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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3.07~08] #2 군 사망사건, 조사관은 무엇을 보나

 

군 사망사건, 조사관은 무엇을 보나

 

2022. 7. 1. 국가인권위원회에 군인권보호국이 신설되었다. 기존 군인권조사과에는 없던 새로운 업무가 바로 군 사망사건 수사 입회이다. 군인권보호국 조사관으로서 군 사망사건 조사를 통해 경험한 점을 부족하지만 이 지면을 통해 나누려 한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고인의 살아 생전의 마음 길을 따라가려 애쓰다 보면 우리는 고인과 소통할 수도 있다. 고인이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사인(死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 해도 그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와는 격리된, 군대라는 폐쇄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는 정신적으로 힘겨워할 수 있다. 그런 이가 군대 내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면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은 일종의 수순을 거친다고 한다. 먼저 자살을 생각하고(Suicide Thoughts), 자살 계획(Suicide plans)을 구상하며, 결국 자살 시도(Suicide attempts)를 하게 된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 마음이 공존한다. 세상을 떠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하는 마음, 다른 한편으론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라고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특징을 염두하면 극단적 선택을 한 병사의 자살 생각은 외부에 나타날 수도 있다. 조사관은 고인이 된 병사의 메모나 수첩,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통해 확보한 메시지, 병영 생활 상담관과의 상담 내용, 지휘관과의 면담 기록, 의무 기록 사본 등을 두루 살피며 그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군대라는 환경은 병사, 부사관, 장교들의 건강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군 사망사건은 질병사 또는 사고사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조사관은 군대의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질병이나 사고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질병이나 사고를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 등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향후 추가 피해자가 발생할 여지를 확인해야 함은 물론이다.

 

성희롱으로 인한 사망은 어떤가. 상명하복의 위계가 상존하는 군 특성상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자가 신고할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 등 괴롭힘에 장기간 노출되면 피해자는 자신의 감정을 왜곡할 수도 있고,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등에 시달릴 수 있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뒤따를 수 있다. 성희롱 피해자들은 실제로 더 이상의 삶의 의미를 도출할 수 없고, 소속감 상실에 시달린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군에서의 성희롱은 일반 직장에서의 성희롱에 따른 자살위험보다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따라서 성적인 언어 또는 농담, 외설적 사진 게시, 부적절한 접촉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성적 괴롭힘 여부 등을 피해자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성희롱에 따른 군 사망사건은 부대적 원인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군 지휘관의 노력이 중요하다. 리더의 결정이 부대 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부대원들의 안녕을 살펴 우려점이 발견되면 충분한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사관 입장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볼 때, 지휘관이 병사의 마음을 좀 더 헤아리고 살폈더라면 사망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사망 사건의 유형이 무엇이든 부대적 요인은 언제든 존재하고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군 수사기관의 수사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군 수사가 종결되었다 해도 수사가 미흡했다고 판단되면 군 수사기관에 재수사할 것을 권고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 사망사건 조사관에게는 군이 투명하고 성의있게 사건의 수사를 유지하는지 엄중히 감시할 인권 감수성이 다른 사건에서보다 더욱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글. 이대일(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국 군인권조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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