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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23.07~08] 세계인권선언 75년이 지난 후의 노동자

 

- 제 23조, 제 24조 -

 

세계인권선언 75년이 지난 후의 노동자

 

지난해 1월, 80세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숨을 거두기 1년 전까지 어머니는 청소일을 했다. 나의 남편, 당신의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직후부터 시작한 일이었다. 30년 넘게 그 일을 하셨으니, 건물 청소에 관한 한 숙련된 ‘노동자’였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문 제23조,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 같은 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수십 층 건물과 아파트와 빌딩 어디에도 청소노동자의 자리는 없었다. 빗자루, 걸레 등을 보관하는 좁은 공간 바닥에 앉아 감독의 눈치를 보며 잠깐씩 쉬거나 싸 가지고 간 도시락을 드시며 새벽부터 일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곳은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청소도구의 자리였다.

 

병이 들고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으로 가신 어머니는 그곳을 당신이 평생 청소일을 하던 건물이라 생각했다. 반들반들 윤기나는 바닥과 계단을 바라보며 “저게 다 내가 닦은 거지……” 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분은, 허리를 펼 수 있는 작은 공간, 점심 한 끼도 제공받지 못한 노동자였고, 용역회사의 비위를 맞추며 다음 해 재계약을 할 때까지 불안에 떠는, 최저시급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21세기의 늙은 노동자였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노동을 사랑했다.

 

시어머니의 아들인 나의 남편은 결혼 후 25년을 공장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잔업 포함 하루 열 시간, 때로 주야 맞교대 12시간을 노동한다. 공장에서 그들이 쉴 수 있는 것은 점심시간 1시간, 저녁 식사시간 30분, 오전 15분과 오후 15분뿐이다. 식사시간은 근무 외 시간이니, 그들에게 주어진 휴식은 하루 30분. 휴게실 같은 것은 없다. 그렇게 일하며 받는 최저시급 임금은 2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한 가정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녀를 제대로 교육받게 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영화관에도 가지 못했고,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지도 못했다.

 

세계인권선언 75년이 지난 후의 노동자

 

어느 해 공장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만든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조합 간부 전원이 해고되었다. 그들은 조합활동 몇 배의 긴 시간을 부당해고소송으로 보내야 했고, 가족의 생존 앞에서 결국 무너졌다.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1948년 제3회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문> 제23조와 24조, ‘노동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권리’ 같은 것은 그의 삶에 없었다. 그들 노동자는 다만 기계처럼 일하며 늙어가고 있다.

 

얼마 전 건설노동조합에서 진행한 ‘수기 공모전’ 심사를 맡게 되어 많은 건설노동자의 글을 읽었다. 흔히 말하는 일용직 ‘노가다’로 살아왔거나 살아갈 사람들이 쓴 글이었다. 일상적인 임금 체불, 고용불안,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을 장담할 수 없는 강도 높은 노동과 죽음을 부르는 산재, 비인격적 대우…… 화장실조차 없어 건설현장 후미진 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그들의 삶과 노동은 1971년에 발표된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객지」의 간척 공사장 날품팔이 노동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50여 년 전 소설 「객지」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공사장 소장, 십장, 감독조, 밥을 대 먹는 함바에서까지 겹겹이 이루어지는 착취구조에 저항하지만, 누군가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항복하고, 다른 누군가는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바위산을 부수던 남포를 입에 물고 자신의 몸을 폭파한다.

 

“우리가 못 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 개선된 노동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남포를 입에 문 공사장 노동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심사를 보며 읽은 수기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으나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이웃, 일거리를 좇아 떠돌던 그들의 삶과 노동을 낱낱이 말해주었고, 노가다 김씨, 이씨가 아닌, ‘건설노동자’가 된 과정과 변화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과 떨어져 객지를 떠돌며 비좁은 숙소에서 생활하던 노가다가 집과 가까운 현장을 배정받아 ‘출퇴근’을 하는 노동자가 된 것, 컨테이너로 만든 곳이지만 휴식 공간이 생긴 것, 안전을 가장 앞자리에 놓고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 것, 욕설을 듣지 않게 된 것…… 그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 그들에게는 평생에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보편적인 인권을 가진 노동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그런 삶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고, ‘처음으로 직장인이 된 것 같은’ 눈물겨운 일이었다. 그 당연한 변화는 인권선언 제23조의 조항대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한’ 이후의 일이었다.

 

수기 심사가 끝난 직후 한 건설노동자가 노조 활동에 대한 탄압으로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50여 년 전 ‘남포를 입에 문’ 소설 속 노동자가 아닌 세계인권선언 75년이 지난 현실의 노동자였다.

 

30여 년 숙련된 청소노동자로 살던 나의 시어머니가 밝은 휴게실, ‘사람의 자리’에서 잠깐의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직원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25년을 노동자로 살고 있는 남편과 그의 동료들이 한 시간을 일하면 10분쯤은 볕을 쐴 수 있고,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설노동자들을,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노동조합이 더 이상 부정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제23조
1. 모든 사람은 일,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 조건, 그리고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하며,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회보장방법으로 보충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인간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가진다.

 

 

글. 이수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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