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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바로미터 [2023.07~08] 인권의 눈으로 보고 참사를 다시 쓰다

 

<10.29이태원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만들며

 

인권의 눈으로 보고 참사를 다시 쓰다

 

10월 30일, 새벽 3시반 쯤 깨어나 본 ‘속보’ 기사에 너무나 놀랐다. 분명 잠들기 전에는 몇 명이 안 될 거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서울에 대한 특권적 인식이 아니라 경찰 등 국가기관이 몰려있는 만큼 서울에는 안전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었다. 일과 시간이 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공연은 중지되고 참사에 대한 이야기는 ‘논란’으로 치부됐다.

 

왜 이런 대규모참사가 발생했는지 진단하기도 전에 정부여당의 책임자들은 ‘예방할 수 없는 참사’,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하며 국가의 책임을 차단했다. 연이어 피해자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분향소에는 희생자의 이름도 유가족도 보이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유족이 피해자 비난 때문에 이름을 안 쓴 것일까.

 

 

국가의 부재와 부정당한 추모와 애도

 

아니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참사 진행사항에 대해 공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가족들 간에 연락도 할 수 없게 했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참사 발생 40일만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꾸렸다. 누구나 차별없이 애도 받고 애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녹사평역과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는 경찰과 혐오세력에 의해 공격받으며 아주 어렵게 만들어졌다.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안에 있는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참사 이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들을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주목하며 사회적 애도를 위한 장소와 만남을 조직하는 일을 했다. 이태원역에 애도와 추모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생존자와 지역 주민,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애썼다.

 

그러나 2023년 1월 12일,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59번째 희생자가 됐다. 국가의 부재와 피해자 혐오를 방치하는 국가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날 참담함 속에서 ‘10.29이태원참사인권실태조사단’ (이하 조사단) 첫 회의를 하면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를 인권의 관점에서 더 듣고 정리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인권의 관점에서 참사를 다시 쓰다

 

10개 인권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피해자들의 존엄과 권리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의 부재와 책임,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썼다. 정부가 규정한 피해자의 범위는 너무 협소했고 지원의 내용도 한정됐기 때문이다. 조사단은 피해자들을 희생자와 유족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생존자, 구조자, 지역주민으로 나누어 박탈된 권리를 26명의 피해자들을 만나 조사했다.

 

국가가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책임론과 비난은 강화될 수밖에 없어 생존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목격자이기도 한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나름 우리로서는 준비를 했는데 매년 배치되었던 경찰이 없어 당황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는 다중인파의 위험성과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분석 보고서’가 제출되었으나 이 보고서는 무시되었고 용산서는 정보관 23명을 참사 당일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개최되는 집회 장소에 모두 배치하고 마약수사에 몰두했다.

 

참사는 10월 29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국가책임 부정으로 피해자들의 피해는 끝이 아닌 진행형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에도 애초에 사람 많은 곳에 간 사람이 문제라는 식으로 비난하며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자와 유족들을 고립시켰다. 국가가 책임을 부정한 공백에 혐오가 자리했다. 특히,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축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참사의 원인을 가렸다. 이태원은 술, 놀이, 문화, 여가를 즐기는 자유로운 곳이며 이주민, 성소수자 커뮤니티 등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다양성의 공간이었다. 혐오는 쉼과 여가를 즐기는 다양성의 공간을 부정하는데 동원됐다. 이로 인해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지역주민과 상인들도 힘들어했다.

 

<10.29이태원참사-인권으로 다시 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는 크게 5부로 나누어 서술했다. 1부에는 배경과 이태원참사를 인권침해사건으로 바라보는 이유를, 2부에는 이태원참사에서 박탈된 권리를, 3부에서는 피해자 그룹별로 현재까지 겪고 있는 고통을, 4부에서는 국가의 책무를, 5부에는 언론을 비롯한 사회구성원의 책무를 다뤘다. 짧지 않은 보고서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주체로 보지 않는 국가의 시선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 보고서가 작은 나침반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에게 그런 권리도 있어요?”

 

이태원참사 초기, 필자가 유족들에게 정부에 자료요청을 하라고 했을 때 들은 말이다. 피해자들은 초기에 재난 복구와 피해자 상황에 대해 알 권리가 유족들에게 있는지도 몰랐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하는 근간이며, 다른 기본권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안전을 권리로 보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자들을 권리의 주체로서 존중하기보다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지금 서울 시청 앞에는 유가족들이 직접 세운 시민분향소 외에도 국회 앞에는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장이 있다. 5만 명이 국민동의청원으로 입법발의하고, 국회의원 183명이 발의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소관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에 대한 권리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참사의 원인과 진행, 이후 책임을 포함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권리이며, 정보에 대한 접근 및 피해자들의 참여권 등을 포괄한다. 이제라도 특별법 제정으로 국회는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연히 살아남는 참사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아직 진행형인 참사로부터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애도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보고서 발표회 날 참석해 심경을 말해준 ‘거의 맨 끝에 깔려 있었던’ 생존자의 말을 함께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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