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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8] ① KTX 승무원들은 왜 아직 거리에 있나?

글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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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KTX 승무원들이 거리로 쫓겨난 지 햇수로 13년이 지났다. 20대 후반의 청년노동자들이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삼보일배를 한다. KTX 승무원 문제는 우리 사회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게 무너졌고, 지금도 어떻게 희생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KTX 승무원들이 정규직이 되어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는 ‘노동존중’을 말할 수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부

철도공사는 공공기관이지만 그 기관이 한 약속은 참으로 가볍다. 철도청은 KTX 개통 당시 승무원들을 채용하면서 “1년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당시에는 철도청이었는데, 공무원 정원 억제 정책으로 정규직 채용을 할 수 없으니, 철도공사가 되면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 약속을 믿고 ‘홍익회’ 소속으로 KTX 승무 업무를 시작했다. 임금과 노동 조건이 나빴지만 약속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철도청은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승무원들의 소속을 홍익회에서 철도유통으로, 그리고 다시 KTX 관광레저로 옮기면서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다.

승무원들은 2006년 3월 1일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파업에 돌입한 승무원 280명 전원 해고로 답했다. 승무원들은 단식을 했고, 여러 번 경찰에 끌려갔고, 농성장에서 2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2007년 12월 철도공사와 KTX 승무원들은 합의에 이르렀다. 자회사로의 이직을 거부한 80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한 합의였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내부 조정기간을 달라’면서 조인식을 연기했고, 철도공사 사장은 사직을 해버렸다. 합의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다시 긴 기간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촛불집회로 정권이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때 “철도해고자 복직과 (KTX 여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한다”고 약속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2017년 12월 철도회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KTX 여승무원 문제가 조속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며 정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TX 승무원들은 아직도 약속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정복을 입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면담 요청을 보내도 여전히 ‘기다리라’고 말한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더 이상 공공기관에 신뢰를 보낼 수 없는 사회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사회이다.

 

재판 거래의 희생양

파업이 지속되던 2008년 8월 27일, 승무원들은 서울역 조명철탑 고공농성에 돌입한다. 이미 합의가 무산된 후 거리에서 힘든 세월을 지낸 승무원들이 택한 최후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협상 자리에 나온 철도공사는 ‘자회사에 취업 알선을 하겠다’고 승무원들을 우롱했다. 노동자들은 9월 29일 조명탑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법적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사문제를 협상으로 풀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기대는 사라졌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적어도 법이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2010년 8월 26일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승무원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항소했고, 2심에서도 노동자들이 승소했지만 철도공사는 또다시 상고했다.

그리고 2015년 대법원에서 노동자들은 패소했다. 대법원은 불법 파견이라고 볼 만한 징표들도 매우 많지만 합법적인 도급이라고 볼 만한 여지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 왜 대법원은 그것을 합법 도급으로 간주했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당시에 노조가 제출한 실질적인 증거인, 열차팀장의 진술, 각종 규정, 업무 매뉴얼, 지침을 대법원이 모두 무시했다는 점이다. 이 판결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선정한 ‘2015년 최악의 판결’이었고, <한겨레21>과 법학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선정한 2015년 ‘문제 판결’에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문제 판결’에도 선정되었다.

너무나 심각한 판결 결과에 승무원들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이 판결의 결과로 하급심 재판 승소로 받은 임금 8,000여만 원씩을 돌려내야 할 처지에 처했고, 한 승무원은 세 살 난 딸을 남겨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바로 이 판결이 재판 거래의 희생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입법 추진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협상을 하고자 했고, 그를 위해 대법원의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청와대에 협조하는 판결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희생물이 바로 KTX 승무원의 판결이었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취업 사기를 당했던 노동자들을 뒷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의 행적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KTX 승무원들은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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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안전의 권리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단지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정부는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함께 추모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정권이 바뀌었고,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말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생명·안전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제대로 주어져 있는가? KTX는 무려 1,000명 가까이 타며 300km로 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승객의 생명과 안전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승무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외주화했고, 그것도 모자라 승무원은 ‘안전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이 열차팀장과 함께 안전 업무를 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았다.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조치를 하고, 화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소화기로 불을 끄며, 열차 탈선 때 재빨리 문을 열고 승객들을 인도해 안전하게 철로 바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바로 승무원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철도공사는 승무원은 ‘안내 업무’만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대법원도 철도공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 이후로 KTX 승무원들은 안전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했고, 안전 교육과 훈련은 더더욱 받지 못했다. 해고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안전 업무를 정규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생명 안전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정규직 전환 심의 과정에서 현직 승무원들과 함께 정규직으로 복직할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 심의 기구인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철도공사는 승무 업무를 생명·안전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 철도안전법을 고쳐서 “철도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철도차량의 운전 업무 종사자와 여객승무원은 철도 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여서는 아니 되며,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후속조치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해놓고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철도공사의 이런 태도가 해고 승무원들과 현직 승무원들을 눈물 흘리게 하며, 승객들도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와 법원은 노동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재판 거래가 밝혀지고, 정부가 생명·안전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한 지금에도 KTX 승무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승무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KTX 승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공공부문 자회사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게 될까봐’, ‘양승태 대법원 판결을 되돌릴 경우 모든 사법 피해자들의 요구가 쏟아질까봐’ 등의 이유로 아직도 정부는 정치적 핑계를 대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철도공사에서 해고 승무원을 경력직으로 채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기쁜 일이고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을 되돌리는 ‘과정’일 뿐이다.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해고 승무원들이 ‘승무 업무’로 복직할 때에야 ‘진정한’ 해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결단하기를 바란다.

 

김혜진 님은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상임활동가입니다.

 

화면해설
이 글에는 KTX 열차 사진과 부당해고 4000일, 돌아가고 싶습니다 라는 현수막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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