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4 > 깊이 보기 > #1 세상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

깊이 보기 [2024.03~04] #1 세상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

 

- 세월호 참사 10년의 기억 그리고 기록 -

 

기록하는 일은 참사를 목격한 사회구성원들의 애도 과정이다. ‘304명을 하루 아침에 잃었는데, 우리 사회는 과연 괜찮을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건네고 사회 속에서 답을 찾으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세상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

 

우리 모두가 목격자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는 너무도 크게 슬프고 무겁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아직도 세월호참사를 이야기하냐’고 되묻는다. 그럼에도 4.16 세월호참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간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날 자신의 일상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한다. 이어서 자신이 목도하거나 소식을 들었던 날에 어떤 충격감을 느꼈는지 말한다. 우리는 모두 목격자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원한 적은 없다. 목격자인 우리나 가족을 안타깝게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도,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둔 미수습 다섯 가족, 직접 겪고 돌아온 생존자들 모두, 세월호참사를 겪기를 원한 적 없다. 남겨진 피해자들은 그 경험을 다른 이들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공식명칭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인 이유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안산에서 피해가족 곁에 서서 함께 해온 시간도 그만큼 흘렀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여름 단식을 시작했다. 가족이 떠난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삭발을 했다. 세상을 떠난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온 우주와 같은 자식을 혹은 부모를, 형제자매를 잃었으니, 모두를 잃은 것과 같아 목숨밖에 없다는 간절함이었다. 외침이고 비명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목소리가 닿기나 할까’ 싶게 잘 전해지지 않았다. 언론은 무심하리만큼 보도할 만한 ‘그림이 되어야’ 나타났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간절함으로

 

그 모든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도보 행진을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카메라를 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현장의 상황을 전달하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_youtube의 제작자이면서, 4.16세월호참사로 딸 지성이를 잃은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고 10년을 기록해 왔다. 5,000개의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 했다. 어떤 엄마는 바느질을 하고, 어떤 엄마는 연극을 했다. 어떤 아빠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많은 정보를 모았고, 어떤 엄마는 노래를 불렀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 교실을 지키고, 바닷뻘이 가득한 유류품을 닦았다. 다양한 활동 및 행동으로 걸어가는 피해가족들 대부분의 현장에 지성아빠의 카메라가 있었다.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4.16세월호참사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어 했다. 대한민국이 사람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나중에 죽고 나서, 자녀를 만나면 ‘너가 별이 된 이유가 000때문이었더라. 그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엄마, 아빠는 이런 노력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이기 위해 10년째 4월 16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한 지성아빠의 노력은 2024년 4월 3일, 10주기를 맞이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의 세월]로 세상에 나온다.

 

4.16세월호참사로 놓쳐버린 사람들 중에는 단원고등학교 희생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은 1997년생이었다. 10.29이태원참사가 있었던 다음 날 만난 세월호 엄마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만나 건넨 말이 ‘우리 아이들 또래가 그렇게 많대… 아까워 어떻게 해…’ 였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태어난 1997년 이후에는 유독 사회적 참사가 많았다. 1999년 씨랜드 참사, 1999년 인현동화재참사, 2002년 사스, 2003년 2.18대구지하철참사, 2011년 가습기살균제참사, 2013년 7.18공주사대부고체험학습참사-구 태안해병대참사-, 2014년 2월 마리나리조트붕괴참사, 2014년 4월 세월호참사,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2022년 이태원참사, 2023년 오송지하차도참사까지.

 

“1997년에 태어난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022년 이태원 참사로 또다시 또래 친구들을 잃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고 생명존중이 우선인 사회 기필코 만들어 내겠다.”

 

10.29 이태원 참사 추모가 한창이던 지난 2022년 11월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붙어있던 추모 메시지 중 하나다. 20대인 1997년생들이 살아남기조차 힘겨운 사회가 현재의 대한민국인지도 모른다.

 

“추모식을 다녀오고 ‘내가 대신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과 삶에 대한 부채감이 들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질 자격이 과연 있나 고민하고, 방황하며 괴로워 한동안 침전해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고민 끝에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9년 동안, 각자 혼자서 애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사회 분위기에 짓눌려 말을 꺼내어 감정들을 전할 수 없었다고 한다.”

- 세월호참사 10주기 시민위원 윤선영 -

 

 

[바람의세월] 연출 문종택 님
[바람의세월] 연출 문종택 님

 

 

기록하는 일을 기록하는 행위

 

4.16세월호참사로 별이 된 친구, 그 친구를 기억하는 97년생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라이브97>을 포함한 세월호 10주기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세가지 안부]와 한편의 장편 극영화 [목화솜피는 날]도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2024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이 작품들은 재난 참사가 발생한 이후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참사를 기록하거나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참사를 각색하는 일이 피해자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할 수밖에 없다. 재난참사의 무게에 눌려 시나리오로 쓰는 일에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록한다. 기록하는 일은 참사를 목격한 사회구성원들의 애도 과정이다. ‘304명을 하루아침에 잃었는데, 우리 사회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 ‘과연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내가 목격한 참사 이후에 남겨진 가슴 아픈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건네고 사회 속에서 답을 찾으며 슬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재난참사 피해자에게 기록하는 일은 기억하는 행위다. 더 이상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자녀의 이름 석자, 존재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하루도 허투루 살 수 없었다. 2014년 이후 하루를 1년 같이, 그러나 10년을 하루 같이 살았다. 긴 10년의 날들은 백서가 되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10주기 공식기록집 [502번의 금요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2014∼2023년의 기록], 단원고 생존자 그리고 희생자 형제자매, 그 곁을 지킨 시민의 말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 세월호 생존자, 형제자매, 그 곁의 이야기], 304명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한국작가들의 목소리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 304낭독회 2014∼2023선집]이 2024년 3월 4일 출간한 세월호참사 10년의 삶을 압축한 백서다.

 

[세월호참사10년 3종의 책] 소개
[세월호참사10년 3종의 책] 소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결과물

 

수많은 재난참사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대부분의 백서는 공공기관들의 공적을 작성한 기록에 불과했다. 인천인하대학생봉사활동춘천산사태참사, 7.18공주사대부고참사 두 참사 정도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기록한 백서일 뿐이다. 세상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재난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뉴스에 오르내리고, 후원금을 전달하고 나면 그 이후의 삶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치부해 왔다. 그런 재난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 선언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자식의 얼굴을 거울삼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애쓴 피해자들의 기록이다. 다소 첨예한 질문에도 ‘다양한 의견을 기록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백서다.’라며 답한 그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궁금한 기록집이다.

 

2014년 4월 16일,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함께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포스트잇에 적던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잊혀지지 않고자 했던 피해자와 애도의 마음을 사회에 질문으로 던지며 기록하던 행위는 그날의 약속을 지키는 것일 수 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중일 게다. 떠나야 하지 말아야 할 배가 떠나고, 위험에 처했을 때 구조하지 않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약속의 결과물로 영화를 만들고, 책을 출간한다. 이로써 시민들이 잠시 잊었던 2014년 4월 16일의 마음을 떠올려, 더 이상 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걷기를 희망해 본다.

 

 

글쓴이 박성현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참사 초기부터 2018년 7월까지는 안산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세월호참사 형제자매 공간운영과 피해가족지원을 해왔다.

 

글 | 박성현(4·16재단 나눔사업1팀 팀장)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