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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돋보기 [2023.07~08] 자유의 ‘풍향계’, 집회·시위의 자유

 

자유의 ‘풍향계’, 집회·시위의 자유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집회·시위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 어느 정도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다.

 

‘집회’와 ‘시위’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모여 위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위력을 통해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므로 소음 발생, 통행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희들끼리 시위해라’라는 요구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평화적인 집회·시위로 인한 불편함을 수인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집회나 시위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다소간의 피해는 정당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집회·시위의 자유가 특별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절대적 권리인 것은 아니다. 집회·시위로 인한 ‘불편함’의 정도가 수인불가능한 경우, 집회와 시위가 폭력, 사회적 혼란 또는 증오의 확산 가능성을 포함하여 실제로 위험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미국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폭력 집회, 일본 극우세력에 의한 ‘혐한 집회’, 국내 여러 혐오표현을 동반한 ‘반대 집회’의 사례가 그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접하며 세상을 이해한다는 측면을 강조한 용어일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집단적인 의사로서 표현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된다.

 

한편, 집회·시위는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며 근대 민주주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도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권위주의 정권에 집단적으로 대항하는 경험을 거치며 민주주의가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집회·시위를 통한 집단적 의사표시는 첫째,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자를 압박하고, 둘째, 다른 시민들에게 소외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 이런 측면에서 시민적·정치적 권리로 이해된다.

 

우리 헌법 제21조 제2항이 집회 허가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이유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가결의 근본 요소인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함이고, 「세계인권선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유엔 자유권규약) 등 국제인권기준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갖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한다. 갈수록 복잡화, 다원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집회·시위를 통한 의견의 표출은 사회적 소수자가 다른 시민에게 자기를 표현하고, 시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통의 역할을 한다.

 

2020년 이후 한국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이유로 한 집합금지의 일부로서 집회의 금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혐오표현을 남발하는 ‘반대집회’,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차별적 제재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경찰이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를 금지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고,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불법시위 근절, 야간 집회 규제를 위한 입법 추진 등이 강하게 논의되고 있다. 모두 다른 시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가 제시되는데, 여기에서 ‘누구의’ 불편함과 안전이 문제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고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자 덕목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집회와 시위가 시민들에게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집회와 시위로 인해 겪는 생활상의 불편함은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연료인 셈이다. 과연 집회와 시위로 인한 불편함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일부 포기하고 싶을만큼 견딜 수 없는 수준인 것일까. 오히려 시민들은 의사결정자가 본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이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별적으로 집회·시위를 제재하거나 규제하려 하지는 않는지 감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집회·시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불법은 즉시 시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제재, 공권력의 사용은 정당하다’는 도식적인 논리에 반대해야 한다. 유엔 자유권규약 제21조는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가 인정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집회·시위의 사전신고 등 집회를 규율하는 법규의 집행 자체가 목적이 되어 규정을 위반한 집회를 곧바로 제지하는 근거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평화적인 집회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어느정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자유의 ‘풍향계’, 집회·시위의 자유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우리 사회 집회·시위 자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국제엠네스티는 국제법상 적법한 여러 집회가 한국에서는 ‘불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 정부가 자주 적용하는 신고 미비, 교통방해, 소음, 금지 시간 등의 요소는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집회 제한의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주최자가 평화적 의도를 표명했다면 그 집회는 평화적인 것으로 추정되어야 하며 정부는 집회 관리에 있어 평화적 집회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불법 집회’라는 용어는 시민들의 소통을 단절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에 반대하는 집회에서의 혐오표현은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 표현을 위축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집회·시위를 규율하는 법률 및 관행이 국제인권법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의 의사결정자가 교체될 때마다 이전에는 용인되었던 평화적 집회가 갑자기 ‘불법 집회’가 되고 시정의 대상이 되는 일은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

 

어떤 경우 어느 정도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은 복잡하지만, 기본 원칙은 평화적인 집회를 촉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먼저 시정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평화적인 집회를 불법화하고 위축시키는 입법과 관행일 것이다.

 

 

글. 이태윤(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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