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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을 소개합니다

인권위가 말한다 [2020.09] 2020 인권공모전
당선작을 소개합니다

[그림편]

 

 

차별하면 안돼요 - 배소언

 

청소년부 대상

차별하면 안돼요 - 배소언

 

 

 

멈추면 시작됩니다 – 고성화

 

일반부 대상

멈추면 시작됩니다 – 고성화

 

 

 

 

 

 

[산문편]

 

 

 

청소년부 최우수상

물 밖의 물고기 – 김해인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시 창작 방과 후 교실에서 물 밖에 나가 결국 말라 죽은 멸치에 관한 시를 쓴 적이 있다. 다 쓰고 나서 학기 말에 시 전시회를 한다고 손수 호일지를 가져와 자랑스레 도화지 위에 입체 멸치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난 그 ‘외로운 한 마리 물고기’가 미래의 나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 자퇴 과정은 짧았다. 미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학교 덕에 고 2, 1학기가 끝나갈 때쯤,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꿈드림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센터 방문 후 결심을 굳힌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는 걱정을 내비치셨다. 굳이 나갈 거니? 외로울 거야. 네. 괜찮아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한마디였고,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되었지만 그럼에도 난 목표가 있었으므로 나가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오후 세 시. 이름을 적고 학교를 나왔다.
사람들과 사회는, 대게 청소년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문제아로 보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공모전이나 학생 혜택 대상 등에 언급이 없는 등 그냥 존재 자체가 아예 지워지거나. 반짝 튀거나,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런 편견이 크다는 것을 당장 자퇴 다음 날부터 느꼈다. 점심시간에 버스를 타자 몇몇 사람들이 내 가방과 기계에 찍힌 요금을 쳐다봤다. 차차 내 뒤에는 ‘문제아’, ‘학생, 학교 어디야? 음.. 자퇴했어요. 아…. 그래?’ 같은 미묘한 시선이 따라왔다. 마치 내가 만들었던 빛나는 호일 멸치의 꼬리처럼 나에게는 반딱 반딱 빛나는 자퇴생, 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뭐? 자퇴? 넌 학교에 적응을 못 해 나온 어딘가 문제가 있는 아이구나. 이 만연한 ‘편견’. 그리고 나는, 적응하지 못해 나왔다는 것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개인의 존중 받아 마땅할 선택에 ‘너의 잘못’이라며 책임과 죄책감을 무는 사회의 분위기가 의아했다. 네가 끝까지 견뎠어야지. 노력 부족이야. 이런 식으로 학교 밖 청소년을 부적응자이자 문제아로 인식하는 것은 결국 학교 밖 청소년들이 사회에 합류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며 개개인의 자아에 나쁜 영향을 끼칠 뿐인데 말이다. 더불어 “아니에요. 전 목표가 있어서 학교를 나왔어요.”라며 내 사례를 들어 학교 밖 청소년들의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반박하기 이전에, 애초에 단순히 주류에 속하지 못했다고 낙오자로 바라보는 사회의 냉담한 시선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잡아 “당신은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에 기반해 비주류를 차별하는 마음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이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정규 교육기관에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내가 물 밖 물고기의 관점에서 배우는 것이 되레 많았다는 점이었다. 고 2. 학교를 나오고, 마찬가지로 학교 밖 청소년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었다. 놀랍게도 친구들은 삶의 목표를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확실한 꿈이 있었다. 소위 ‘그런’ 친구들 역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개인에게 문제가 있어 학교를 나온 것보다는 외부적인 이유가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센터 선생님들과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아직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진해서 여러 학교 밖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하며 청소년 정책을 제안하고, 사회의 다양한 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오히려 학교를 나온 것이 나를 한층 더 성장 시켜주는 발판으로 작용한 것이다. 도움 없이 혼자서 일을 맡으며 독립심과 자신감도 키울 수 있었다.
학교에서 얻은 것들이 진실하지 않았거나 값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 얻은 경험들 역시 학교 밖 청소년의 부정적인 선입견과 달리, 학교 안 경험 못지않게 나를 성장시켰다는 의미이다. 만 18세가 된 지금,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핵심, 문제가 있으면 침묵하지 않고 직접 소리내 해결책을 제시하는 태도는 분명 학교 밖 친구들에게서 배운 값진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썼던 시의 구절을 고치고 싶다. 물 밖을 나온 은빛 멸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그 멸치가 말라 죽을 것이라 했다. 후회할 것이라 했다. 강 밖에 나간 멸치들, 그들은 죄다 문제아라고 인터넷 역시 그렇게 말했다. 사회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린 말라 죽지 않았다. 오히려 땅 위를 걷을 수 있는 새 다리와 함께, 다양한 나이의 꿈을 가진 착하고 멋있는 강 밖 멸치 친구들을 사귀었고 함께 서투르지만, 우리들의 인권과 일상적 차별에 당당히 소리 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더욱더 빛나는 꼬리표를 당당히 하늘 위로 들어 모두에게 웃으며 보여 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난다. 물고기는 물에서 나와야 비로소 물에 비친 자신과 주변의 강아지풀을 볼 수 있다. 우린 조금 일찍 물 밖에 나왔을 뿐, 여전히 물고기다.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뿐, 절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물고기다. 무엇보다 우린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그렇기에 학교 밖 청소년이자 동등한 물고기로써 말하고 싶다. 모든 청소년은 어디에 있든 평등하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우리 학교 밖 청소년은 사소하게라도 편견에 의해 사람들과 사회에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학교 안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빛나는 꿈이 있다.
땅 위로의 다이빙을 후회하지 않는 우리는, 빛나는 물 밖의 멸치이다.

 

 

일반부 최우수상

나의 분대장 - 이준협

 

“‘분댐(분대장)’ 게이래.” 병영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한 선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민호(가명) 분대장은 항상 작업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훈련이 많은 부대의 특성상 선임병은 후임병에게 야전 수칙 및 전반적 행동강령을 전파하는 게 중요했는데 공 병장은 이러한 잡무를 떠맡지 않아도 되는 ‘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 내 크고 작은 일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부대에 처음 전입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공 병장이 나를 불렀다. “야, 신병 잠깐만 이리 와봐.” “예, 공 병장님.” “훈련소에서 빨래 자주 못했지? 내 섬유유연제 들고 빨래방부터 가자.” 공 병장은 훈련이 잦고 규율이 엄격했던 자대에서 내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부대원이었다. 부대에 도착하여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편지를 부치는 방법을 알게된 것도, 선임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모두 그의 도움 덕이었다.
그러던 중, 한 행정 계원이 공 병장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행정병은 나보다 한 달 늦게 입대한 병사였는데 부대원의 신상정보를 관리하다가 사이버 지식정보방에서 공 병장의 이메일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해봤다고 했다. 검색 결과 공 병장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블로그에는 공 병장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인물과 찍은 사진, 같이 간 여행지와 식당에 관한 게시물이 가득했다고 한다. 소문은 부대 안에 빠르게 퍼졌다. “그럼 분댐 매달 면회 오는 친구, 사실 남자친구인거 아니냐? 그럼 둘이 펜션 잡고 계속 그 짓 했다는 거야?” “난 어제 샤워하다가 그 새끼 들어와서 바로 나갔잖아. 같은 부대에 있다는 게 너무 찝찝하지 않냐? 에이즈 걸리면 어떡해.” 소문이 퍼진 후, 공 병장은 다소 의기소침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업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신과 관련한 소문에 대해 해명하려는 시도 역시 하지 않았다. 나는 공민호 병장과 관련한 소식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나는 여전히 공 병장과 함께 일과 후에 체력단련장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주말에는 PX에서 냉동식품을 먹고 함께 TV를 시청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였다. 같은 소대의 후임이 내 생활관에 찾아왔다. “이 상병님, 분댐이랑 같이 다니는 것에 대해서 중대 안에서 말이 많습니다. 이 상병님도 게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후임은 내게 간부들도 공 병장의 소문에 대해 알고 있으며 공 병장과 가장 가까운 나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며칠 후 새벽, 화장실에 가고 싶어 생활관 밖으로 나가자 불침번을 서던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이 말을 걸었다. “야, 이 새끼들 화장실에서 뭐하려고 새벽에 시간 맞춰서 나오는 거야? 같이 똥간 들어가서 뭐하려고 했냐?”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시간에 공병장 역시 화장실에 있었고 나는 공연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 다시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요의(尿意)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부대 안에서 내가 받게 된 시선이었다. 공 병장과 함께 있으면 내게도 피해가 갈까 두려웠다. 식당, 사격장, 오락실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괜스레 수치스러웠고 오줌을 참았던 그날 불침번이 내게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 이후, 자연스레 공 병장을 피하게 되었다. 매일 나가던 체력단력장에도 가지 않고 PX도 동기들과 이용했다. 공 병장 역시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새벽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공 병장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아마 샤워장에서 부대원들이 그를 불편해하는 것을 느껴 새벽에 홀로 세면세족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공 병장의 전역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봤다. 공 병장은 커다란 녹색 더플백에 자신의 관물대에 있는 물건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나는 그 모습을 꽤나 오랫동안 지켜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선임이 크고 작은 일에 휘말려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면 모든 중대원들이 부대 밖으로 나가 그를 배웅하는 것이 관례이다. 흔히 ‘도열’이라고 부르는 우리 부대의 관습은 공 병장이 부대를 떠나던 날은 행해지지 않았다. 나 역시 그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생활관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훗날 행정병에게 공 병장이 옆 부대에서 무사히 전역하였다는 말만을 전해 들었다. 학교로 복학한 후, 놀란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 모두 놀라울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한 관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너스레를 떨고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한 캠페인, 행사를 조직하는 대학 동기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공 병장을 떠올렸다. 공 병장은 단순히 운이 없어 우리 부대원 같은 사람들을 만나 고생한 것일까? 그때 나는 왜 대학동기들처럼 공 병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을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가던 중, 핸드폰을 켜 공 병장의 연락처를 찾았다. 연락처의 프로필에는 공 병장이 다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때 나는 사진에서 공 병장의 옆에 서있던 사람의 성별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때 ‘저 옆에 내가 같이 서 있었다면 공 병장은 우리 부대에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만일 공 병장을 피하는 대신 평소와 같이 웃으며 냉동만두나 사먹으러 PX에 내려갔었다면 온수가 나오지 않는 새벽 세면장의 한기를 공 병장이 매일 감내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유월의 햇살이 감추고 싶었던 내 비겁함을 모두 드러내었을 때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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