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신상공개 문제에 관한 리포트

Ⅲ. 사적 신상공개의 등장 배경

1. 수사와 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부서진 판사봉과 수갑, 어지럽게 널려있는 파편들

사적 신상공개가 일종의 유행처럼 나타나는 배경으로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수사와 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범죄 처벌 수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며, 범죄 피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도 낮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범죄 예방·정의 실현을 위해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제도와 현실은 비일관적인 판결과 불합리한 감형 요소 등으로 범죄자가 지나치게 가볍게 처벌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것이 주된 인식이다.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종종 분노하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적 신상공개 또는 사적 제재를 떠올린다. 이에, ‘다소 불법적인 절차나 방식일지라도’ 가해자의 악행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하다’ 또는 ‘불가피하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2.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경제적 이익 창출 구조, 언론의 자극적 보도 행태

사이버 렉카로 불리는 유튜브 채널들은 사적 신상공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은 ‘많은 사람의, 많은 관심’이 수익이 되는 구조이고, 분노 등 감정 동요를 일으킬수록,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가십성 정보일수록 더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다고 인식된다.

일부 사이버 렉카 채널은 더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스스로 논란이 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들끼리도 나름 경쟁하다 보니 부정적 이슈에 관한 영상을 자극적으로 다루게 되며, 결국에는 불법적인 일까지 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명예훼손으로 실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고, 벌금의 최대치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도 개의치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론이 사이버 렉카의 콘텐츠를 그대로 인용 보도하거나 해당 콘텐츠의 자극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결국 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언론의 보도로 해당 콘텐츠의 존재를 몰랐던 독자에게도 그 내용이 알려지고, 자극적 콘텐츠의 부정적 영향이 반복·증폭되는 것이다. 특히, 언론사들은 자율적 규제를 통해 자극적 보도를 자제하다가도 정보가 일단 공개되어 보도 경쟁이 시작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설정한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경쟁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통한 신상공개 ⟶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확산 ⟶ 언론 보도를 통한 추가 확산 ⟶ 신상공개 영상, 게시글 등에 대한 관심 증가’라는 과정이 패턴화되고 있다.

3. 혐오·폭력을 양산하는 인터넷 사용 문화

‘사적신상 공개 ⟶ 익명의 다수에 의한 사이버불링’의 구조는 혐오·폭력적인 인터넷 문화에서 파생된 한 유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과거 온라인상 혐오·폭력적 행위들은 인플루언서나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을 향한 비난과 악플에 한정되었다면,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SNS의 일상화로 그 대상이 광범위하게 확대되었고, 방법도 매우 다양화되었다.

SNS상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 피해자를 집단으로 모욕하는 행위, 이런 괴롭힘을 회피하기 위해 채팅방에서 나간 사람을 계속 초대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 피해자에 대한 루머를 여러 SNS를 통해 유포하는 행위,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를 활용해 피해자에게 모욕적·성희롱적 이미지를 합성하는 행위, 메타버스나 온라인 게임상에서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스토킹하는 행위 등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상 괴롭힘 사례가 있다.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내는 듯한 사람의 모습

익명의 다수인으로부터 악의적인 메시지를 받는 형태의 사이버불링은 인터넷상 ‘좌표찍기’를 통해 발생한다. ‘좌표찍기’란 특정 대상에 대해 온라인상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을 뜻한다. 특정 기업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좌표를 찍으면’ 다수의 민원을 통해 불만과 항의를 표출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 의사표시 방법과 내용이 모욕적이거나 협박성인 경우, 신상이 공개된 상대방은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요약 및 정리

사적 신상공개가 일종의 유행처럼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수사와 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경제적 이익 창출 구조, 언론의 자극적 보도 행태, ▲혐오·폭력을 양산하는 인터넷 사용 문화가 있다.