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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23.07~08] 기후위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

 

여재훈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여재훈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비상근무입니다.” 서울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19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대한성공회유지재단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여재훈 센터장은 말했다. 센터 직원들은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24시간 아웃리치(노숙인 옹호활동)에 나선다. 얼린 생수와 식염수를 들고 다니며 거리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준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온 몸이 샤워한 것처럼 다 젖어요. 동절기 저체온증 위험에 놓인 분들보다 열사병에 놓인 분들은 누워계신 분들이 많으니 눈에 잘 띄어요. 하지만 발견은 쉬워도 더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노숙인이 기저질환이 있어서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면 위급한 상황이 많이 벌어지지요.”

 

그는 성공회 소속 신부다. 2009년~2019년 다시서기센터장을 지내다 성공회대 총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돌아왔다. 그는 “서울시립센터이기에 자격요건이 까다로운데 내가 신부 중에 자격요건을 맞췄기 때문에”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그 만큼 노숙인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해하는 이가 드물 것 같았다.

 

1990년대 후반 출범한 다시서기센터
1990년대 후반 출범한 다시서기센터

 

다시서기센터는 1990년대 후반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중산층이 몰락했던 시기와 같이 출발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노숙인 시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센터는 서울시와 정부 지원을 받아 그런 시설들을 교육하고 돕는 역할을 했다. 이후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노숙인 복지 사업이 이양되면서 센터도 직접 지원 사업에 나섰다. 서울역을 포함해 서울 강남 지역까지 포괄하는 대표 종합지원센터가 됐다. 그를 포함해 64명의 직원들이 일일 약 400~500명의 노숙인의 건강과 복지, 인권을 담당한다. 그는 노숙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전에 계실 때와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나요.

 

“10년 전만해도 서울역 앞에만도 450명의 노숙인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어요.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정부나 서울시의 주거지원, 공공일자리 제공 프로그램이 늘어서 그 수가 줄었어요. 그러다보니 노숙인 중에서도 (자립하기) 나은 환경에 계신 분들은 거리를 떠났는데, 이제 남은 분들은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 같이 더 좋지 않은 상황에 노출된 분들인 거죠. 여성 노숙인들도 늘었어요. 전체 노숙인 중 20% 정도가 여성이에요. 여성 선생님들은 정신질환을 겪는 분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요. 거리 노숙까지 내몰린 여성은 이미 부정적 상황에 노출된 적이 많은 분들이에요. 서울역 거리 노숙인만 세면 200명 정도인데 강남 지역까지 세어보면 300~350명 정도에요. 특히 고속버스터미널이나 가락시장과 같은 편의시설이 많은 강남 지역 노숙인이 많이 늘었어요.”

 

 

여름인데 준비하실 게 많으신가요.

 

“다음 날 날씨가 전날 예보 되잖아요. 주의보나 경보가 내려지면, 시에서 상황 발령이 떨어지지요. 그때는 시 공무원들도 순찰을 돌아요. 저희도 당연히 비상 근무를 해야 하죠. 아리수 얼린 물이나 식염제를 더 많이 확보해 두려 해요. 뙤약볕 아래서 술을 드시는 분들이 종종 있으신데 체온상승으로 정신을 잃을 수 있어요.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바로 위험해 보이는 분들을 발견해서 센터로 모시고 오는데 본인은 안 간다고 버티는 경우가 많죠. 그늘로 모시고 가서 쉬게 해드리지만 언뜻 보아도 좋지 않은 상황이면 119를 불러요. 어제도 119가 두 번이나 왔어요. 날이 더우면 짜증이 나니까 싸움이 잦아집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한 선생님은 시비가 붙으니까 자해를 하셨어요. 또 다른 분은 뇌전증으로 인해 발작을 하셨죠.”

 

 

기후위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

 

‘올해 여름과 겨울 날씨는 어떨까.’ 기후환경기자인 저는 항상 이상기후가 최우선 화두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온난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럼요. 점점 심해지고 있는 추세를 확실하게 느껴요. 겨울은 매년 좀 차이가 있어요. 추운 적도 있지만 안 추운 해도 있었어요. 여름은 2018년이 정점이었어요. 보통 3월까지가 동절기여서 저희도 3월이 지나면 긴장이 좀 풀려요. 4월부터 6월 중순까지는 여름 폭염을 준비하는 간절기잖아요. 그때 직원들끼리 워크숍도 가고 하는데 요즘은 동절기가 끝나는 3월이 지나면 4월부터 기온이 올라서 바로 여름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봄과 가을이 없어졌죠. 5월부터 더워지니까 당혹스러워요. ‘비정상적으로 기후가 움직이고 있구나’ 생각하죠. ‘가장 피해를 입는 대상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구나,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기후위기가 드러내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기후위기가 인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생명권 그 자체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에어컨 찬 바람이 잘 나오는 곳에서 시원하게 보내야한다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은 더 위험해지는데 선생님들이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어요. 대피소나 병원 연계 서비스 등이 잘 연계되고 지원되어야 하고, 또 불쾌감이 높으니까 싸움이 잦아지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책도 필요해요. 그리고 서울역 광장에는 노숙인들만 있지 않아요. 근처 남대문이나 동자동 쪽방이나 저렴한 고시원은 여름 한낮에 정말 더워요. 이 분들은 배출하는 탄소가 거의 없거든요. 부자들이나 잘 사는 사람들에게 폭염이나 한파는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방안에서 열사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고시원에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부담되어 못 틀어요. 생명권, 생존권과 직결돼 있어요.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받는 이들이 이분들이지요.

 

그런데 어떤 시민들은 노숙인이나 주거취약계층의 현재의 삶은 본인들이 선택한 결과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들이 게으르고 술먹어서 선택한 삶 아니냐는 사람들의 인식 말씀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센터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그분들은 대부분 교육 기회가 박탈된 이들이에요. 집안이 가난했고 부모 중 1명만 남은 가정에서 자랐어요. 보통 어머니는 도망을 갔고 아빠는 술 먹고 들어와 자식을 때렸어요. 제가 가출청소년쉼터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데, 지방으로 한 달간 일 나가나는 아빠가 아이에게 10만원을 주고 생활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바로 피시방에 가서 다 써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은 굶어요. 가출청소년 쉼터로 경찰이 애를 데려왔는데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거예요. 라면으로 버티다 도저히 안 되니까 경찰서 문 앞에서 쓰러진 거죠. 대부분 노숙인이 되는 출발이 그래요.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배운 것이 없어 선택하게 되는 쉬운 직업이 일용직이에요. 아니면 몸을 쓰는 일들, 호객 행위를 하는 일들이죠. 기술과 공부가 필요없는 일을 하는데 40대까지는 몸으로 버티지만 그 뒤로는 어려워요. 한국 사회에서 몸이 망가지고 건강이 무너진 분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기회는 점점 없어지죠. 우리 선생님들이 가끔 그래요. ‘저 아파트 내가 지었어. 저 관공서 건물 지을 때 등짐 내가 지었어’라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선생님들이에요.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여건 속에서 수입 없이 자기 살림 곳감 빼먹듯 전세금 빼서 생활하다 월세로, 다시 쪽방으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람이라도 거기서 성장했다면 상당수 사람들이 그 결과에 서 있을 가능성이 커요. 개인의 잘못과 게으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안고 가야하는 이들인 것이죠. 훨씬 더 적은 비용을 들여서 이 사회적 비용을 덜어낼 수 있어요.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이런 삶을 산다고 하기에는 우리 사회 안전망이 너무 허술해요.”

 

한 명이 누우면 꽉 찬다는 의미에서 고시원을 ‘관짝’이라고 부르는 그의 표정은 매우 서글퍼보였다. 노숙인들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대신 설명할 때는 세상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섞여있었지만 단호했다. 10여 년 동안 노숙인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비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내는 노력이라는 것을 그는 확실하게 깨달은 듯 보였다.

 

 

기후위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여유가 없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성장 일변도로 급성장한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을 결과론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대다수의 노숙인들이 흔히 말하듯 질이 안좋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남들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기대지 못해서 이런 삶을 살게 된 이들이 많아요. 이분들은 사회적으로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살다보니 주민등록 서비스도 말소되어서 혜택을 받을 수도 없지요.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이분들의 주민등록을 복원시켜서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서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에요. 국가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죠. 중년 남성이 바닥으로 추락했다면 다시 일어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사회가 사다리와 계단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과거에 택시기사였던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을 비하하고 욕하고 경계짓는 건 우리들 마음에 있는 어떤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생각돼요.”

 

 

기후위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

 

노숙인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당사자들인데 이분들에게 기후위기 문제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2020년 조천호 교수님 특강을 들으면서 깊이 있게 이해하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 역시 기후위기 문제를 들어는 봤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체감은 하지만 이러한 고통이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라는 인식을 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실제로 그런 것을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제한적이고 서로 정보공유를 하기도 어려워요. 거리 노숙인들이나 쪽방 사시는 분들은 날씨가 더워지는 걸 너무 쉽게 체감이 되지요. 하지만 문제의식이 있어도 어디에 요구하고 어떻게 의사표현을 해야하는지 알기는 어려워요. 스스로 나서기가 너무 어렵죠.”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이분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회적으로 두려움이 커지고 환경과 같은 여건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끊어지는 게 사회적 도움이에요. 지금도 예산 지원이 절감되고 있어요. 1인당 지원 금액을 정해놓고 계산을 수치적으로 하는데 사실 그건 관계가 없어요. 불이 나지 않는다고 소방서 예산을 삭감해서는 안되잖아요. 지금도 사회적으로 관심이 적고 시선이 부정적인데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거리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에 대한 관심은 늘었지만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소외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노숙인 숫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다 경계선에 있을 뿐이에요. 사회적으로 환경이 나빠지면 더 빠르게 내려갈 수 있습니다. 빈곤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배려가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재훈 센터장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는 관계 맺기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여재훈 센터장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는 관계 맺기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 차원으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솔직히 ‘인류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돼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다같이 멸망의 길로 가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요. 선진국에서 탄소배출을 많이 해놓았으니 개발도상국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말이 일리 있지 않나요?”

 

 

노숙인들의 삶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전보다 노숙인 복지 영역은 개선된 지점이 많아요. 그렇지만 결국 거리에서 노숙인들이 자기 주거를 갖고 살 수 있어야 하고 일이 있어야 해요. 일상의 복지가 좀 더 강화되어야하죠. 그들에게 적절한 주거지원을 해주며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주거와 일자리까지 연결해 지역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해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을 서로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관계맺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올해 여름이 2018년 여름만큼 더울까봐 걱정했다. 이날도 분주하게 거리로, 쪽방촌으로 나간 직원들과 함께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한 파수꾼으로서 자리를 지킨다. 노숙인과 쪽방, 고시원 주민들의 보호자이며 동시에 기후위기로 인권을 침해받는 이웃들의 피해를 기록 중인 감시자이자 증인이 강조한 것은 사람의 온기였다.

 

 

글. 최우리(한겨레 기자)
사진. 전재천(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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