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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3.09~10] #3 그때로부터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다섯 명의 ‘시선’이 만났다

 

군 사망사건, 조사관은 무엇을 보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 출연했고 2002년도부터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케이피 시토울라, 애니메이션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중학생 김여름, 인권위에서 만든 영화들을 학교 수업에서 자주 활용하고 있다는 초등교사 지태민, 대학에서 안정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수빈,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수미

 

2023년 오늘, 〈여섯개의 시선〉을 다시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2000년대 초 당대의 차별은 무엇이었고, 지금의 차별은 무엇인지, 그때로부터 달라진 것과 지금도 여전한 것은 무엇인지, 반복되는‘무엇’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게 아닐까? 하여 2023년 8월 어느 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영상실에는 그때와 지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 사람들이 모였다. 팝콘과 콜라는 없었지만 이들은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 나라〉,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함께 보며 어느 장면에선 웃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탄식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한 투쟁 이슈, 이동권

 

이수미 | 2003년 개봉 당시 저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장애인의 삶이 마치 대륙을 횡단하는 것처럼 힘들다는 의미라면 장애인의 〈대륙횡단〉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요. 여전히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고,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도 지하철 역사 안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까 초조했습니다. 중증 장애인들은 약속 장소에 나올 때 항상 30분에서 1시간씩 일찍 움직입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도 일반 택시보다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이죠. 대륙을 횡단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 2003년에 개봉한 영화니까 2000년대에 태어난 김여름, 김수빈 님에게는 더 낯선 풍경일 것 같은데요?

 

김여름 | 문주 씨가 가진 동전이 바닥에 떨어질 때 지나가는 사람이 바닥에 동전을 던지고 간다든가, 문주 씨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어렵게 밖으로 나왔는데 위층에서 내려온 아주머니가 문주 씨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줄 알고 다시 집 안으로 밀어 넣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슬펐어요. 좋은 일을 했다고 여겨 콧노래까지 부르니 놀랍기도 했고요.

 

김수빈 | 친척 결혼식에 주인공 문주 씨만 빼놓고 가족들만 가는 모습은 많이 속상하더군요. 가족들마저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있으니 문주 씨는 매일 상처 받을 일밖엔 없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회자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데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문주 씨가 대륙횡단을 하기 전에 예행연습을 합니다. 자세히 보면 당시 광화문 네거리에 없던 무엇이 지금은 생겼지요. 바로 횡단보도인데요,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지만 영화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광화문에 횡단보도가 생긴 건 영화 〈대륙횡단〉 덕이라고 우깁니다(웃음). 무엇보다 감독님은 문주 씨가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는 씬에서 달려오는 차들이 한 대도 멈추지 않았고 무슨 일이냐고 누구 하나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라웠다고 해요.

 

이수미

 

이수미 | 그렇게 생각하실만 해요. 밖은 늘 위험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습니다. 집을 나서면 가려는 곳에 경사로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해요. 출입이 가능하다 해도 사장이 출입을 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전동 휠체어를 타는 분이 가족들과 식당에 갔는데 자리가 있었지만 주인이 못 들어가게 해서 시비가 일었어요. 2002년에 본격적으로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이동편의증진법, 즉 교통 약자를 위한 법도 생겼지만 아직도 제대로 시행이 안 되고 있어요. 올해 7월 19일부터는 교통약자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서울의 장애인 콜택시가 광역 운행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정작 당일이 되니 실제로는 시행이 되지 않았어요. 지금도 어느 역에선 장애인 리프트가 작동할 때 ‘음악감상’ 에피소드에 나오는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요.

 

김수빈 | 저는 2003년 생인데 제가 겪어 보지 못했던 현실을 영화로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특수반이 있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장애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인권교육도 동영상 시청에 그쳐 형식적이었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어 지루하기도 했고요.

 

 

김민아

 

네팔 국민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사회자 |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1992년에 36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네팔 여인 찬드라 씨의 실제 사건을 다루어서 당시 더 반향이 컸는데요, 케이피 시토울라 씨는 영화에 직접 출연도 하셨으니 당시 상황을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요.

 

김민아

 

케이피 시토울라 |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당시 이 사건은 법정 다툼 중이었어요. 저는 그때 재한 네팔인 총무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 사건을 직접 맡았었는데요. 영화로 인해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영화가 실제 사실만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려서 시나리오 수정도 이루어졌어요. 사건을 자세히 보고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병원이나 경찰서, 부녀 보호소 어디에서든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관계 기관이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했어요. 찬드라의 말투와 언어가 다른데 어떻게 한국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요? 네팔인들은 귀에 귀걸이를 하는데, 찬드라 귀에는 구멍이 9개나 뚫려 있었어요. 당시 그렇게 하고 다니는 한국인이 어디 있었습니까. 제가 찬드라를 처음 만났을 때 고국에 돌아가거나 네팔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아예 접은 상태였는지 저를 보자마자 도망치려고 하더라고요. 1993년에 행방불명됐다가 2000년에 발견된 거니까 당시 교민 사이에서도 찬드라가 더 이상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대요. 찬드라 씨의 어머니도 딸이 실종돼서 걱정만 하다 돌아가셨다고 해요. 찬드라 씨도 어머니 일을 가장 마음 아파했어요.

 

사회자 | 케이피 씨가 찬드라 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장면 바로 다음에 네팔의 산맥이 등장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원래 국내에서만 이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지만 개인 경비를 들여서 네팔로 건너가 찬드라 씨를 만났다고 해요. 감독은 찬드라 씨가 사는 마을에 갔더니 자기 부족 사람을 6년 4개월 동안이나 가둬뒀던 나라의 제작진이 왔는데도 멀리서 왔다고 잔치를 열어주고 환대해주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하더군요.

 

케이피 시토울라 | 그 동네가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 관광지에요. 네팔 국가명의 의미가 Never ending peace and love, 그러니까 ‘평화와 사랑이 끊이지 않는 네팔’인데요. 영화 속의 잔치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언가를 악으로 갚는 민족이 아니에요. 지금도 그 마을을 지나갈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환영해 줘요. 한국이 찬드라에게 했던 일을 네팔 국민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요.

 

지태민 | 찬드라 씨는 그 일 이후 어떤 사과와 보상을 받았나요?

 

케이피 시토울라 | 이주 인권 단체 활동가들이 열심히 알려서 찬드라 씨의 일은 당시 제네바에서도 언급이 됐어요.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는데 보상금이 320만 원에 불과했어요. 이 금액은 찬드라 씨가 네팔 현지에서 6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임금을 계산했던 거라고 해요. 행방불명됐던 1993년 당시의 물가로 한 달에 1만 8천 원씩 계산한 거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안 받겠다고 하고 항소했어요. 항소 후 다시 판결이 나왔을 때 배상금은 2,500만 원 조금 안 됐어요. 단체를 통해 모인 후원금은 5,000만 원 정도였고요.

 

 

영원할 것만 같은 외모 차별

 

사회자 | 〈그녀의 무게〉로 옮겨가 볼까요? 취업을 앞둔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인 선경이 극심한 외모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이야기인데요.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만 따져본다면, 지금 학교는 어떤가요?

 

김여름

 

김여름 | 별로 다르지 않아요. 제 친구들도 비슷해요. 통통한 친구들은 놀림을 받거나 그 친구에겐 선을 넘는 말을 하기도 해요. 반에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어도 챙기지 않고요. 평소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영화보다 심해졌다고 봐도 될 거예요.

 

지태민 | 우리 사회 자체가 피부나 몸무게를 무척 강조하잖아요. 영화에서처럼 요즘은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학생들 스스로가 내면화해서 지키는 것 같아요. 외모에서 자유로운 아이들이 있기는 할까 싶어요.

 

김수빈 | 영화 속의 저런 시대, 그러니까 취업 담당 선생님이 학생의 몸무게를 잰다거나 하는 시대는 겪어 보지 못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죠(모두 웃음).

 

 

김수빈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사회자 |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 나라〉는 영어 R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부모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설소대 수술을 강제하는 영화입니다. 사회고발성이 매우 짙어 당시에도 반향이 컸는데요.

 

김수빈 | 초등학생 때 실제로 그 수술을 한 친구가 있어서 그런 수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케이피 시토울라 | 수술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발음이 좋아지나요? 모두 부모들의 잔인한 욕심일 뿐이잖아요. 선생님, 지금도 저 수술을 하나요?

 

지태민 | 과거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영어 때문에 받는 아이들 스트레스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김여름 | 맞아요. 반에서 영어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존경의 대상이 되니까요. 예쁜데 영어까지 잘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고요.

 

 

지태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영화

 

사회자 | 학교에서 인권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지태민 | 학교 교육 과정에서 인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요. 10년 전에는 인권이 하나의 소단원으로 들어가 있었던 반면 지금은 대단원으로 들어가 있어요. 사회나 도덕 교과서에도 인권이 들어가 있고요. 그만큼 비중이 커진 거죠. 하지만 혐오적 표현이 늘어나는 걸 보면 인권 교육이 효과가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여러 과목에서 다루니 형식적으로만 접하게 되는 것도 문제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 영화는 사람들 마음속에 인권을 자리잡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인권위가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이수미 | 저는 장애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의 가장 큰 현안은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 없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예산과 의지는 함께 가는 거라고 봅니다.

 

케이피 시토울라 |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관련 기관이나 관계자들이 잘 움직이지 않지만 의지가 있는 몇 명이라도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 개선이 돼요. 과거보다는 지역별로 센터들이 많이 생기면서 문제 해결도 잘 되는 편이지만 이주민들을 위한 제도는 아직도 위태로워요. 국제적 위상에 맞게 더 개선되면 좋겠어요.

 

이수미 | 차별과 편견이 있는 곳에 인권위는 친구처럼 항상 곁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여러분들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좋은 영화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다루면서도 보는 사람을 되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행. 편집부
사진. 전재천(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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