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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6.04] 영화 <4등>을 통해서 본 스포츠인권

정리 남경혜 사진 박영주

 

영화 <4등>을 통해서 본 스포츠인권 01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12번째 영화 <4등>을 보고 스포츠인권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대담입니다.(편집자 주)


사회 : 정용철(서강대 체육학과 교수)
대담 : 김덕진(체육시민연대), 김대현(서울체육고등학교 교사), 김상범(중앙대 교수), 박혜숙(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
          허현미(경인여대 교수)


 


  정용철 : 우선 영화 <4등>을 본 느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들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박혜숙 : 영화에서 아이가 수영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 참 잘 그려졌어요.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엄마가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맞고서라도 1등 하기를 바라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학부모가 자녀에게 어릴 때 수영을 시켰대요. 그런데 수영코치가 키판으로 아이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있다는 거예요. 좀 충격적이었지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구나 싶었고요. 저는 스포츠인권이라는 주제가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난 영화는 처음 봤는데 많은 분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더라고요.


  김대현 : 영화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첫 장면에서 아이가 대회에 나가서 4등을 해요. 엄마는 4등이라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는데 아이는 라커룸에서 장난치면서 놀아요. 아이는 그저 수영이 좋아서 수영을 한 것이지 4등은 중요하지 않은 거지요. 그게 그 나이의 아이들 모습이에요. 전 그 장면의 의미가 아주 크다고 보았어요.


  김상범 : 일상에서 아이를 통해서 소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방식으로 어른들의 욕망을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지를 영화가 담담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요. 경쟁 사회 속에서 살면서 1등을 하지 못하면 분노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럴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참여를 통해서 얻어내는 값진 가치가 아니라 승리에 매몰되어 있으면 우리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영화가 참 잘 짚고 있어요.


  김덕진 : 저에게 <4등>은 서편제 이후 처음 본 영화예요.(일동 웃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잘 만들었다고 느꼈는데요. 요즘 시대 어머니 모습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어요.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자식을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줍니다. 아이들이 이유 없이 옆의 아이들을 때립니다. 본인이 스트레스 받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건 부모의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이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이 시대의 무한경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허현미 : 영화가 폭력의 속성을 잘 표현했어요. 영화 속에서 코치 또한 어릴 때 맞으면서 운동했고 본인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또 폭력을 행사해요. 폭력의 사회화와 대물림인 거죠. 거기에 엄마는 폭력에 대해 묵인하고 방관하고요. 폭력의 사회화와 대물림 그리고 묵인과 방관으로 폭력이 발생하는 거예요.

 

 

영화 <4등>을 통해서 본 스포츠인권 02

 


  정용철 : 영화 <4등>의 준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스포츠인권이 제대로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상범 :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왜 그렇지 못한지를 고민해보면, 누군가 경쟁 시스템을 만들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조적 문제죠. 우선 소년체육대회 이런 거 없애야 합니다. 그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대회에 출전시키고 등수를 매기는 것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체육시민연대)는 소년체육대회, 전국체육대회 학생부 없애라고 하고 있지요. 운동하는 학생들이 경쟁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런데 국가 입장에서 보면 그 경쟁 시스템이 메가 이벤트예요. 전국체육대회를 예를 들어보면 도시마다 개최하면서 도시 인프라가 생기고 수익이 나고 정치적인 홍보를 하는 데 아주 효율적이에요. 그러니 그게 쉽게 없어지지 않지요. 스포츠계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부분이 많은데 쉽게 해결되지 않지요. 누구나 시스템 속에서 몬스터가 될 수 있어요 사실 우리도 이미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걸 인식해야 해요.


  정용철 : 스포츠 현장에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면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련의 절차는 있는데 그 이면까지 들어가지 않아요. <4등>에서 엄마와 코치가 보여주는 행동에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답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게 더 절망스러운 거죠.


  김대현 : 저는 <4등>이라는 제목을 보고 4등들을 위한 영화인가 생각했는데요. 4등, 5등, 6등 들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스포츠 체계가 생활운동 체계도 아니고 엘리트 체육 체계도 아니에요. 체육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역사가 지금까지 오고 있어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죠. 아이들이 1등, 2등, 3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대학 진학 때문이에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운동할 수 있거나 취업할 수 있어야 해요. 아니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종의 세컨드 잡으로 운동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합니다. 외국 선수들을 보면 직업이 따로 있어요. 그리고 올림픽에 나가는 거예요.  운동을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대학 간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체육계를 보면 대학 가서 운동 포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학생뿐만 아니라 지도자도 굉장히 불안한 고용 상태인 거죠. 실업팀에서 한 달에 월급 180만 원 받는 코치도 있어요.


  김덕진 : 음악, 미술, 발레 등 수없이 많은 분야가 영화 <4등>과 같은 상황일 거예요. 사실 스포츠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분야에 걸친 문제라고도 볼 수 있지요.

 

영화 <4등>을 통해서 본 스포츠인권 03

 


  김대현 : 또 문제는 운동하는 학생들이 인성 교육, 도덕성 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요.


  김상범 : 제가 그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 운동부가 있는데 운동부 학생들이 선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한 번은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실 뒤쪽에서 대학 운동부 학생들이 다 들릴 정도로 쑥떡거리면서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나오게 해서 강의시간에 이렇게 떠들면 어떡하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외국 선수와 초청 경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강의 중간에 나가야 한다고. 그러면 이런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해야지 강의를 방앞에서 강의하는 나는 어떤 생각이 들지 생각해봤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 해줬어요. 대학교 2학년생들이 그런 것조차 모른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나요?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을 전혀 모르더라고요.


  허현미 :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도덕성과 룰을 지키는 건데 참 모순적인 상황이네요.


  정용철 : 제가 운동하는 어떤 학생에게 물어봤는데 그 학생 대답이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공부 끊었어요'라고 표현해요. 운동하는 애들은 학교 다니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배우지 못하는 거죠. 학과목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맺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도 배우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는 괴리된 채 운동부라는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자기들끼리만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일반 사회로 나오면 본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스포츠인권이 맞지 않고 운동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아야 할 권리도 포함되는 거지요. 이런 것을 어디서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고민해야 해요


정용철 : 영화 <4등>이 우리 사회에 참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네요. 많은 분이 <4등>을 보시고 스포츠인권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4등>을 통해서 본 스포츠인권 04

 


남경혜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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