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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1] ① 사형제는 유지되어야 하나?

글 홍성수

 

자료사진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에 대한 사형?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늘 사형을 부활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다. 2000년대 이후만 해도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오원춘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사형제 부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작년에도 어금니 아빠 사건을 계기로 다시 사형제 부활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도 사형 집행을 부활하자는 청원이 올라온 바 있다.


정확하게는 사형제 ‘부활’이 아니라, 사형 ‘집행’이 문제다. 한국의 현행법은 여전히 사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두고 있고,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20년이 지난 셈이다. 하지만 사형제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첫 번째는 사형제의 효과다. 과연 사형제가 흉악 범죄를 예방하는데 기여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두 번째는 사형제의 정당성이다. 사형제가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정당한 형벌인가 하는 점이다.  

 

사형제는 흉악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가?

흔히들 사형제가 (흉악)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치밀하게 모의한 범죄에서는 어차피 ‘발각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발각될 경우 사형의 처벌을 받는지 여부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충동적인 범죄는 말 그대로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형제 유무가 범행 결심에 별반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형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흉악 범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사형 대신 무기징역 등 여전히 중형에 처해진다.

 

사형제를 폐지하게 되면 감형없는 절대적 종신제를 도입하자는 대안도 제기된다. 하여간 아예 검거되지 않거나 무죄를 받는다면 모를까, 사형이 없다고 해도 무기징역 등 중형에 처해지는 상황에서 사형제는 범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범죄 관련 학회들의 전·현직 학회장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8%가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상식과 달리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는 것에 학계 의견은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사회 백과사전>(Encyclopedia of Law & Society, 2007)도 “대부분의 사회과학 연구는 사형제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사형과 종신형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는 “사형을 안 하니 흉악범이 너무 날뛴다. 사형제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문재인 후보는 “사형제는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실증됐다"고 맞섰는데,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말이 정확한 것이었다.

 

 

정의의 여신상

 

 

사형제는 정당한 형벌인가?

사형제가 정당한 형벌인지도 문제가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오심의 가능성이다. 한국의 경우 1995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재판을 받은 강력범죄 사건 중 1심에서 유죄가 나온 것이 2심에서 무죄로 바뀐 경우가 무려 540건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973년 이후 사형선고 후 무죄 방면된 경우가 150명 이상이다. 1973년부터는 1999년까지는 매년 3건 정도, 2000년부터 2011년까지는 매년 5건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사형은 되돌릴 수 없는 형벌이다. 설사 나중에 오심이 밝혀져도 복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사회의 사형 폐지 흐름

국제사회에서도 사형 폐지는 이미 지배적인 흐름이다. 현재 사형을 완전히 또는 실질적으로 폐지하고 있는 국가가 140개 국가로,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다.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르완다, 토고, 피지, 부룬디, 몽골 등이 동참했다. 2007년 12월 유엔 총회에서는 ‘사형 폐지를 위한 글로벌 집행유예 결의안’ 채택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1년에 10명 이상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중국, 이란, 사우디, 이라크, 미국, 수단, 예멘, 이집트, 소말리아, 요르단 정도다. 미국은 선진국 중 예외적으로 사형제를 두고 있는 나라지만 사형제를 폐지하는 주가 점차 늘고 있고, 미국 전체로 봐도 최근 집행 건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미시간,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 주로 동부나 북부 쪽의 18개 주가 사형제를 폐지했고, 미국 전체 사형 집행의 80%는 남부에서 집행되고 있다.


한국 국회는 2011년 유럽과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유럽에서 인도된 범죄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서약했다. 범죄 후 유럽으로 도피하면 사형 집행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체포된 범죄자만 사형에 처할 수 있다면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 한국에서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여론은 사형 존치가 많지만, 전문가와 국회의 의견은 다소 차이가 있다. 2015년에 변호사들은 폐지에 47%가 찬성했고, 2009년에는 형사법 교수 132명이 사형 폐지 성명을 냈다.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는 절반 넘는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 법안에 서명을 했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 10명이 사형 폐지 법안을 내기도 했다. 2015년에는 7대 종단 지도자들이 사형제도폐지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사형제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1996년에는 7:2, 2010년에는 5:4가 나왔으니 위헌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사형제 폐지와 사회의 책임

흔히 사형제를 통해 범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실 사형제는 효과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 세계 각국이 사형제 폐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더 문제는 사형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사형은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범죄 예방을 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국가는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간다. 진정으로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 정책이 필수적인데 사형 집행과 동시에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면책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범죄가 발생하기 않도록 하는 사회적 여건을 갖추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사형제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나 정치인에게 유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형제와 피해자 문제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피해자의 문제다. 흔히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해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 주변 인물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에 대한 사형이 그 사회 복귀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있다. 실제로 사형은 마치 국가가 피해자를 위해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문제를 봉합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반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는 사형 대신 피해자 가족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노력에 더 힘을 쓸 수밖에 없다. 사형을 집행하는 대신, 살인을 막지 못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더 무겁게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제에 반대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책임을 느끼고, 사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에 반대한다는 것은 범죄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더 넓고 깊게 지겠다는 의지로 이해되어야 한다.02

 

화면해설.

이 글에는 교도소 철창 밖으로 두 팔을 걸치고 있는 수감자의 사진과 평등한 법을 상징하는, 천으로 두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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