 병원은 치료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3차 의료기관은 중환자들을 치료하는 게 중심이잖아요. 그런데 퇴원하면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 번 퇴원하신 분들이 그럼 다시 안 오냐, 그게 아니잖아요. 대부분 다시 오고,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면서도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군가는 돌보고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돌봄이라는 게 분절되어 있는데요.

 

‘돌봄과 인권’ 북토크 현장을 찾아서

 

임준(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의료를 얘기하면 서울과 강남에 있는 대형 병원을 떠올리고 의료는 의사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강의 핵심적인 주체인 나와 지역사회 주민이 배제된 채 의료체계가 형성되어 왔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 맺기가 어렵고 그냥 시장에서 돈 주고 사는 서비스 개념으로 발전한 거예요. 나를 지켜주고 또는 나아가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공적인 의료에 대한 경험을 오랫동안 못하다 보니까 공공의료에 대한 정의가 상당히 왜곡됐다는 생각이 드는데, 단적으로는 공공의료라고 하면 공공병원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공공의료는 공공병원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면서 교감하고 입원해서든 집에서 건강 관리를 하든 이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의료체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의 경험인데, 그분 부모님이 인지장애인 선망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부모님이 자꾸 기억이 없고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하셔서 깜짝 놀라 살펴 봤더니 약을 열다섯 개를 드시는 거죠. 여덟 알만 드시면 되는데 일곱 알을 더 드시고 있는 거예요. 다섯 개의 의료기관을 다니시면서 중복적으로 약을 먹고 있었던 거죠. 만약 그분이 주치의가 있어서 통합적으로 관리했다면 어땠을까요. 주치의 제도가 있으면 주치의랑 건강 문제를 상의하고 주체적으로 열심히 또 자기주장도 하고요, 그러면 의사는 여러 문제를 같이 평가하고 필요하면 병원에 검사도 의뢰하고 또 약도 조절할 수 있어요. 건강은 의료 영역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복지와 잘 결합되어야 건강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노인 중에 서울에 있는 노인들이 제일 건강해요. 대중교통이 잘 돼 있잖아요. 병원 가기도 쉬우니까 건강할 수밖에요. 대중교통이 없거나 불편한 곳의 허약한 노인들은 병원에 못 가죠. 그러면 의사나 간호사가 방문할까요? 그런 시스템이 없어요. 그들은 기본적으로 고혈압과 당뇨약을 못 드시게 되는 거죠. 허약할수록 고혈압과 당뇨 관리가 잘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방치되는 거예요. 이송 서비스, 돌봄 서비스, 활동 지원 서비스 등 복지 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의사와 간호사는 중간에 방문도 하고 협진도 하면서 영역을 넘어 서로 상의하면서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야 해요. 지역사회의 1차 의료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엄기호(사회자,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1차 의료기관이 현재 돌봄에서의 핵심 문제인 분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얘기해주셨어요. 그런데 복지나 의료에서 민간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데, 주치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의료를 공공화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임준(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공적인 성격을 강화한다는 것이 반드시 예를 들어서 공무원화 한다, 보건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1차 의료가 공적인 성격으로 공공의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민간 기관으로 개원하더라도 좀 더 지역 주민의 필요에 근거해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1차 의료가 운용되는 체계가 작동되면 그 속에서 공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1차 의료(GP)는 주치의로서 역할을 하는데 의사의 신분이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인입니다. 그런데 그 의료가 돈을 벌기 위해서 운영되지는 않습니다. 지역 주민인 환자가 신청하고 주치의로 등록을 받고 일단 등록되면 환자를 대변하는 사람이 된다는 거죠. 환자를 대변하려면 당연히 좋은 관계 맺기를 해야 할 것이고 의사의 역할은 의료를 넘어 여러 가지 상담과 교육 등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돌봄과 인권’ 북토크 현장을 찾아서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대표) 한국 사회에서 또 제일 얄팍한 게 공공이라는 단어잖아요. 공공돌봄, 공공복지, 공공의료라고 할 때 과연 사람들은 거기서 뭘 생각할까 다짜고짜 국가가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소아 변호사님도 말씀하셨지만 내가 부모를 돌보는 데 있어서 나를 도와주고 나와 상의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나 대신 내 부모를 돌보라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국가의 공공 인프라가 있어서 내가 잘 찾아가고 의논하면서 나를 또는 부모를 잘 돌볼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인프라 구축을 안 한단 말이에요. 그때 그 ‘공공’은 내 대신이 아니라, 내가 됐든, 누가 됐든 간에 인간으로서의 돌봄 책임에 응답하려고 할 때 잘 응답할 수 있게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게 국가의 몫이죠. 국가가 대신, 국가 이름으로 행해지는 돌봄과 복지 중에 나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돌봄 노동자를 물건 수입하듯이 외국에서 수입해 쓰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국가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절대 ‘공공’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공공’일 수 있으려면 배제되는 사람이, 인권 침해받는 사람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공공적’이기 위해서는 현명한 시민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김영옥(옥희살롱 대표) 좋은 돌봄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좋은 돌봄이라는 게 어떤 사람의 탁월한 능력 혹은 천성적으로 갖고 태어난 어떤 인성, 인품, 참을성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라 좋은 돌봄이 가능해지는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 그래서 법과 제도가 없어도 돌봄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매우 다방면에 걸쳐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으로, 혹은 영성에 기대어서 혹은 사회학적으로, 혹은 여성주의적으로, 그리고 인권 차원에서 대답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소위 ‘망상’ 상태에 있어서 일반인들이 쓰는 그 언어를 쓰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의 존재를 이해해 주고 인정하려고 애쓰고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갖는 분들이 주변에 많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도 없이 돌봄권이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글. 김현정(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기획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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