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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콩떡 인권위 [2024.03~04] 인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어떤가요? 왠지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평범하고 무색무취해 보이는 인권위 공무원의 모습 속에 숨겨진 말랑말랑한 생각과 이야기를 매월 다른 주인공을 통해서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인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Q. 인권위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원터와 썸머원터썸머_(솔직하고 말랑한 인터뷰 진행을 위해 조사관들의 이름은 닉네임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길을 가다 우연히 인권위 건물(서울 중구 을지로3가)을 보게 되었어요. 그 순간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에 한 번 지원해 볼까’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업무로 접하게 된 ‘인권’이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원터와 썸머원터썸머_ 처음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우당탕탕 하는 시간이 있었죠. 업무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Q. 몰랐던 것과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썸머썸머_과거 인권위가 ‘살색’ 크레파스 명칭을 ‘살구색’으로 바꾸라는 권고나 학생의 두발자유, 교내 핸드폰 사용에 대한 권고를 통해 인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장된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저도 삶에서 혜택을 보고 있었지만, 제대로 관심을 갖기 전에는 그게 인권위가 한 일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죠. 학생일 때는 그냥 학교가 시키면 ‘학교 말이 맞는가 보다’하고 수긍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게 큰 차이인 것 같아요.

 

 

Q. 좋은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권위 업무를 통해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낀 경우가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혹은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원터원터_보람도 크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점도 많았어요. 장애인 당사자인 진정인만 혼자 집에 둔 채로 다른 가족들끼리 외식을 나가는 게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이라는 진정이 있었어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사적인 관계와 내용이 얽힌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인권위가 사건을 통해 구제하고자 하는 권리는 무엇일까’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있었던 기억도 있어요.

 

썸머썸머_진정사건을 계기로 피진정기관이 변화한 모습을 확인할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진정인이 아닌 피진정인의 변화라는 점이 의외인데요?

 

썸머썸머_권고 결과가 진정인에게 직접적으로 와닿기 어려운 때도 있어요. 과거 위원회 권고 결정 중에, 민사소송 과정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수어통역을 자비로 부담하게 한 것이 ‘실질적인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차별이라고 결정한 사건이 있었어요. 피진정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해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요. 진정인은 인권위 권고결정이 나기 전에 이미 소송이 끝나서, 피진정인이 개선한 내용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는 없었거든요.

사회 전체적으로는 정책 변화로 차별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진정인은 문서로 된 결정문을 받아보았다는 것 외엔 권고로 인한 직접적인 개선 효과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Q. 개인 입장에서는 권리구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동안 인권위가 해온 일이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변화에 기여한 부분도 있겠죠?

 

썸머썸머_보이지 않지만, 변화는 계속되는 것 같아요. 인권위가 현재 수준보다 10보 앞선 권고를 하면, 피진정기관은 수용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5보 정도 진전된 실행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원터원터_그 변화가 진정인이 원한 10보 진전의 개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보람을 주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인권위가 국가기관 등의 정책과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한 정책권고 기능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고 봐요. 큰 틀에서 방향을 잡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람들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거죠.

 

 

Q. 이제 인공지능(AI) 시대가 온다고 하잖아요. 방대한 자료를 무기로 인권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조사 업무를 맡게 되면, 조사관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썸머썸머_진정사건 조사는 결국 사람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라서 완벽한 대체는 어렵지 않을까요?

 

 

원터원터_앞으로 나올 인공지능은 감수성도 학습한다고 하지만 조사 업무는 사건과 관련된 인간적인 감정의 이해와 공감도 중요하니까, 저는 썸머 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Q. 그러고 보면 인권위가 우리 사회 전체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9시 뉴스에 자주 나오는 기관인데, 왜 인권위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원터원터_어쩌면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한 일상의 삶 자체가 인권이지만, 아직도 인권은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겠죠.

 

 

Q. 저희 「인권」 잡지도 홍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진정할 일도, 억울함을 호소할 일도 없어서 인권위의 존재를 모르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세상을 꿈꿔볼 수 있겠죠?

 

원터와 썸머원터썸머_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야겠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인권이라는 인식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권 이슈 중의 하나가 되었잖아요? 인권은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테고, 인권위의 역할과 존재를 모르는 세상이 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인권 문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권위의 존재를 확장하고 각인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감수성을 학습한 인공지능에게 조사관 일자리를 빼앗기는 날이 더 먼저 올 수도 있을 것 같지만요.(웃음)

 

 

글 | 「인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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