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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말하다 [2023.07~08] #3 인권감수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권감수성은 뭘까. ‘인권’과 ‘감수성’이라는 두 추상적인 단어가 만나 만들어내는 모호한 개념. 그래선지 선뜻 입에 올리길 주저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2탄 강연을 방청하면서 인권감수성이란 모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선, 즉 인류애를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번 강연에는 최우리 환경 전문 기자, <어떤 양형 이유>의 저자인 박주영 부장판사, 고(故)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님, 국가인권위원회 박진 사무총장, 그리고 변호사이면서 무용수인 김원영 님이 연사로 출연하여, 자신의 분야와 위치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류애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그야말로 인권감수성을 가득 충전할 수 있는 자리여서 여운이 짙게 남는 경험이었다.

 

 

‘지구를 쓰다가 생각한 것’ - 한겨레 기후변화팀 기자 최우리
‘지구를 쓰다가 생각한 것’ - 한겨레 기후변화팀 기자 최우리

 

‘기후위기와 인권’
- 한겨레 기후변화팀 기자 최우리

 

우리가 사는 지구가 아프다고 할 때, 선생님은 다 녹아 호수가 되어버린 북극 한복판 얼음조각 위에 홀로 앉아 있는 북극곰의 모습을 보여주곤 하셨다. 누군가는 북극곰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지만, 외로운 북극곰의 사진을 보고 기후 위기가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최우리 기자는 매 계절을 꼼꼼히 기록한다고 한다. 첫 모기를 본 날을 그해의 첫 여름날로 기록하고, 장롱에서 롱패딩을 꺼내는 날을 그해 겨울의 시작으로, 다시 집어넣는 날을 그 겨울의 끝으로 말이다. 최우리 기자는 기후 위기로 인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어떤 사람은 그 해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자연 재해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우리의 나날을 설명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을 기후위기. 왜, 어떤 면에서 인권 문제인지,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풍부한 사례를 들어주어 심각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던 시간이었다.

 

 

‘여러분이 곧 법입니다.’-부산동부지법 부장판사 박주영
‘여러분이 곧 법입니다.’-부산동부지법 부장판사 박주영

 

‘여러분이 곧 법입니다.’
- 부산동부지법 부장판사 박주영

 

강력범죄 사건의 기사 하단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우리나라 양형 기준이 너무 약하다거나 솜방망이 판결을 낸 법관을 탓하는 식이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길거리에서 피고를 만났을 때의 기분, 법 해석과 국민 법 감정 사이의 고민 등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인공지능 기술 고도화로 법관도 미래에는 사라질 직업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박주영 판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복잡한 이해관계와 주장들이 얽혀있는 법정에서 컴퓨터가 아닌 ‘인간’ 판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법은 우리가 좀 더 편리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약속한 규칙이지, 법이 인류보다 선험적으로 존재해온 절대자는 아니니까. 결국 이 강의의 제목이자 박주영 부장판사의 마지막 문장인 “여러분이 곧 법입니다.”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제 아들의 이름 윤승주를 돌려주고 싶습니다.’-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안미자
‘제 아들의 이름 윤승주를 돌려주고 싶습니다.’-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안미자

 

‘제 아들의 이름 윤승주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안미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승주가 군 입대 후 ‘고(故) 윤 일병’이 되어 돌아왔다. 고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님은 주변을 살뜰히 잘 챙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던 아들이 태어나 자라온 과정부터 군입대 후의 일화까지, 최대한 덤덤하게 그러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풀어내며 아들을 회상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라고 하더라도, (윤승주 일병이 그러하였듯이) 모든 군인들은 결국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다. 단지 전투에 활용해야 할 ‘자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이 사실을 모든 군 지휘관들은 잊지 않아야 한다. 윤승주 일병이 세상을 떠난 이후 군 인권은 나아지고 있지만 더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전진해서는 안 된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모든 군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와 ‘이미’ 사이, 인권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박진
‘아직도’와 ‘이미’ 사이, 인권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박진

 

‘아직도’와 ‘이미’ 사이, 인권
-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박진

 

인권 업무를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에 대한 언급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자연스러운 일상이던 때가 있었던 거다. 박진 사무총장은 ‘여전한’ 것들에 대해 말했다. 가령 면접에서 직무에 적합한 질문보다는 여전히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거나 춤을 춰보라고 요구하는 식.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보도를 접하면 아직도 발생하는 이런 침해와 차별을 개탄한다. 그래서 인권위는 오늘도 ‘아직도’와 ‘이미’ 사이에서 사건을 조사하며 늘 반 발자국 앞서 나가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평등법이 만들어진다고 불평등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에 제동을 거는 평등법 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변호사이자 무용수 김원영
변호사이자 무용수 김원영

 

‘인간이라는 불완전함과 대체 불가능성’
- 변호사이자 무용수 김원영

 

가상현실의 캐릭터가 광고모델로 활약하면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니 AI 프로그램으로 만든 모델은 실제 배우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게 비장애인 모델을 구현하는 AI 프로그램이 장애인의 모습을 그리면 어떻게 될까?

 

김원영은 AI로 만든 사람의 모습들을 통해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가 어렵다는 설명을 한다. 나의 ‘불완전함’은 누구에게서도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완전하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신체의 ‘불완전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춤을 추면 스스로가 더욱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춤을 추기 전 살아온 기나긴 시간은 그런 점에서 흐릿한 시간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신체의 장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노력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불완전함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지만, 나의 부족한 모습까지도 오롯이 인정하면 편안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김원영은 그렇게 무용수로서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선명해졌다. 그리고 조언한다. 선명해지고 싶다면 춤을 추라고.

 

사무실에서만 인권을 고민하는 우리는 종이에 적힌 문장에서 인권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세바시 강연을 방청한 뒤 두꺼운 문서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감수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사람이 인류애를 가지고 연대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당연한 사실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으니 꼭 강연이 내게 준 선물 같다. 인권감수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사무실에서 서류와 분투하기보다는 인권 현장의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인권감수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글. 유소연(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운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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