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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각하기 [2021.09] 존엄한 인간은 목적 그 자체, 수단이 될 수 없어

글 허지현(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사형제 논의

 

최근 세 모녀 살인 사건, 영유아 살인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 여론이 다시 일곤 한다. 작년 6월에는 흉악범죄 등에 대한 사형 집행을 의무로 강제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을 집행한 이래로 현재까지 24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엠네스티 등 국제사회는 2007년부터 대한민국을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사형제도에 관한 결정에서 모두 합헌 판결을 한 바 있으나, 지난 10년간 많은 환경변화가 있었다. 2019년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현재 그 심리절차가 진행 중에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대한 3번째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존엄한 인간은 목적 그 자체, 수단이 될 수 없어

 

사형제도에 대한 국내외 동향

 

국제엠네스티가 매년 발간하는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2010년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은 96개였으나, 2020년에는 108개 국가로 증가하여 이제 사형제도 폐지는 국제적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8개국은 군사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형을 인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을 포함한 28개 국가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즉, 전 세계의 3분의 2를 넘는 144개 국가들이 이미 법적 또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에 속하며, 일본, 미국 등 일부 국가만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 총회는 2007년 12월 18일부터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유예)에 관한 결의」를 채택해오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7개의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유예)에 관한 결의」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모두 기권하였으나 2020년에 처음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는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국제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지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헌법 개정 절차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2018. 3.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사형제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헌법 제110조 제4항을 삭제하고, 생명권을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제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자유권규약위원회 최종견해」(2015. 11.) 및 「대한민국 제3·4·5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고문방지위원회 최종견해」(2017. 5.)에서 사형제도 폐지 및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권고 받는 등 국제사회의 권고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부터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꾸준히 한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 4. 6. 국회의장에게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견 표명을 시작으로, 2009. 7. 6.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형법」 제41조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사건(2008헌가23)에 따라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헌법 및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또한 2017. 2. 21. 국회의장 및 국방부장관에게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군형법」상 사형 집행의 중단을 선언하고 향후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2018. 9. 10. 유엔 인권이사회 등의 권고를 수용하여 사형 폐지를 위한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할 것을 국무총리와 외교부장관 및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하였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12월 28일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소원(2019헌바59)에 대해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 제출을 의결하고, 2021년 2월 1일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이 밖에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공론화를 위해 성명 발표, 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형벌

 

우리 「헌법」이 생명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헌법 해석상 생명권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형벌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의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를 보호, 보장할 의무만을 부담할 뿐, 이를 박탈한 권한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사형제도는 이미 범행이 종료되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인간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빼앗는 형태의 처벌이라는 점, 사형 집행 방법 자체의 잔인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형 집행을 대기하게 만드는 것 자체로 정신적 고통과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비인도적인 형벌이라고 볼 수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2018. 10. 「자유권규약」 제6조에 대한 일반논평 제36호를 채택하면서 “생명권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무력 충돌과 다른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손상시킬 수 없는 최고의 권리이며, 가장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거나 일으켰다고 의심받는 자를 포함하여 그 누구든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의 생명권을 보장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완전한 존중과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의 폐지가 바람직하며 필요한 방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불분명한 범죄 억지력 효과

 

불분명한 범죄 억지력 효과

 

헌법재판소는 과거 사형의 범죄 억지력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사형제도가 일반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사형제도 존치론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사형제도가 사회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응보주의 기능의 실현 수단으로서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의 부활을 요구하거나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증가하는 것도 사형의 범죄 억지력 및 응보주의적 기능을 우선하는 믿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사형제도 유지 및 집행이 범죄 억제(일반예방)의 효과를 발휘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는 확실하게 검증된 바가 없다.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하여 조사한 국제사회의 보고서들은 사형제도가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며, 사형제도를 폐지하더라도 범죄율 등과 관련하여 사회에 급작스럽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9건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으나, 다음해 살인사건 발생건수는 전년도 615명에서 806명으로 증가한 반면, 1993년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살인사건 발생건수는 705명으로 감소하였다. 또한 1997년에는 23명의 사형확정자에 대해 집행하였으나, 그 다음해에는 살인사건 발생건수가 전년도보다 177건이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형 선고나 집행이 강력범죄를 예방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또한 강력범죄 중 사형 선고가 가장 많은 살인의 경우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50% 이상을 차지해 사형제도가 과연 얼마나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범죄의 예방은 범죄 억지력이 입증되지 않은 극단적인 형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는 검거와 처벌의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사형 판결에 대한 오판 가능성

 

사형제도 존치론 측에서는 오판의 가능성은 비단 사형 판결 뿐만 아니라 모든 형사절차에도 존재하며, 수사의 과학화와 사법절차를 개선하면 오판의 가능성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부분적인 오판의 우려로 사형제도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을 경우 그 생명은 회복할 수 없고, 무고하게 제거된 한 생명의 가치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긴급조치 하에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된 소위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그 밖에도 2017년에는 1982년 일명 ‘김제 가족 고정 간첩단’ 사건으로 희생된 고故 최을호, 2018년에는 ‘위장 귀순 간첩’ 혐의를 받아 1969년 사형을 당한 고故 이수근, 2020년에는 1948년 ‘여순 사건’ 당시 희생된 민간인 고故 장환봉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비록 과거 독재정권 하의 공안사건 등에서 드러난 국가의 과오이기는 하나, 사형은 다른 형벌과 달리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의 경우 피해 회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대체 형벌 도입에 대한 논의

 

대체 형벌 도입에 대한 논의

 

최근에는 사형제도 폐지와 더불어 대체 형벌 도입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실시한 「사형제도 폐지 및 대체 형벌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형제도 폐지 동의 의견이 20.3%였으나, 적절한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한 경우 사형제도 폐지 동의 의견이 66.9%로 나타났다. 이는 사형제도를 대체할 만한 형벌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나타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사형을 대체하여 여러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대체형벌 도입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3번째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을 넘어 사형제도 폐지를 통해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존중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국가 및 사회가 범죄 피해자들과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유족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다양한 대책 마련 등 더욱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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